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재상 (전주 북클럽 회원)



7장 의미 추구와 과학의 한계


7장에서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앞에서 논의해왔던 작은 결론을 적고 있다. 기독 신앙과 의미라는 맥락에서 과학과 기독신앙의 대화에 대한 한 꼭지를 마무리하고 있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시작하면서, 맥그라스는 과학과 기독교의 전쟁/갈등 서사는 두 진영의 본질적 관계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보았다. 도리어 그는 기독신앙의 서사와 과학의 서사가 함께 할 때 우주 실재가 지니고 있는 풍성한 의미들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실재는 한 측면이나 한 관점에서만 읽히지 않는다. 실재는 다양한 측면이나 층위에서 여러 의미를 보인다. 실재에 대한 건전한 이해는 여러 관점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의미를 종합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맥그라스는 이러한 비판적 실재론을 근간으로 하여, 실재에 대한 과학과 기독교 각각의 설명이 지니고 있는 의미들을 조화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4장에서 우주, 5장에서 다윈 진화론, 6장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해 과학과 기독교가 지닌 다양한 의미들을 제시하며 그 의미 가운데 과학과 기독교의 만남이 지닌 의의를 적었다. 그리고 7장에서는 작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에 따르면, 인간은 궁극적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 가운데서 실재의 의미를 발견해간다. 그 의미들은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생존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실재에 대한 의미를 품고 있는 답을 기독교만이 주지는 않는다. 과학 역시 줄 수 있다. 그런데 우주를 탐구하며 의미를 주는 과학은 결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맥그라스는 마치 전체 그림을 보는 듯이 의미가 담긴 답을 하려는, 왜곡된 과학을 과학제국주의라고 하고 있다. 과학제국주의는 수정이 가능한 우연적 참인 특정 과학 이론이나 체계를 필연적이며 보편적 참으로 확장시키는 우를 범한다. 그리고 형이상학적이며 초월적인 주장이나 신념을 방법론상으로 제거하는 과학제국주의가 실재에 대한 건전한 의미를 준다는 것은 만무하다. 


맥그라스는 과학제국주의를 거부하는 과학이 기독신앙과 함께 상호보완하며 실재에 대한 의미를 풍성히 제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과학은 인간에 대해 물리학, 유전학, 생리학 설명을 제공한다. 인간의 몸, 기관, 조직, 세포, 유전자 등의 기능과 형성에 대한 설명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만으로 인간의 정체성이나 본성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인생의 의미를 다 파악할 수 없다. 기독신앙이 드러내는 인생의 조명이 여기에 필요하다. 삶에 대한 신의 계시와 섭리에 대한 이해와 과학이 주는 설명이 서로 씨줄과 날줄이 되어 인생의 의미를 엮어간다. 과학이 그림의 일부를 세밀히 설명해준다면, 기독신앙은 그림의 큰 틀을 보여준다. 


생각해볼 점


*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과학이 그림의 부분을 설명한다면 종교는 전체 그림을 설명한다고 비유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종교가 전체 그림을 설명한다고 보아야 하는가? 종교도 전체 그림의 작은 퍼즐들을 제공한다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종교는 계시 그 자체가 아니다. 계시에 대한 해석 결과가 종교를 형성한다. 그리고 계시가 온전한 그림 전체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그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우주 실재가 지닌 의미를 파악해 가는 데에는, 과학만으로 종교만으로는 부족하다. 과학과 종교가 제시하는 의미의 지도를 함께 모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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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 김란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시월의 어느 날 밤 분당/판교에 눈빛 형형한 독서쟁이들이 모였습니다.

반가운 a new-face가 오셔서 우리는 오늘도 첫 만남처럼 각자를 재미나게 소개하면서 독서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화학을 전공했고 기병대를 생각하시면 기억이 날 겁니다. 기독교 변증에 대한 관심이 여기까지 오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데 그들의 질문에 정직하고 정확하게 답해 주고 싶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전 칠성 사이다를 생각해주세요.

전 동네사람인데 동네에 있는 유일한 독서모임이고 목사 후보생으로 신학을 위한 지성의 깊이를 더하고 싶어 오게 되었습니다. 못난이로 기억해주세요.

공학박사로 연구원으로 있고 주중 느헤미야 강의로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성경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싶다는 열정이 느헤미야를 알게 했고, 그 앎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컴퓨터 공학을 했고 과학적 사고가 강한 안티 크리스찬인 남편에게 기독교를 제대로 알려 주고 싶어왔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 책을 인상 깊게 읽던 중 마침 그 분의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다고 해서 한달음에 왔습니다.

저는 과신대 분당판교 부지기로 방금 임명 받은 정통 인문학을 공부한 철학적 사유자입니다. 이 바닥에 많이 계시다는 박사는 아니지만 향학열은 높아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아 앎을 위한 주파수를 세우던 중 지기님과 신부님의 소개로 과신대를 소개받아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성공회로 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신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인식의 외피를 걷어내는 귀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공학을 전공한 프로그래머로 북카페 지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상은 오늘 참석한 6인의 자기 소개였습니다. 전체 멤머 15인.



오늘은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인간, Great Mystery>를 석기병 님의 발제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저자는 ‘인간이란 본질적 특성으로,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로서, 생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탐색한다.’로 인간에 대한 간략한 정의와 함께, 심리학의 경험적 연구를 동원하여 ‘인간은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한 부분이라 느끼게 해주는 Big Picture('큰 그림')을 갈망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길 위의 존재로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세상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을 하지만, 자신과 세상을 실제 모습 그대로 보려면 외적인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신적 계시,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주어야 비로소 세상은 우리에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의 모양으로 우리 역사 세계에 들어오셔서 비로소 발코니가 아닌 길에서 우리 실존을 납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자연과학의 통찰을 받아들이되, 기독교 신학으로 인간 본질의 '큰 그림'을 통섭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객관적 설명과 주관적 체험, 지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존 알렉산더 매케이는 “발코니와 길”이라는 유명한 비유를 통해 발코니는 ‘완벽한 관찰자’로 과학이고, 그에게 생과 우주는 영원한 연구와 숙고의 대상이나 발코니 아래 거리의 삶은 흥미를 갖고 바라보는 관찰대상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발코니는 특권적 위치로서, 이 위치에서 우리는 발아래 광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발코니는 하나님 시점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길에서 보는 풍경은 보는 사람 자신이 몰두해 있는 풍경이나 우리는 그 여정의 참여자이며, 거기에 더하여 우리의 시야는 길에서 보이는 것들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 제한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관점과 함께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여자 모두 가장 흥미로워 한 부분이라 길게 적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의 도정에 서 있기에 우리의 안목으로 볼 수 있는 삶의 진면목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가능한 것인데, 이 지점에 신앙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피조물이기에 창조주의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성육신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고,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내주를 그리도 갈구하게 되는가 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들의 독서 토론은 매우 활발했습니다. ‘길 위에 있는’ 우리가 발코니에 서 계신 하나님의 시선을 닮아 생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저자가 말하는 “큰 그림을 찾는” 순례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역사에 있어 ‘진보’란 무엇인가, 기독교의 ‘진보’는 어떤 개념인가 세속사의 ‘진보’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죄’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본질인가, 아니면 생존의 기재인가, 저자가 지지하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 휴머니즘으로부터 교육을 통한 인간 변화론은 어떻게 볼 것인가까지 그 주제에 따라 묵직한 대화가 많이 촉발되었습니다. 진지하게 읽고 사색할수록 인간에 대한 탐구가 깊어지고 그만큼 하나님께도 다가갈 수 있는 책으로 10월 달 분당 독서모임은 또 한 번 책 선정의 “엄지 척”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후기는 발제 내용을 중심으로 적었습니다. 석기병 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11월은 김근주 교수님의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가 선정되었습니다. 많은 분들께 참여를 강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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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놀기도 좋고, 여행 가기도 좋은 날씨죠.

하지만 책 읽기도 좋은 날씨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마음껏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과신대 북클럽에 

참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 (아니 전 세계) 각 지역에서 

과신대 북클럽 모임이 

진행됩니다. 


* 혹시 아래 지역 외에 

새롭게 북클럽 모임을 

시작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저희 사무국으로 

연락주세요. 

모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안양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12일(금) 저녁 7:30

장소: 범계 크리에이티브 카페

교재: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4, 5부

북클럽지기: 김고운 (jclovesme@nate.com)


<부천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16일(화) 저녁 7시

장소: 서울신학대학교 우석기념관 3층 교수라운지

교재: 박영식, <창조의 신학> 2, 4, 6장

북클럽지기: 최경환 (john9567@naver.com)


<관악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16일(화) 저녁 7:00

장소: 더처치 교회

교재: 알리스터 맥그라스, <인간, Great Mystery>


<분당/판교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16일(화) 저녁 7:30

장소: 성공회 분당교회

교재: 알리스터 맥그라스, <인간, Great Mystery>

북클럽지기: 강사은 (overfrost@naver.com)


<전주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19일(금) 저녁 7시

장소: 미정

교재: 알리스터 맥그라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6, 7장

북클럽지기: 김재상 (kjs75mc@naver.com)


<제주 북클럽 모임>

일시: 11월 2일(금) 저녁 8시

소: 제주 에스프레소 라운지

교재: 김기석, <신학자의 과학산책> 1부

북클럽지기: 팽동국 (paeng@jejunu.ac.kr)


<파사데나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24일 (수) 저녁 7:00

장소: 파사데나 장로교회

교재: 임택규, <아론의 송아지> 저자직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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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얀양 북클럽]


| 김고운 (안양 북클럽 회원)




- 일시 : 9/28(금) 저녁 7시 30분

- 장소 : 범계 크리에이티브 카페

- 도서 : 과.도.기 1부~3부

- 참석인원 : 5명 


첫 모임이라 시작은 간단한 자기 소개와 더불어 참석하게 된 계기를 나누었습니다. 


미리 요약해 올 부분을 정해 놓아서, 가지고 온 요약본을 함께 읽고, 내용에 대해 나누고 싶은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 했어요.  


생각해 온 몇 개의 질문을 가지고 토론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무신론자와의 대화와 변증에 대해 할 이야기들이 많았죠.


국제백신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자매는 과도기를 읽고 도전이 되서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더군요. 성경도 제대로 읽고 싶다고 합니다. 한국에 여성 크리스천 과학자가 드문지라 앞으로가 기대가 되었습니다. 


과도기를 읽을수록 모두 성경 해석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성경 본문의 원어의 의미, 문화적 배경 등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네요. 모르는게 많다보니 ㅋㅋㅋ 북클럽이 오래 지속되길 소원합니다. :-)


다음 모임(2주에 한번 모입니다)은 아래와 같습니다.


-일시 : 10/12(금) 저녁 7시 30분

-장소 : 범계 크리에이티브 카페

-도서 : 과.도.기 4부~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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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재상 (전주 북클럽 회원)



8월 전주 과신대 북클럽 BLUE는 특별한 스터디를 했습니다. 로버트 러셀의 과학신학방법론을 소개하는 정대경 박사의 글과 뉴턴 과학에 대한 신학의 영향을 소개하는 김재상 목사의 글을 함께 읽고 토론하였습니다. 러셀이 제안한 방법론인 ‘창조적 상호작용’은 다양한 사고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비판적 실재론, 라카토슈의 연구프로그램방법론 등이 교차하며 하나의 큰 얼개를 만들었습니다. 함께 읽어오고 있는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에서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비판적 실재론을 통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러한 맥그라스의 제안과 연구프로그램이라는 과학철학 작업이 공명을 이루어 나온 러셀의 방법론이었습니다. 뉴턴 과학에 대한 신학의 영향에 대한 과학사적 탐구 결과를 러셀의 방법론으로 읽어보니 과학과 신학의 대화 지점이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9월 모임도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우종학 교수님의 특강을 함께 들었습니다. 특강 덕에 새로운 청년들이 전주 북클럽 회원에 가입했습니다. 식사를 하며 교제를 하고 특강 내용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과학을 과학대로, 신앙을 신앙대로" 그 의미를 살리는 특강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생활이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키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과학을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 사역을 탐구하는 활동이라는 새로운 정의가 인상 깊었다.”는 등 여러 나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맥그라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5장 다윈의 진화이론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신학, 철학, 사회, 역사 측면에서 다윈의 진화이론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와 가치들을 탐구하였습니다. 다윈이 지닌 질문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 전주 북클럽 BLUE 는 전주의 청년들이 모이는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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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조충연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아담의 진화> 


지난 늦은 화요일 저녁. 피터엔즈의 <아담의 진화>를 통해 성실한 발제와 열띤 논의, 삼천포 신학논쟁 등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과신대 분당판교 모임을 가졌습니다. 

<아담의 진화>는 단순히 아담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에 기초한 생물학적 탐구에 집중하기보다는 구약과 신약을 아울러 아담이 가지는 신학적 중요성에 대한, 더 정확히는 아담을 둘러싸고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과 인간의 구원문제가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가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소의 그 이과 출신들의 집요하고 꼼꼼한 과학논쟁은 어느새 존재론적 질문들로 한층 진지해졌던 것 같습니다. 죄와 구원은 무엇인가?


<아담의 진화>에서 저자는 창세기를 제외하고 구약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아담’이 어떻게 바울을 통해 신약 안에서 인간의 구원사역을 위한 중요한 알리바이로 제시되는지를 따라가면서, 바울의 신학적 의도와 해석학적 기획들의 ‘아담'의 개념이 종국엔 시대적이고 문화적 한계안에서 진화해온 것이고 그것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진행형이라며 다소 도전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서의 권위안에서 인간의 원죄와 죄성에 대한 기원으로서 아담이 필요한 이유, 따라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위한 아담-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통해 ‘역사적 아담’과 ‘유대인과 이방인’의 조상으로서의 아담의 위상은 흔들리게 되는 것이죠. 


저자의 진화론 언급은 거의 마지막에 총론에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결국 진화론으로 인해 바울과 성 어거스틴이 정립한 ‘죄의 본성'과 ‘인간의 죽음'의 문제가 불협화음을 일으키게 되었고 따라서 궁극적 실체에 대해서 진화론과 신비와 초월의 신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요청하면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다소 김빠지는 결론에 대해 상대적으로 아쉬움 들기도 했지만 이런 열린 대화의 필요성과 과신대의 공부가 진화론 입장을 전제할 때에도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아담의 진화>로부터 출발된 주제들로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풍성하게 채워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독서모임의 구성원이 늘어서인지 논의의 방향과 의견들이 더 다양해지고 상호 보완되어지는 자리로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각기 다른 분야의 여러 전문직 구성원들의 의견들이 세찬 바람을 일으키면 새로 합류하신 루터교 목사님이 앵커같은 역할로 논의의 신실한 목표점을 잃지 않도록 하셨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상 이과학도들 사이에서 고전하는 예체능과의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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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천 북클럽 이야기]


| 최경환 (인천/부천 북클럽 회원)





서울신학대학원 우석기념관 교수라운지에서 인천/부천 북클럽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축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박영식 교수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서울신대 조성호 교수님과 김성호 박사님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박영식 교수님의 <창조의 신학>(동연, 2018)을 중심으로 교수님과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메모한 내용을 함께 나눠 봅니다.


  • 나이가 들면서 책을 이해하는 수준이 나아져야 하는데, 성경만큼은 우리가 주일학교에서 배운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성경을 이해하는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 처음 책 제목은 ‘창조의 모험’이었습니다. 창조는 하나님에게도 모험이라는 관점이었습니다.

  • 책 1장은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을 신학적으로 풀었습니다. 저는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곳곳에 창조의 모티브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타락-구원'의 이야기만 익숙하니, 창조는 옛 이야기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창조는 오늘의 이야기이고, 내일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창세기 1장의 내용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기록된 내용입니다. BC. 6세기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세기를 세상의 기원에 대한 정보라는 관점에서만 읽습니다. 그런데 창조 이야기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창조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창조 이야기를 기록한 겁니다. 창조 이야기는 신앙고백이고 설교이자 찬양입니다.

  • 결국 창조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의 삶을 설명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현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는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공포 속에서도 하나님은 빛과 길을 만드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무로부터의 창조와 혼돈으로부터의 창조를 대립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삶의 관점에서 볼 때는 사실 같은 것이다. 혼돈이 심하면 무를 경험하고, 무는 결국 혼돈으로 경험되기 때문입니다.



  • 샤갈의 '하얀 십자가'라는 그림을 보면, 하나의 그림 안에 다양한 시간과 사건이 담겨있습니다. 예수 십자가 주변으로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예루살렘 성전의 명망과 나치 정권의 폭력적인 정치 권력에 대한 그림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십자가는 결국 오늘의 이야기와 깊이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도 이와 같습니다. 창세기 1장은 단순히 창조의 계획이나 순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현실의 처절함과 공포,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흑암과 공허함으로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고 그들이 발 디딜 수 있는 땅을 만드십니다.
다음 모임은 <창조의 신학> 2장, 4장, 6장을 각자 읽고 질문을 만들어 오기로 했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갈지 기대가 됩니다. (모임에 참석하실 분은 010-사삼삼삼-4625로 메시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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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파사데나 북클럽]


| 김영웅 (파사데나 북클럽 회원)




어제 저녁, 파사데나 과신대 모임이 본격적인 첫 모임을 가졌다. 우종학 교수님의 저서 ‘무크따’가 첫 책이었는데 참석 인원 모두가 책을 주의깊게 읽어와서 내가 준비한 요약본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 모임에 대한 관심과 수준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가시적인 증거였다.


독서 모임은 살아오면서 여러 번 경험해봤고, 모임마다 특색이 있었는데, 이 모임 역시 그렇다. 일단 모인 장소가 파사데나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파사데나가 엘에이 근교에서 알려진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칼텍과 풀러신학교의 존재일 것이다. 과학과 신앙의 대화(과신대)를 위한 모임에서 현직 과학자와 현직 신학자들이 주 구성원이라는 점은 이 모임에서 겉으로 드러난 가장 두드러진 특색이다. 물론 과학자와 신학자만 올 수 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시작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 특색이 주는 장점 중 하나는 엉뚱한 의도를 가진 엉뚱한 질문이 없다는 것이다. 과신대의 입문서 격인 무크따에서 말하는 내용에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공부 안하고 괜히 딴지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대신 워낙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는 분들이라 질문과 대답하는 수준이 높았고, 책의 텍스트를 넘어서는 질문들이 대다수를 이루었다. 




단점이라고 하자면, 각자가 할 말이 많은데 시간상 자제해야 했던 것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이 주어졌었더라면 아마 열 시간도 쉬지 않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참고로 어젠 중재해서 밤 9시 30분에 간신히 마칠 수 있었다. 어제 내가 준비한 요약본에서의 진도는 절반도 나가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이쯤이면 이 모임의 성격과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분들이라 평일 저녁에 시간을 내는 것도 참 어렵고 귀한 일인데, 참석해 주신 분들이 10명이나 되었다. 10명 중엔 신학 관련 분들(현직 신학자/목회자)이 4명, 과학 관련 분들(현직/은퇴 과학자)이 나를 포함해 5명이었다. 나머지 한 분은 목사님의 아내분이셨다.


모임에서 주 관심 대상은 우주나 지구의 기원보단,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것이었다. 질문은 생물학자들에게서가 아니라 신학자들로부터 더 많이 나왔었다. 나도 생물학자이지만, 진화론에 관한 지식은 일반인들이 가진 정도밖에 없기 때문에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임의 수준 상 기본서를 건너뛰고 곧장 아담의 역사성 논쟁이라든지 아담의 진화 같은 책을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기본서 5권을 매달 한 권씩 읽어나가면서 과신대의 기본 흐름을 같이 하고, 그러면서 우리 모임만의 특성을 계발시켜나가는 방식으로 가기로 했다.


다음 달 모임은 10월 24일 수요일 저녁 7시로 잡혔다. 책은 임택규 선생님의 ‘아론의 송아지’이다. 감사하게도 저자께서 와주셔서 직강을 해주시기로 했다. 이 모임이 정말 기대가 된다. 우리들의 궁금증과 의심, 편견들이 해결되어지고 바른 길잡이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인천/부천 북클럽을 시작합니다]



드.디.어.

인천/부천 지역에도

과신대 북클럽 모임이

시작됩니다.


인천/부천 북클럽 모임에는

특별히 서울신학대학교의 

박영식 교수님조성호 교수님께서

함께 해 주십니다. 

와~


첫 모임은

박영식 교수님께서

이번에 출간하신

<창조의 신학>(동연, 2018)으로

공개특강을 해 주십니다.


시간과 장소를 확인해주세요.


일시: 9월 18일(화) 저녁 7시

장소: 서울신대학교 우석기념관 3층

교수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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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4333.4625


그럼, 9월 18일에 뵙겠습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 강사은 (서울남부 북클럽 회원)



신 - 이 책은 우주에 대한 궁극적이며 합리적인 설명으로서, 우주와 인간 존재에 도덕적인 목표를 부여하는 실재로서의 신 개념을 다룹니다.


약 138억년 전,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그 때, 그 곳(이외 가능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에서 도대체 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영겁과도 같은 긴 시간 끝에서 그를 소리내어 부르는 인류가 나타나기까지의 긴 시간과 지금 이후의 시간 혹은 그 너머에서 자신을 어떻게, 왜 드러내고자 하신 것일까요? 그 연속점에 있는 우리가 아는 신은 어떠한가요? 그 신은 미켈란젤로가 ‘아담의 창조’에서 제우스(그리스 신화의)에 가까운 이미지로 그린 나이 많은 남성 같은 신은 아닐 것입니다. 혹은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반증할 수도 없는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 같다고 해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신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사과나무 밑에서 우주에 작용하는 근본적인 힘에 대한 명상에 잠겨 있던 뉴턴이 문득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다수에게 생소한 이야기이겠습니다. 사실 뉴턴이 당시 세상의 모든 물질 현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의 운동과 충돌로만 설명하려던 데카르트주의의 한계를 인지하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연구한 끝에 도달한 것이 바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중간에 아무런 매개없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중력 개념이었습니다. 과학은 관찰이 아니라 온 세상을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기를 멈추고 완벽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할 때 시작됩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은 뉴턴이 있기 수천년 전부터 관찰되어온 것이지요.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자연법칙이 존재한다고 믿는 과학의 믿음은 나를 포함한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합리적인 원인이 있다고 믿는 믿음, 즉 신을 믿는 일과 그 원리를 공유합니다. 합리적 질서와 일정한 법칙을 따르는 우주는 매우 이성적이고 아름답습니다. 물리학에서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의 원리를 표현할 때 우아하다 혹은 아름답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아름다움은 신앙의 언어로 사용되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원소들을 모아 인류를 만드시고, 기억력과 이성과 재주를 주시고, 축복하셔서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거역하고 주님의 신임을 저버리고 싸우는 자가 되었나이다. ... 주님 앞에 죄인이오니, 자비를 베푸소서" (1979년 미국 성공회 공동 기도서 - 성찬기도 C에서)


현대 과학이 유신론 세계, 특히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탄생해 성장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고 이 책의 저자 키스워드는 말합니다. 만일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욕망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다신교 상황에서라면 과학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주가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하다면 우주를 포함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설명하는 이성적 존재가 있어야 하고 그는 하나여야 합니다. 신을 믿는 일은 우주를 존재하게 하는 합리적인 원인이 있음을 믿는 일이며 그런 종교는 이성을 외면하지 않고 과학을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과학이 제공하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이성적 설명의 토대를 마련하는 종교는 가장 이성적인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한 분이시며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 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니케아신경의 이 첫 문장은 우리가 믿는 신이 무한하고 한계가 없는 실재이며, 유한한 우주를 통해 표현되는, 영원하며 자존하는 존재로 만물의 원천이자 무한한 힘과 지혜를 지녔다는 훨씬 더 미묘하고 심오한 뜻도 담겨 있습니다.


비록 성서 저자들은 근대과학 세계관을 알지 못했고 하느님이 창조한 자연 세계를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위대한 힘과 지혜를 지닌 신이 자연에 현존하며 자신의 영향을 끼침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줍니다.”(시편 19:1)


성공회 사제이자 신학, 종교철학 교수인 저자 키스 워드(Keith Ward)는 책 말미에서 차분하게 진화론은 현대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며 우리에게 우주가 목적에 들어맞게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깊고 명확한 통찰을 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신의 목적은 세계가 움직이는 과정 자체에 내재된 방향이며, 우리에게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며 진화하는 과정이자, 그 과정이 가리키는 종착지입니다. 신의 목적은 외부 존재에 의해 임의로 이 세계에 부과된 계획이 아니라 세계 자체의 내적 방향이며 목표입니다. 이 목적에 이르는 가치는 과정의 끝에만 위치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정적일 필요가 없고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 자체가 가치일 수 있습니다. 가치 실현의 목적인 과정 속에 있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사랑과 지혜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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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키스워드와의 인터뷰
아래는 기독교 사상 2013년 8월호에 실린 키스워드 신부님과의 인터뷰를 도서출판 비아(VIA)에서 허락을 얻어 올린 것입니다. 

[인터뷰]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의 지은이 키스 워드 (1) 
https://www.facebook.com/614235431975115/posts/1735752466490067/

[인터뷰]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의 지은이 키스 워드 (2) 
https://www.facebook.com/614235431975115/posts/1737042529694394/

[인터뷰]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의 지은이 키스 워드 (3)
https://www.facebook.com/614235431975115/posts/1738363206228993/

[인터뷰]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의 지은이 키스 워드 (4) 
https://www.facebook.com/614235431975115/posts/1738384502893530/

[인터뷰] 『신 - 우주와 인류의 궁극적 의미』의 지은이 키스 워드 (5) 
https://www.facebook.com/614235431975115/posts/1738412292890751/


참고 자료 2. 대한성공회의 ‘신을 묻다’(키스 워드의 ‘신’을 기초로 한) 영상

1. https://youtu.be/JA5ER7V_U8Y

2. https://youtu.be/dz5gBO9yw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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