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부천 북클럽 이야기]


| 최경환 (인천/부천 북클럽 회원)





서울신학대학원 우석기념관 교수라운지에서 인천/부천 북클럽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축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박영식 교수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서울신대 조성호 교수님과 김성호 박사님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박영식 교수님의 <창조의 신학>(동연, 2018)을 중심으로 교수님과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메모한 내용을 함께 나눠 봅니다.


  • 나이가 들면서 책을 이해하는 수준이 나아져야 하는데, 성경만큼은 우리가 주일학교에서 배운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성경을 이해하는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 처음 책 제목은 ‘창조의 모험’이었습니다. 창조는 하나님에게도 모험이라는 관점이었습니다.

  • 책 1장은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을 신학적으로 풀었습니다. 저는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곳곳에 창조의 모티브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타락-구원'의 이야기만 익숙하니, 창조는 옛 이야기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창조는 오늘의 이야기이고, 내일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창세기 1장의 내용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기록된 내용입니다. BC. 6세기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세기를 세상의 기원에 대한 정보라는 관점에서만 읽습니다. 그런데 창조 이야기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창조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창조 이야기를 기록한 겁니다. 창조 이야기는 신앙고백이고 설교이자 찬양입니다.

  • 결국 창조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의 삶을 설명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현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는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공포 속에서도 하나님은 빛과 길을 만드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무로부터의 창조와 혼돈으로부터의 창조를 대립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삶의 관점에서 볼 때는 사실 같은 것이다. 혼돈이 심하면 무를 경험하고, 무는 결국 혼돈으로 경험되기 때문입니다.



  • 샤갈의 '하얀 십자가'라는 그림을 보면, 하나의 그림 안에 다양한 시간과 사건이 담겨있습니다. 예수 십자가 주변으로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예루살렘 성전의 명망과 나치 정권의 폭력적인 정치 권력에 대한 그림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십자가는 결국 오늘의 이야기와 깊이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도 이와 같습니다. 창세기 1장은 단순히 창조의 계획이나 순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현실의 처절함과 공포,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흑암과 공허함으로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고 그들이 발 디딜 수 있는 땅을 만드십니다.
다음 모임은 <창조의 신학> 2장, 4장, 6장을 각자 읽고 질문을 만들어 오기로 했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갈지 기대가 됩니다. (모임에 참석하실 분은 010-사삼삼삼-4625로 메시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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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파사데나 북클럽]


| 김영웅 (파사데나 북클럽 회원)




어제 저녁, 파사데나 과신대 모임이 본격적인 첫 모임을 가졌다. 우종학 교수님의 저서 ‘무크따’가 첫 책이었는데 참석 인원 모두가 책을 주의깊게 읽어와서 내가 준비한 요약본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 모임에 대한 관심과 수준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가시적인 증거였다.


독서 모임은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경험해봤고, 모임마다 특색이 있었는데, 이 모임 역시 그렇다. 일단 모인 장소가 파사데나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파사데나가 엘에이 근교에서 알려진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칼텍과 풀러신학교의 존재일 것이다. 과학과 신앙의 대화(과신대)를 위한 모임에서 현직 과학자와 현직 신학자들이 주 구성원이라는 점은 이 모임에서 겉으로 드러난 가장 두드러진 특색이다. 물론 과학자와 신학자만 올 수 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시작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 특색이 주는 장점 중 하나는 엉뚱한 의도를 가진 엉뚱한 질문이 없다는 것이다. 과신대의 입문서 격인 무크따에서 말하는 내용에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공부 안하고 괜히 딴지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대신 워낙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는 분들이라 질문과 대답하는 수준이 높았고, 책의 텍스트를 넘어서는 질문들이 대다수를 이루었다. 




단점이라고 하자면, 각자가 할 말이 많은데 시간상 자제해야 했던 것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주어졌었더라면 아마 열 시간도 쉬지 않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참고로 어젠 중재해서 밤 9시 30분에 간신히 마칠 수 있었다. 어제 내가 준비한 요약본에서의 진도는 절반도 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이쯤이면 이 모임의 성격과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이라 평일 저녁에 시간을 내는 것도 참 어렵고 귀한 일인데, 참석해 주신 분들이 10명이나 되었다. 10명 중엔 신학 관련 분들(현직 신학자/목회자)이 4명, 과학 관련 분들(현직/은퇴 과학자)이 나를 포함해 5명이었다. 나머지 한 분은 목사님의 아내분이셨다.


모임에서 주 관심 대상은 우주나 지구의 기원보단,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것이었다. 질문은 생물학자들에게서가 아니라 신학자들로부터 더 많이 나왔었다. 나도 생물학자이지만, 진화론에 관한 지식은 일반인들이 가진 정도밖에 없기 때문에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임의 수준 상 기본서를 건너뛰고 곧장 아담의 역사성 논쟁이라든지 아담의 진화 같은 책을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기본서 5권을 매달 한 권씩 읽어나가면서 과신대의 기본 흐름을 같이 하고, 그러면서 우리 모임만의 특성을 계발시켜나가는 방식으로 가기로 했다.


다음 달 모임은 10월 24일 수요일 저녁 7시로 잡혔다. 책은 임택규 선생님의 ‘아론의 송아지’이다. 감사하게도 저자께서 와주셔서 직강을 해주시기로 했다. 이 모임이 정말 기대가 된다. 우리들의 궁금증과 의심, 편견들이 해결되어지고 바른 길잡이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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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천 북클럽을 시작합니다]



드.디.어.

인천/부천 지역에도

과신대 북클럽 모임이

시작됩니다.


인천/부천 북클럽 모임에는

특별히 서울신학대학교의 

박영식 교수님조성호 교수님께서

함께 해 주십니다. 

와~


첫 모임은

박영식 교수님께서

이번에 출간하신

<창조의 신학>(동연, 2018)으로

공개특강을 해 주십니다.


시간과 장소를 확인해주세요.


일시: 9월 18일(화) 저녁 7시

장소: 서울신대학교 우석기념관 3층

교수라운지


모임에 참석하실 분들은

아래 전화번호로 문자 한번만 주세요~

010.4333.4625


그럼, 9월 18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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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 강사은 (서울남부 북클럽 회원)



신 - 이 책은 우주에 대한 궁극적이며 합리적인 설명으로서, 우주와 인간 존재에 도덕적인 목표를 부여하는 실재로서의 신 개념을 다룹니다.


약 138억년 전,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그 때, 그 곳(이외 가능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에서 도대체 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영겁과도 같은 긴 시간 끝에서 그를 소리내어 부르는 인류가 나타나기까지의 긴 시간과 지금 이후의 시간 혹은 그 너머에서 자신을 어떻게, 왜 드러내고자 하신 것일까요? 그 연속점에 있는 우리가 아는 신은 어떠한가요? 그 신은 미켈란젤로가 ‘아담의 창조’에서 제우스(그리스 신화의)에 가까운 이미지로 그린 나이 많은 남성 같은 신은 아닐 것입니다. 혹은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반증할 수도 없는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 같다고 해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신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사과나무 밑에서 우주에 작용하는 근본적인 힘에 대한 명상에 잠겨 있던 뉴턴이 문득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다수에게 생소한 이야기이겠습니다. 사실 뉴턴이 당시 세상의 모든 물질 현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의 운동과 충돌로만 설명하려던 데카르트주의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연구한 끝에 도달한 것이 바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중간에 아무런 매개없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중력 개념이었습니다. 과학은 관찰이 아니라 온 세상을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기를 멈추고 완벽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할 때 시작됩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뉴턴이 있기 수천년 전부터 관찰되어온 것이지요.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자연법칙이 존재한다고 믿는 과학의 믿음은 나를 포함한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합리적인 원인이 있다고 믿는 믿음, 즉 신을 믿는 일과 그 원리를 공유합니다. 합리적 질서와 일정한 법칙을 따르는 우주는 매우 이성적이고 아름답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의 원리를 표현할 때 우아하다 혹은 아름답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아름다움은 신앙의 언어로 사용되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원소들을 모아 인류를 만드시고, 기억력과 이성과 재주를 주시고, 축복하셔서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거역하고 주님의 신임을 저버리고 싸우는 자가 되었나이다. ... 주님 앞에 죄인이오니, 자비를 베푸소서" (1979년 미국 성공회 공동 기도서 - 성찬기도 C에서)


현대 과학이 유신론 세계, 특히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탄생해 성장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고 이 책의 저자 키스워드는 말합니다. 만일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욕망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다신교 상황에서라면 과학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주가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하다면 우주를 포함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설명하는 이성적 존재가 있어야 하고 그는 하나여야 합니다. 신을 믿는 일은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합리적인 원인이 있음을 믿는 일이며 그런 종교는 이성을 외면하지 않고 과학을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이 제공하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이성적 설명의 토대를 마련하는 종교는 가장 이성적인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한 분이시며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 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니케아신경의 이 첫 문장은 우리가 믿는 신이 무한하고 한계가 없는 실재이며, 유한한 우주를 통해 표현되는, 영원하며 자존하는 존재로 만물의 원천이자 무한한 힘과 지혜를 지녔다는 훨씬 더 미묘하고 심오한 뜻도 담겨 있습니다.


비록 성서 저자들은 근대과학 세계관을 알지 못했고 하느님이 창조한 자연 세계를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위대한 힘과 지혜를 지닌 신이 자연에 현존하며 자신의 영향을 끼침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줍니다.”(시편 19:1)


성공회 사제이자 신학, 종교철학 교수인 저자 키스 워드(Keith Ward)는 책 말미에서 차분하게 진화론은 현대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며 우리에게 우주가 목적에 들어맞게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깊고 명확한 통찰을 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신의 목적은 세계가 움직이는 과정 자체에 내재된 방향이며, 우리에게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며 진화하는 과정이자, 그 과정이 가리키는 종착지입니다. 신의 목적은 외부 존재에 의해 임의로 이 세계에 부과된 계획이 아니라 세계 자체의 내적 방향이며 목표입니다. 이 목적에 이르는 가치는 과정의 끝에만 위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정적일 필요가 없고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 자체가 가치일 수 있습니다. 가치 실현의 목적인 과정 속에 있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랑과 지혜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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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키스워드와의 인터뷰
아래는 기독교 사상 2013년 8월호에 실린 키스워드 신부님과의 인터뷰를 도서출판 비아(VIA)에서 허락을 얻어 올린 것입니다. 

[인터뷰]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의 지은이 키스 워드 (1) 
https://www.facebook.com/614235431975115/posts/1735752466490067/

[인터뷰]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의 지은이 키스 워드 (2) 
https://www.facebook.com/614235431975115/posts/1737042529694394/

[인터뷰]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의 지은이 키스 워드 (3)
https://www.facebook.com/614235431975115/posts/1738363206228993/

[인터뷰]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의 지은이 키스 워드 (4) 
https://www.facebook.com/614235431975115/posts/1738384502893530/

[인터뷰]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의 지은이 키스 워드 (5) 
https://www.facebook.com/614235431975115/posts/1738412292890751/


참고 자료 2. 대한성공회의 ‘신을 묻다’(키스 워드의 ‘신’을 기초로 한) 영상

1. https://youtu.be/JA5ER7V_U8Y

2. https://youtu.be/dz5gBO9ywRA

#키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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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사진은 지난 기초과정 1후에 우종학 교수님과의 대담 장면입니다.)



| 김진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이번에는 피터 엔즈<아담의 진화> 책 1~4장으로 독서모임을 하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아담과는 진화가 별 상관없다고 보는 편이어서, 책 제목이 그리 내키지 않아 이런 자리가 없었다면 혼자 읽지는 않을 법한 책 제목이었는데요, 이번 모임을 통해서 저는 책 맨 앞에 있는 추천사, 역자 서문부터 서론, 본문 1~4장까지 읽었습니다.

첫 부분부터 계속 읽어 나가보니까 책 제목이 ‘아담의 진화’인 이유는 ‘아담이 진화했다’는 아니고, 현대 과학의 발견에 따라서 ‘아담’에 대한 성경 해석은 진화해왔다는 뜻이고 또 이 책은 ‘진화’를 밝혀내는 목적의 책이 아니라 ‘진화’를 사실로 전제하여 ‘아담’을 어떻게 해석할 지를 이야기하기 위한 책이어서 이런 제목이 붙었으며, 대상 독자는 진화론을 거부할 수 없는 진리라고 인정하여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 진화를 인정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이며, 역자는 진화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거나 진화론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도 유익할 것이라고 합니다.  -역자 서문 첫 페이지





이 책의 추천사, 역자 서문에는 이 책의 주제, 특징, 구성, 대상 독자 정도를 이야기 하였고, 서론에서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서론까지 읽어보니까,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본문은 '1부: 창세기 해석', '2부: 바울이 언급한 아담 해석'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번 독서 모임에서는 1~4장까지 다루기로 하였기 때문에 본문은 4장까지만 읽었습니다.


본문까지 읽어보니까 창조 기사의 실체를 폭로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창조 기사의 특징을 이야기 함으로서 또 다른 의미를 도출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창조기사가 이런 특징을 가진 문학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져 왔고, 다만 이 책이 저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는 창세기를 좀더 자세하게 알려준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는데요, 독서모임에 참석해보니까, 이 주제의 이야기는 교계에서 금기시되고 이런 주제를 다루다가 쫓겨난 사례도 있다고 해서 이 주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 책은 정보를 좀더 얻을 수 있는 수단이지만, 주제가 금기시되는 만큼 대중적으로 읽히기에는 어렵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주제가 금기시되고, 아담을 역사 인물로 보는 기괴한 성경해석이 왜 판을 치는가에 대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저같이 어느정도 공부를 하고, 20세 이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어렸을 때부터 생겨온 사고 체계가 있기 때문에 성경 해석이 이상하면 성경해석을 의심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과학과 배치되는 성경얘기부터 들으면, 과학을 의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고 봅니다. 어떤 것이든 비판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어렸을 때 기괴한 해석을 듣고 자라면,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못 하게 된다는 점이 정말 심각하게 보입니다. 그렇게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성경을 다각도로 자유롭게 보기 어려워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제2부 “바울이 생각한 아담을 이해하기”를 다루는데요, 지금까지 봐왔듯이 많은 교인들은 성경 해석에 대한 의심없이 문자주의적으로 읽어보며 창세기나 바울 기사를 읽어왔었는데, ‘문자주의’라는 틀을 벗었을 때, 바울의 말들을 어떻게 해석할 지 알아보는 것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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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정훈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6명이 모였을 때 조중식 님의 발제로 10장부터 시작.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 나온 견해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다루는 부분에서 시작했습니다.. 도킨스는 인도되지 않은 자연적 과정들이 생물학적 정보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누적적 체가름 또는 ‘선택’과 체가름 과정의 결과가 다음 번 과정에 되먹임 되었을 것이라고 하며 낮은 확률을 높이려 합니다. 28마리의 원숭이가 셰익스피어의 28자로 된 구절을 무작위하게 한글자씩 타이핑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도 합니다. 지나치게 낮은 확률을 높이기 위해 표적글자에 대한 비교 및 보존 단계가 추가됩니다. 저자는 이러한 도킨스의 해결책이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눈먼 진화’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정보의 기원이 유기체 안의 어딘가에 들어 있다고 가정했다는 점이 비판점이었습니다.


정훈재: 도킨스가 이러한 기제들을 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 이유없이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한 부분은 다루지 않았기에 궁금하게 된다. 물론 저자의 얘기대로라면 도킨스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긴 하다.

김진희: 도킨스가 어떤 때는 더 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조금 논리적 비약이 보이기도 한다.

조중식: 확률을 줄이려는 목적의식이 있지 않았을까? 그 의도는 이해가 된다.

김진희: 단순한 우연이 아니고 우연과 필연의 결합. 중간 진화 단계도 있지 않았을까.

조중식: 선택된 형질이 보존되어야 하는데, 그 보존의 판단에는 지적인 정보가 필요한 것 아닌가 라는게 저자의 입장

석기병: 이게 꼭 확률의 문제인가? 확률이 낮다에 대한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석기병: 생명의 탄생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셨는가? 우리가 진화를 바라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듯.

심현준: 레녹스는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 지적 설계론을 과학이 아니라 하는 데에 대하여, 도킨스의 설명도 그리 과학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10장을 시작하였습니다. 열정적인 조중식 샘, 차분하고 정확하게 포인트를 잡아주신 석기병 샘, 늘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시선을 담아내는 김진희 샘, 작가의 희화화 코드를 읽어내신 심현준 샘의 말씀을 들으면서 후기를 정리하였습니다. 11장에서 정보 이론은 저자의 설명도 부족하거니와, 관련된 내용을 이전에 알고 있던 사람도 없었어서 논의가 그렇게 진전되지는 못했습니다. 8월달에 오신다는 우 교수님께 물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요. 레녹스의 입장은 지적 설계론을 과학으로 인정 받고자 하는 목적이 보인다는 심현준 샘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가정이나 전제가 좀 엄밀하지 않아서 약점이 보이는 듯 해서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빈틈의 신’이란 주제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적 설계론’ 진영과 ‘진화적 창조론’ 진영의 차이와 과연 ‘과학’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서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논의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과학의 발전에 대해서 기독교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 창조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얘기하는 것 보다 그게 더 중요한게 아니냐는 심현준 샘의 문제제기에 여러가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 12장의 내용은 빨리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조중식 샘의 탁월한 설명을 들으면서 데이비드 흄의 오류에 대한 저자의 논의를 따라갔지만, 제 입장에서는 흄의 논리에 대해서 ‘이 괴상한 논리는 뭘까?’ 라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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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레녹스는 '지적 설계론'의 전통적 입장에 충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도킨스에 대응하는 그의 논리는 다소 약해 보입니다. 논리의 가정이 엄밀하지 않다는 느낌이어서 안타까왔습니다. 이런 제 개인적인 느낌과 상관없이 북클럽 자체는 매우 재미있는 토론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현재의 교회의 상태에 걱정하면서, 다가올 새로운 과학의 변화에 어떻게 생각을 해야할지 같이 고민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다음 책은 피터 엔즈의 <아담의 진화> 입니다. 모임 날짜는 8/14일 화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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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 김유정 (서울남부 북클럽 회원)


6월 서울 남부 북클럽에서는 알리스터 맥그래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마지막 부분인 7장에서 9장까지를 읽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7장에서 “과학이 궁극적 질문들에 대해, 의미 추구에 답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파고들며, 과학이 그러한 답을 하고자 할 때에 생기는 문제들을 지적합니다. 8장에서는 과학으로부터 윤리의 토대를 찾으려는 시도들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여러 사례를 들며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인 9장에서는 과학의 서사와 신앙의 서사 등 여러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서로 보완하며 건강하게 대화를 나눌 때, 삶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결론을 맺습니다.


맥그래스는 궁극적인 질문들에 대한 반응을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첫째는 답하기를 피하는 것이고, 둘째는 과학을 통해 대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며, 셋째는 다중적인 의미 지도를 사용해서 답하려는 것입니다. 맥그래스는 세 번째 방법을 지지하는 입장, 즉 과학과 신앙이 상호 보완적으로 만들어가는 풍성한 실재관을 통해 궁극적 질문에 답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북클럽 모임에서, 맥그래스의 분류에 기반해 자신은 궁극적 질문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돌아보고, 나누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과학과 도덕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면서, (멜서스의 인구론에서 주장하는 차별과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계 등) 과학을 기반으로 윤리적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한 사례들을 공유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난민 문제 등 현재의 한국 기독교가 봉착한 윤리, 사회적 이슈와 연결지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차례에 걸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책 모임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이는 과학의 서사와 신앙의 서사가 이루는 조화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을 뿐 아니라, 책의 내용과 관련된 토론을 통해 실제적 이슈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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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혜리 (전주 북클럽 회원)





이번 모임에서는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3장과 4장을 함께 읽고 고민하였다. 두 장 모두 과학에 대한 종교적 환상을 걷어내는 작업과 같았다. 먼저 관측기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에 따르면, 관측기구는 과학자의 이론으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관측기구에 따른 결과가 이론과 상반될 수도, 일치할 수도 있는 거다. 만약, 과학자가 자신의 이론에 반하는 관측 결과가 나올 때는 어떠할까? 이 질문은 모임을 뜨겁게 달구는 흥밋거리였다.


우리는 세 가지 경우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다. 첫째는 변칙 사례 해결을 위해 과학자가 대응하는 것이다. 더욱 발전적인 과학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관측 결과가 이론과 다를 지라도, 이론의 설명력에 손을 드는 것이었다. 이 경우에 과학자들은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사례를 무시하고 지나간다. 마지막으로는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변칙 사례가 늘어나 쌓이게 되면, 과학자들은 변칙 사례 문제를 해결하는 이론으로 마음을 돌린다. 이는 논증실증주의가 무너지고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과학처럼 객관적 데이터를 놓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진리의 탐구와 같은 ‘예측’을 하는 과학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설명’이 가능한 과학을 추구한다. 이것이 비판적 실재에 대한 수용이며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이다. 이번 6월 모임을 통해서 각자가 비판적 실재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떠할까 생각했다. 나와 의견이 다를지라도, 상대방의 또 다른 설명을 덧붙여가며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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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강사은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빈틈의 신’ vs. ‘빈틈의 진화’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9장 발제를 준비하며)


아래 3개의 언어를 혹시 이해하시겠는지요?

विज्ञान और धर्मशास्त्र के बीच एक बातचीत
שיחה בין מדע לתיאולוגיה
Συζήτηση μεταξύ επιστήμης και θεολογίας

몰라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Google이 있으니까요. ^^ (굳이 번역기를 돌리지 않아도 이 글 아래에서 알려드릴테니 찾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저자 ‘존 레녹스’는 굳이 구분하자면 지적설계론자인 것 같습니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총기를 잃지 말아야겠다는, 약간은 불편한 생각으로 읽고 있습니다. 그 총기가 다 닳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에서 배울 만한 점도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요. 특히 무신론주의에 대해서 논증하는 태도나 방법에 대해서는 배울 것이 있다 싶습니다. 비록 ‘이건 아닌데’ 싶은 경우도 있지만 말이죠. 그리고 최근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설교하신 모 목사님이 이 책의 추천글을 썼다는 것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무척 새삼스럽습니다.


생명의 기원과 관련해, 지적 설계론자는 ‘빈틈의 신’을 내세운다는 비판을 받고 존 레녹스는 이 책 9장에서 ‘빈틈의 진화’(또는 ‘빈틈의 다윈’)으로 그 비판을 미러링합니다. ‘과학과 신학’이라는 양날의 검을 들고 어느 부분은 과학의 날로 또 어느 부분은 신학의 날로, 혹은 두 날로 동시에 재단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는데요.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문구를 발견하면 “어? 이거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싶다가도 ‘과학’과 ‘신학’이라는 두 날을 적절히 사용해 보면 평정심을 다시 유지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한편으론 내공이 많이 부족하니 날을 좀더 갈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 앞서 3개의 언어로 적어본 ‘과학과 신학의 대화’ 문구에 대해서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존 레녹스는 이 3개의 언어를 번역기 혹은 언어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이해 가능한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구문론적 정보’를 획득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여러 단어의 가능한 조합으로부터 이 글을 읽고 있는 분께 언어로 읽히는 과정이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힌두어 ‘विज्ञान और धर्मशास्त्र के बीच एक बातचीत’를 한글 ‘과학과 신학의 대화’로 번역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구문론적 정보’를 획득했다고 해서 ‘의미론적 정보’를 얻었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이다’ 혹은 ‘우주의 중심이 인간이다’는 말은 종교적 의미로는 은혜로울 수도 있겠지만 과학의 의미로 보면 말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과학으로 볼 때 말이 되지 않는 것을 굳이 종교에서 차용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겠습니다. 인간 마음 속의 종교적 깨달음이 한 창조주가 지으신 우주의 이치와도 상통하는 것이 신비롭게도 맞을테니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종교의 ‘우주의 중심이 인간이다’는 (종교적) 표현에 대해서 관용하는 자세가 있는 것 같지만 종교가 최근의 발언처럼 종교적 표현을 문자 그대로 과학적 사실이라고 우기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요.


어떤 ‘과학’의 날과 ‘신학’의 날을 들고 계신지요?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의미론적 정보를 획득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저희 ‘과신대 분당/판교 북클럽’으로 오셔서 함께 대화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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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이종탄 (전주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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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세 번째로 과신대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3개월만의 만남에 첫 발제를 맡은 터라 긴장되었지만 미리 준비된 컵라면과 김밥 앞에서 긴장감은 공복감에 묻혔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북스터디를 하며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지난 두 번의 모임에서도 느꼈지만 '대화'의 기능과 힘은 매우 폭이 넓습니다. 사실 처음 과신대 모임에 참석했을 때에는 과학과 신학 간 진솔한 대화가 가능할지에 대해 미심쩍었습니다. 일단 과신대에 대해 알지 못했고 오늘날 과학과 신학의 간극이 매우 커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예로 진화론과 창조과학의 대립이 있으며, 현대 학문과 소통하는 대신 '세상'의 것으로 취급하며 무관심한 교회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에 결국 자기 목소리만 내는 데 신경 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에 참석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임을 소개하신 김재상 교수님에 대한 신뢰도 있었지만 과학 또는 신학을, 혹은 둘 다 공부하는 이들의 의견을 들으며 내 지평을 확장하고, 그것이 한 가지에만 매여 있는 것보다 정직하게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의 바람은 예상보다 더욱 많이 충족되었으며 앞으로도 좋은 시간을 갖게 되리라는 기대가 가득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지난 과신대 모임에서 얻은 유익은 크게 3가지입니다. 하나는 '과학 지식에 대한 관심과 이해'입니다. 과신대는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전공했고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제게 우주와 진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고, 티끌만큼이나마 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하나는 '모임원들과의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여러 종류의 모임이 있지만 상당수는 개인이나 집단의 특정 이익을 위해 모입니다. 그렇기에 계산이 들어가고 자칫하면 모임이 딱딱해지기도 합니다. 과신대가 '대화'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얻는 효과도 있겠지만 모임원들 모두가 학문에 대한 의견 뿐만 아니라 소소한 대화를 할 때에도 꾸밈없이 진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시간은 또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리 탐구에 대한 열망과 반성의 기회 제공'입니다. 과학 전공자와 신학 전공자들 사이에서 전문적이고도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았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의 시각이 얼마나 좁고 얕았는지 깨달았습니다. 구덩이를 팔 때 처음에는 땅을 넓게 파다가 점점 한 점을 향해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의 저는 처음 팔 때부터 한 점에만 집중했다면, 과신대를 통해 주변을 파고 있습니다. 한 삽 한 삽 퍼 나르는 흙들이, 각각 고유한 색깔과 향을 갖고 있음에 신기하고 더욱 파고 싶어집니다.


이번 모임부터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시작했습니다. 끝을 측량할 수 없는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활짝 열린 사고와 마음을 갖고 진리를 탐구하는 여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벌써 다음 모임이 기다려집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