[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부천 북클럽]

| 김민성 (부천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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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쓰기 전에 이번 독서모임에서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라는 책을 읽고 독서모임 멤버들과 1월 달에 모임을 가졌다. 이번에는 10장과 11장을 다루었다. 10장의 내용은 창조 기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리고 등장인물인 박 기자의 결론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11장은「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의 저자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 그리고 저자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힌다. 

이 두 챕터에 관해서는 멤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11장의 해석이 난해했다는 이야기, 이 책이 결국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등등 여러 대화를 나누며, 10장과 11장에 관한 내용을 토론해보고, 서로 어떻게 읽었는지 이야기 해보는 시간이 이번 모임의 시간의 주된 내용이었다.

후기를 쓰자니, 아쉽기도 하고 무사히 독서모임을 끝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멤버들과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자주 모이지 못했던 것은 아직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다음에는 주말에 만나거나, 아니면 방학에 집중적으로 독서모임을 가지는 방면으로 개선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책은 과학과 신학에 관련된 내용이었기에 상당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다음에는 과학이면 과학, 신학이면 신학, 한 가지 학문에만 관련된 서적을 통해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마지막으로 독서모임에 대해서 말하자면 즐겁고, 나 이외의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가며 지식을 확장시킬 수 있었던 여러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가지게 된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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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강사은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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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과신대 정회원 강사은입니다.

과신대 북클럽에는 정말 좋은 제도가 있는데요, 정회원이 포함된 북클럽이면 간식비를 지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좋지 않습니까? (뭐 꼭 간식이 있어야 책을 보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드디어 ”과신대 분당/판교 북클럽”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과신대 북클럽에서 책을 통해 각자 배운 바를 나누고 (스스로) 비교하고 검증하며 확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함께 책 읽고, 발제하고, 토론하면서 확장되는 마음을, 그 분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상호 설득과 진지한 토론에 의해 우리의 정신을 넓혀 더욱 풍성한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지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신뢰 하에 인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도록 서로를 도울 수 있습니다.

분당/판교 지역에서 이 풍성한 연대의 모임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첫 모임의 책과 일정]
. 책 :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확대개정판)
. 일시 : 2018년 2월 12일(월) 오후 7:00
. 장소 : 성공회 분당교회(아래 URL 참조)
http://www.skhbundang.or.kr/180?category=70135

[누가 올 수 있나요?]
. 학업/연구 과정에서 과학주의에 대한 신앙적 통찰이 필요하신 분
. 진화주의 때문에 갈등하는 자녀를 두셨거나 준비하실 부모님
. '무크따(아래 책)'를 이미 읽었지만 토론이 필요하신 분
. 분당/판교 지역이 근무지이시거나 생활권이신 분
. 그리스도교 신앙에 기반한 모임입니다만 '과신대'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타종교인, 무신론자도 환영합니다.
. 기타 '과학과 신앙의 대화'에 대해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싶으신 분

* 첫 모임은 책을 읽지 않고 오셔도 괜찮습니다. 서문과 1장 정도를 함께 읽고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 위주로 가지겠습니다.

*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은 과신대 사무국으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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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재상 (과신대 기획이사, 전주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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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연말이지만, 성탄절 다음날에 모임을 가졌습니다. 반갑게도 저번 달에 이어 새롭게 두 분이 오셨습니다. 지역 교회 목사님과 상담학을 공부하는 청년입니다. 전주 모임에는 이제 청년들이 반절이 되었습니다. 내년에도 계속해서 캠퍼스에서 과신대를 홍보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전주 모임에 청년들이 많아지면, 독서 나눔과 토론의 효율을 위해 모임을 두 그룹으로 분리하고자 합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오리진』(IVP) 2장과 3장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두 장을 관통하는 질문은 ‘과학이란 무엇인가’입니다. 대화 가운데 과학은 일반은총의 사건이라는 점이 귀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연계시를 읽어가는 과정이 바로 과학 활동이라는 것이지요. 일반은총은 과학을 신앙 있는 그리스도인 과학자뿐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비그리스도인 과학자들에게 열려 있게 합니다. 이러한 점은 그리스도인 과학자와 비그리스도인 과학자가 서로 협력하여 과학지식을 생성하는 발판이 됩니다. 비록 두 과학자의 세계관 신념은 다르더라도, 설명의 건전성과 논리적 타당성을 통해 정당한 과학지식을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를 위해 생각해볼 문제는 자연에 대한 인간 인식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자연에 대한 지식을 만들어가는 과학 활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파악할 수 없다면, 과학 활동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자들이 3장에서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자연법칙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만, 우리 모임에서는 자연법칙의 변화 유무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했습니다. 이는 자연에 대한 인식 문제가 됩니다. 이는 일반은총이 지닌 의의를 더욱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즉 일반은총으로 인간은 자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할 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인식과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일반은총으로 인간은 자연에 대한 신학적 인식과 과학적 인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지닌 필요성과 풍성함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게 되며, 특별한 영역으로서의 창조과학이 지닌 문제점을 두드러지게 합니다. 

상당한 모임 시간 동안 열띤 나눔과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앙과 과학기술> 클래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이 클래스에 대한 동기는 교회지도자와 교우에게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클래스에서는 ‘대중화’가 중요한 코드입니다. 즉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대중화’와 ‘과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활동입니다. 비록 시간관계상 클래스 내용을 구체적으로 나누지 못했지만, 한 클래스 당 4주 코스 정도로 진행되며, 강연, 북토크, 과학토크, 체험활동 등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클래스에 대한 논의는 내년에도 계속해 해 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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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부천 북클럽]



| 이준봉 (과신대 기자단, 부천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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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의 달인 12월에 진입함에 따라 대학생으로 구성된 부천 북클럽 회원들은 더욱 바빠졌다. 하지만 매주 모이는 독서모임은 연이어 진행되었다. 다른 수업 발제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는 회원도 있었지만, 모임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익하였다.

독서모임의 진행자로서 본인은 모임의 진행 방향을 ‘최대한 많은 사람이 여러 번 이야기하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맞춘다. 아무리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더라도 각각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 생각을 계속 표출하도록 시도하게 하는 것이 독서클럽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인 역시도 이전에는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대학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부천 북클럽 모임에서는 모든 사람이 마음껏 말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독서모임의 정점은 토론에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의 이론에 대한 시각이 상반된다면 그보다 더 나은 대화 소재는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아무런 시간에 제약이 없는 저녁 시간대에 모두 모인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평소 모임 시간인 한 시간을 훌쩍 넘겨 약 2시간 30분 동안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임의 진행자로서 상반된 의견이 제시되고, 그에 대한 논거가 쌓여가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면 본인조차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것을 느낀다.

후기를 쓰고 있는 시점인 지금, 우리 대학의 겨울방학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과신대 부천 북클럽 모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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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 장현일 (과신대 총무이사, 서울 남부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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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9일에는 과신대 남부북클럽이 송년모임으로 모였습니다. 백우인 회원님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음식을 나누고 불끄고 축하 케익도 불고 서로 둘러앉아 노래도 함께 부르는 참 훈훈하고 정겨운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고난 중에 계신 정준 목사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위로가 되셨다고 하니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작년 7월 비오는 날 7명이 처음 모이기 시작해서 벌써 두 번째 송년모임을 가졌는데 이제 북클럽 멤버가 28명으로 늘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창조기사 논쟁을 집중적으로 읽고 나누었는데 이제 송년 모임에서는 월튼을 마지막으로 창조기사 논쟁을 끝내고 새해 1월부터는 새 책을 읽기로 했답니다.

월튼은 참 독특한 신학자인 것 같아요. 그는 창세기1장을 고대근동의 인지환경을 고려하여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능창조론"과 "우주성소론"을 제시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제안이면서도 창세기1장을 읽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탁견으로 느껴졌습니다. 월튼을 제외한 다른 신학자들은 대체로 본문을 어느 정도 문자적으로 혹은 유비적으로 해석할 것인가라는 문자-유비 패러다임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드 비일이 가장 문자적인 관점이고 트럼프 롱맨이 가장 유비적인 관점이라면 그 사이에 에이버벡과 콜린스가 위치해 있는 것 같습니다. 월튼의 공헌은 이런 문자-유비 패러다임이 아닌 고대인지환경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데 있다고 보입니다. 월튼은 발화수반행위가 중요하지 발화행위 자체가 어떤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는 발화수반행위에 의해 주어지지 발화행위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월튼의 이런 제언은 과학과 신학이 대화해야할 방향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월튼은 창조적 진화론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논쟁에 등장하는 5명의 구약학자들이 모두 복음주의 신학자들이라는 점이 눈에 뜨입니다. 복음주의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창조기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을 가지고 있으며 토드 비일을 제외하고는 창조기사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과신대가 나아가는 방향이 주류의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새해에는 과신대 북클럽 모임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특히 정회원 여러분들이 친해지고 서로 알아가는 공간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전국 각처에서 과신대 북클럽이 활발하게 모이는 일 그것이 바로 과신대 사역의 가장 핵심적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때 과신대 운동이 한국 교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과신대 정회원 동역자 여러분들과 함께.. 새해에도 우리 주님께서 과신대 운동에 베풀어주실 풍성한 은혜와 인도하심을 소망합니다. 복된 새해맞이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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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재상 (과신대 기획이사, 전주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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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 다가온 겨울을 느끼며 지난 21일 저녁 마로덕선교사기념관에서 전주지역 북스터디 모임을 가졌습니다. 5명으로 시작한 전주 스터디였습니다. 새로 세 분이 이번 모임부터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희년운동에 참여하시는 목사님과 한일장신대학교 학생 두 분이 함께 했습니다. 이제 8명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세 분의 뉴커머와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오리진』(IVP)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1장과 2장이 스터디 범위였으나, 주로 1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장에 대해서는 기적에 대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1장에서 저자들은 ‘잘못된 질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학을 토대로 성경 읽기 방법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성경을 토대로 과학을 연구할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무엇을 택하든지 과학적으로든 신학적으로든 그리고 사회적으로든 설득력이 없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성경해석에 대한 과학의 영향에 대해 여러 경험사례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날 현대 과학지식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이는 승리주의 오류를 낳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자연에 대한 묘사나 우주관 등은 고대 과학지식을 배경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 나오는 교회에 대한 몸의 비유를 해석할 때, 바울이 사용한 의학 용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면서 성경해석 시 과학지식 활용에 대해 나름의 생각들을 나누었습니다. 오늘날 현대 의학이 보는 머리와 바울 당시 의학이 보는 머리의 차이를 유념하여 해석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지식의 고고학 또는 계보학 차원에서 과학지식 활용은 단지 성서해석뿐 아니라 교회사 측면에서의 활용도 가능하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하였습니다. 초대 교회와 속사도 시대 당시 예수 그리스도를 치료자로 바라보는 관점도 있었는데, 이러한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의학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의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주로 질병 치유라는 점에 무게를 두겠지만, 당시 의학은 다양한 맥락을 살핀다면 ‘치료자 예수’가 지닌 여러 역사적 의의를 추론할 수 있으리라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해석에서 당시 과학지식으로 사회적 배경을 파악해갈 때 주의할 점은 고대 서양과학 시각으로 동양 사고를 해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지식은 서양 중심의 사고를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과학지식으로 성경 속 배경을 재구성할 때 과학이 지니고 있는 서양 사고방식이 의연 중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성경해석 시 중동의학이나 동의보감 같은 동양과학과 동양사고 방식 역시 유념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합니다. 중동의 눈, 동양의 눈으로 읽는 성경해석이지요. 이러한 점은 성경해석에 대한 과학 영향이 지닌 한계일 것입니다. 

이러한 한계는 방법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성경해석에 대한 과학의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과학방법론이 해석자 관점에 미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철학적 자연주의와 방법론적 자연주의라는 과학방법론 입장에서 성경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비교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령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서와 자연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라면, 성서를 조명하는 성령 하나님은 자연 역시 조명하시지 않으실까? 창조의 영인 성령이 자연에 대한 인식을 여셨던 경험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세계에 대한 창조 인식과 자연에 대한 과학 인식의 차이는 유념할 필요가 있겠지요. 

바쁜 12월에도 전주지역은 모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12월 26일에도 『오리진』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계속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한일장신대학교에서 과신대 활동을 알리며 참여할 학생들을 모으려고 합니다.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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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부천 북클럽]



| 이준봉 (과신대 기자단, 부천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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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종강을 앞두는 시기가 찾아왔다. 올해 여름방학부터 시작한 과신대 부천 북클럽 스터디 모임도 우여곡절 끝에 계속 진행되고 있다. 수업, 학생회, 아르바이트, 동아리, 각종 행사에 몸담고 있는 회원들의 일정은 맘 놓고 모이도록 내버려두질 않았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라고, 어떤 학생은 정규수업시간을 일부분 빼면서까지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아직 배움과 토론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필자가 과학과 신학 관련 스터디 모임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의외의 사실은 적지 않은 학생들이 ‘과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공계열과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학우들이 스터디에 관심을 표현하고 모임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직 부천 북클럽은 공식적인 시간을 정하지 못해서, 관심을 표하는 학우들이 함께 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학기를 마치고 다음 학기부터는 고정적으로 시간을 정해, 스터디 모임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도 홍보 및 참여를 권유하는 등 스터디 모임을 알리기를 힘쓰고자 한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도 과학과 신학 사이의 오해를 가지고 있는 학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두 학문 간의 올바른 이해를 도와주는 장은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오직 학생으로만 구성된 부천 북클럽 모임에 ‘지원’을 희망하는 분도 여럿 나타났다. 격려차 방문하시고 싶어 하시는 분, 강의 혹은 세미나를 진행해주시겠다는 분, 북클럽 모임을 지도해줄 수 있으시다는 분 등 도와주기를 원하는 분들이 생긴 것이다. 북클럽의 진행자인 필자에게 그러한 분들의 호의는 크나큰 힘이 되어주었다. 

한때, 과학에 문외한이었던 본인이 과연 이러한 모임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다. 그 때마다 과신대 사역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부천 북클럽 회원들, 지원해주시겠다고 하신 교수님과 목사님들, 또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모이는 과신대 멤버들이 있었기에 아직까지 본인이 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과신대와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앞으로도 과신대 활동을 통해 유익하고 설레는 시간이 가득하기를 소망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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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 김진희 (서울 남부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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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과신대 서울남부 북클럽의 회원입니다. 무크따, 창조론자들, 최초의 7일, 오리진과 같은 책에 관심을 가지고 북클럽에 참여해오다가, 창조기사논쟁 북클럽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창조기사논쟁 북클럽이 처음 열렸을 때 저는 첫 번째 발제자로 <리처드 E. 에이버벡>을 발제하게 되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전통적인 성서해석을 선호하면서, 창조과학처럼 극단적 문자주의는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에이버벡의 발제문을 준비하며, 문자적 해석과 고대근동문헌과 비교한 문학적 해석을 조화시키려는 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어지는 다음 북클럽에 두 차례 참석하며 토드 비일, 트램퍼 롱맨의 관점도 보게 되었는데, 트램퍼 롱맨은 에이버벡과 토드비일에 비해 문자적 해석의 한계를 더 많이 보여주고, 대안적 해석을 보여줌으로써 신앙적으로 더 자유롭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에이버벡이나 토드비일과는 달리 문자적으로 24시간으로 해석하지 않고, 첫 3일은 “영역이나 거주지 창조”, 뒷 3일을 “창조될 거주자들이 채울 장소”로 해석함으로써, 문자적 24시간 해석에 매이지 않고, 문학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 냄으로써 성경 해석에 있어서, 신앙적으로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되는 모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발제에 이어서는, 롱맨의 창조기사 해석에 대해서, 에이버벡, 토드비일 등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점과 동의하지 않는 점을 다룬 논평을 봄으로써 타 신학자의 관점에서 롱맨의 해석과 일치하는 부분과 한계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에이버벡은 롱맨의 주장이 너무 오늘날의 과학에 의존한다는 점과 아담 창조 이야기를 비유로 해석하는 것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저 같은 경우 아담 창조 이야기를 비유로 해석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만, 한편으론 이 해석이 가져올 한계점을 생각하면서 아담 창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더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클럽에서는 발제 뒤에 토의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그 시간을 통해서 독서모임에 함께하는 많은 동료들한테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독서 모임 안에서 고단수(?)이신 분들에게 흥미로운 답변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신앙적 선배들이나 신대원 출신 목사님들도 많이 계셔서 무신론자들의 도전에 응답하여 신앙에 도움 되는 말을 많이 듣고, 격려 받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본인의 신앙이 무신론자나 이성의 도전에 직면하시거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폭넓게 알고 싶으시면 과신대 독서모임에 참여하시는 것도 훌륭한 선택일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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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부천 북클럽]



| 이준봉 (과신대 기자단, 부천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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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름방학부터 모인 부천 북클럽 모임이 어느덧 3개월째에 접어들었다. ‘과학과 종교의 대화’라는 강의 마지막 수업에서, 나는 발제를 하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앞으로 여기(서울신학대학교, 부천)에서 ‘과학과 신학 관련 스터디 모임’을 만들 테니 관심이 있으면 같이 모이자”라고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선포했다. 그 때 뜻을 같이한 몇몇 학우들과 함께 우리는 스터디 모임을 진행하였다. 

내가 진행자를 맡아서 하고 있으며, 나 외의 3명의 학생이 모임에 참여해오고 있다. 우리는 첫 번째 스터디 할 교재로 『무신론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우종학 저, IVP)라는 책을 선정했다. 그 책이 과학과 신학 사이의 관계를 전반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주 한 챕터씩 책을 읽고, 같이 모여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책 말미에는 토론 및 토의할 문제가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그 문제들에 대한 논의를 차근차근히 해나감으로써 과학과 신학이라는 분야의 학문을 탐구해나갔다. 토론의 현장은 알차고 풍성하였다. 내가 보지 못했던 점들을 다른 학우들을 통하여 인지해나갈 수 있었다. 우리 중에는 자칭 무신론자라고 하는 학우도 있었기 때문에 대화의 폭이 훨씬 넓게 진행되어 갈 수 있었다.

이 모임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타 학생(스터디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들도 이제는 여럿 보이고 있다. 모든 학과가 인문・사회・예술 분야로 구성된 본인의 모교(서울신대)에서 과학에 흥미를 갖는 학생들이 드러나는 모습이 내게는 경이롭기가 그지없다. 하긴 나 역시 과학에 전혀 무관심하고 한때는 대적(?)하기까지 하였으니 말이다. 앞으로 더 많은 학생들과 더욱 깊은 연구와 토론을 함으로써 학문의 지평이 확장되는 과신대 부천 북클럽 모임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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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잡초와 채소 - 과신대 남부 북클럽 ‘창조기사 논쟁’ 세번째 모임 후기 | 강사은 (서울 남부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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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슬초’ 라고도 불리는 ‘쇠무릎’ 이라는 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길가에서도 많이 자란다고 합니다. 잡초이지요. 줄기가 마치 쇠의 무릎을 닮았다 하여 ‘쇠무릎’이라고 한다는데요. 재미있게도 이 잡초는 관절염, 통풍, 신경통 등의 약재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약재로 사용 가능하다는 것을 농부가 알게 되면 잡초는 재배되게 되고 재배되는 순간 잡초는 채소 또는 약초로 불리게 됩니다.

잡초와 채소의 경계는 이렇듯 경작하는 자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고 처음부터 설계되거나 이름지어진 것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창조 기사 논쟁” 남부 북클럽 셋째 모임에서 잡초와 채소의 애매한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을 창세기 2장에서 만났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창 2:5)

2.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창 1장 셋째 날에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나무, 즉 식물을 창조하신 후 여섯째 날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순서와 맞지 않는 구절입니다. 2장의 이 순서에 대해서 에이버벡(리처드 E. 에이버벡)은 경작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광야나 잡초, 경작물과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만(p. 83) 북클럽 셋째 날, 콜린스(C. 존 콜린스) 글에 대한 논평에서 비일(토드 S. 비일)은 너무나 자신있게 “창세기 2:5에서 먼저 언급되는 ‘관목들’은 황무지에서 자라는 식물을 가리킨다(즉 이들은 창 3장의 저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잡초들을 가리킨다). 그 다음으로는 ‘경작된 작물들’이 언급되는데, ... 이러한 경작물은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p. 226) 라고 주장합니다. ‘개념’이 없었다는 에이버벡의 주장과 달리 일관되게 강한 문자적 해석을 하는 비일의 관점에서 보자면 창 2:5절의 초목과 채소는 셋째날 창조된 것이 아니고 창 3장의 타락 이후 나오게 된 것이라는 것이지요. (씨 형태로 존재하다가 타락 이후에 땅 위로 솟아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비일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아마 모티브가 된 구절은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창 3:18) 이겠습니다.

6일 창조를 늘 강조하는 비일의 주장에 예외가 발생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타락 이후 지구 상에 새로 나타난 잡초랄까요? 이 잡초들은 모두 경작 불가능한 것들이었을까요? 셋째날 창조된 식물은 모두 경작 가능한 식물들이었을까요?
쇠무릎은 셋째 날 창조되었을까요? 아니면 인간이 타락 이후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쇠무릎의 줄기가 소의 무릎을 닮게 된 이유는 마디에 쇠무릎혹파리가 구멍을 내어 부풀어 오르게 했기 때문이라는데 쇠무릎혹파리는 언제부터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을까요? 콜린스는 이 부분에 대해서 또다른 관점의 해석을 합니다만 에이버벡과 비일의 관점을 비교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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