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사진은 지난 기초과정 1후에 우종학 교수님과의 대담 장면입니다.)



| 김진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이번에는 ‘피터 엔즈’의 <아담의 진화> 책 1~4장으로 독서모임을 하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아담과는 진화가 별 상관없다고 보는 편이어서, 책 제목이 그리 내키지 않아 이런 자리가 없었다면 혼자 읽지는 않을 법한 책 제목이었는데요, 이번 모임을 통해서 저는 책 맨 앞에 있는 추천사, 역자 서문부터 서론, 본문 1~4장까지 읽었습니다.

첫 부분부터 계속 읽어 나가보니까 책 제목이 ‘아담의 진화’인 이유는 ‘아담이 진화했다’는 아니고, 현대 과학의 발견에 따라서 ‘아담’에 대한 성경 해석은 진화해왔다는 뜻이고 또 이 책은 ‘진화’를 밝혀내는 목적의 책이 아니라 ‘진화’를 사실로 전제하여 ‘아담’을 어떻게 해석할 지를 이야기하기 위한 책이어서 이런 제목이 붙었으며, 대상 독자는 진화론을 거부할 수 없는 진리라고 인정하여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 진화를 인정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이며, 역자는 진화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거나 진화론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도 유익할 것이라고 합니다.  -역자 서문 첫 페이지

이 책의 추천사, 역자 서문에는 이 책의 주제, 특징, 구성, 대상 독자 정도를 이야기 하였고, 서론에서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서론까지 읽어보니까,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본문은 '1부: 창세기 해석', '2부: 바울이 언급한 아담 해석'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번 독서 모임에서는 1~4장까지 다루기로 하였기 때문에 본문은 4장까지만 읽었습니다.


본문까지 읽어보니까 창조 기사의 실체를 폭로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창조 기사의 특징을 이야기 함으로서 또 다른 의미를 도출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창조기사가 이런 특징을 가진 문학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져 왔고, 다만 이 책이 저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는 창세기를 좀더 자세하게 알려준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는데요, 독서모임에 참석해보니까, 이 주제의 이야기는 교계에서 금기시되고 이런 주제를 다루다가 쫓겨난 사례도 있다고 해서 이 주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 책은 정보를 좀더 얻을 수 있는 수단이지만, 주제가 금기시되는 만큼 대중적으로 읽히기에는 어렵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주제가 금기시되고, 아담을 역사 인물로 보는 기괴한 성경해석이 왜 판을 치는가에 대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저같이 어느정도 공부를 하고, 20세 이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어렸을 때부터 생겨온 사고 체계가 있기 때문에 성경 해석이 이상하면 성경해석을 의심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과학과 배치되는 성경얘기부터 들으면, 과학을 의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고 봅니다. 어떤 것이든 비판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어렸을 때 기괴한 해석을 듣고 자라면,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못 하게 된다는 점이 정말 심각하게 보입니다. 그렇게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성경을 다각도로 자유롭게 보기 어려워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제2부 “바울이 생각한 아담을 이해하기”를 다루는데요, 지금까지 봐왔듯이 많은 교인들은 성경 해석에 대한 의심없이 문자주의적으로 읽어보며 창세기나 바울 기사를 읽어왔었는데, ‘문자주의’라는 틀을 벗었을 때, 바울의 말들을 어떻게 해석할 지 알아보는 것이 기대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이렇게 더울 줄 누가 알았나요? 

과신대 정회원 모임 하루 전날까지도 모임을 취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신대 운영위원회 카톡방은 계속 공방이 오고갔습니다. 

까톡~까톡~까톡~ 


처음에는 장마 때문에 모임이 취소되면 어쩌나 고민했지만, 모임 날짜가 다가오자 오히려 너무 뜨거운 날씨에 행여나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Go~ Go~ Go~


고운 간사님의 친절한 안내 메시지를 받으며 서울숲 모임 장소로 한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북적북적거리지만 역시나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지 공원이 썰렁했습니다. 그래서 쉽게 자리도 잡고 서울숲을 편하게 사용했습니다. 


20여 명의 과신대 정회원들이 모여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엄청 비싸 보이는 김밥과 우종학 교수님이 준비하신 시원한 냉수와 달달한 냉커피로 목을 축였습니다. 


사실 모두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자기 소개를 하면서 서로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습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지나 과신대의 정회원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시간은 모자라고, 날씨는 덥고...^^;;


과신대 간사님들께서 여러가지 야심찬 레크레이션을 준비했지만 모두 생략하고 문화상품권이 걸린 OX 퀴즈로~


특별히 과학 상식 문제들로 구성된 OX 퀴즈로 진행했습니다. 물리학 교수님, 생물학 선생님이 계시니 그 뒤로 서면 될텐데... 굳이 고집을 부리신 분들은 일찌감치 떨어지셨습니다.




OX 퀴즈가 끝나면 원래 계획은 서울숲을 걸으면서 산책하는 것이었지만, 서둘러 짐을 정리하고 시원한 곳으로 도망가듯 피신을 갔습니다. 여름엔 역시 시원한 카페가 정답이네요. 


감사하게도 정대권 교수님께서 커피값 10만원을 후원해 주셔서 모두들 가격 걱정 안하고 먹고 싶은 음료를 맘껏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카페에서도 이야기 꽃은 끝날 줄 몰랐습니다. 한쪽에서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대한 진지한 토론를 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학교에서의 과학 교육에 대한 이야길, 또 다른 한쪽에서는 과신대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대화가 이어집니다. 함께 해 주신 과신대 정회원 여러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정훈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6명이 모였을 때 조중식 님의 발제로 10장부터 시작.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 나온 견해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다루는 부분에서 시작했습니다.. 도킨스는 인도되지 않은 자연적 과정들이 생물학적 정보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누적적 체가름 또는 ‘선택’과 체가름 과정의 결과가 다음 번 과정에 되먹임 되었을 것이라고 하며 낮은 확률을 높이려 합니다. 28마리의 원숭이가 셰익스피어의 28자로 된 구절을 무작위하게 한글자씩 타이핑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도 합니다. 지나치게 낮은 확률을 높이기 위해 표적글자에 대한 비교 및 보존 단계가 추가됩니다. 저자는 이러한 도킨스의 해결책이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눈먼 진화’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정보의 기원이 유기체 안의 어딘가에 들어 있다고 가정했다는 점이 비판점이었습니다.


정훈재: 도킨스가 이러한 기제들을 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 이유없이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한 부분은 다루지 않았기에 궁금하게 된다. 물론 저자의 얘기대로라면 도킨스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긴 하다.

김진희: 도킨스가 어떤 때는 더 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조금 논리적 비약이 보이기도 한다.

조중식: 확률을 줄이려는 목적의식이 있지 않았을까? 그 의도는 이해가 된다.

김진희: 단순한 우연이 아니고 우연과 필연의 결합. 중간 진화 단계도 있지 않았을까.

조중식: 선택된 형질이 보존되어야 하는데, 그 보존의 판단에는 지적인 정보가 필요한 것 아닌가 라는게 저자의 입장

석기병: 이게 꼭 확률의 문제인가? 확률이 낮다에 대한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석기병: 생명의 탄생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셨는가? 우리가 진화를 바라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듯.

심현준: 레녹스는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 지적 설계론을 과학이 아니라 하는 데에 대하여, 도킨스의 설명도 그리 과학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10장을 시작하였습니다. 열정적인 조중식 샘, 차분하고 정확하게 포인트를 잡아주신 석기병 샘, 늘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시선을 담아내는 김진희 샘, 작가의 희화화 코드를 읽어내신 심현준 샘의 말씀을 들으면서 후기를 정리하였습니다. 11장에서 정보 이론은 저자의 설명도 부족하거니와, 관련된 내용을 이전에 알고 있던 사람도 없었어서 논의가 그렇게 진전되지는 못했습니다. 8월달에 오신다는 우 교수님께 물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요. 레녹스의 입장은 지적 설계론을 과학으로 인정 받고자 하는 목적이 보인다는 심현준 샘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가정이나 전제가 좀 엄밀하지 않아서 약점이 보이는 듯 해서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빈틈의 신’이란 주제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적 설계론’ 진영과 ‘진화적 창조론’ 진영의 차이와 과연 ‘과학’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서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논의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과학의 발전에 대해서 기독교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 창조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얘기하는 것 보다 그게 더 중요한게 아니냐는 심현준 샘의 문제제기에 여러가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 12장의 내용은 빨리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조중식 샘의 탁월한 설명을 들으면서 데이비드 흄의 오류에 대한 저자의 논의를 따라갔지만, 제 입장에서는 흄의 논리에 대해서 ‘이 괴상한 논리는 뭘까?’ 라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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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레녹스는 '지적 설계론'의 전통적 입장에 충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도킨스에 대응하는 그의 논리는 다소 약해 보입니다. 논리의 가정이 엄밀하지 않다는 느낌이어서 안타까왔습니다. 이런 제 개인적인 느낌과 상관없이 북클럽 자체는 매우 재미있는 토론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현재의 교회의 상태에 걱정하면서, 다가올 새로운 과학의 변화에 어떻게 생각을 해야할지 같이 고민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다음 책은 피터 엔즈의 <아담의 진화> 입니다. 모임 날짜는 8/14일 화요일입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7월 2일과 9일 2회에 걸쳐 과신대 기초과정이 서울대입구역 <더처치>에서 열렸다더운 날씨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무신론의 도전으로부터 올바른 방향을 찾고 싶어서과학과 신학이 과연 대화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그저 지성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양한 이유를 가진 이들이 모였다과신대 대표이신 우종학 교수의 강연은 다양한 이유와 필요로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케 했다이번 기초과정을 마치면서 소개하고 싶은 청년이 있었다과학주의 무신론자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며 인사했던 눈망울이 큰 청년그 청년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과신대 백우인 기자가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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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인 기자 (이하 백)] 

반갑습니다본인 소개를 부탁드려요. 


[노재훈 학생 (이하 노)]

21살 대학생 노재훈입니다토목공학과에 재학 중인데 올해나 내년 3학년 마치고 군에 입대할 예정입니다.


[백] 기초과정 수료하셨지요축하드려요과신대 회원에도 가입을 하셨던데 계기가 있으셨어요?


[노] 저희 집은 무신론 가족이었습니다교회를 창조과학으로 인해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고 혐오로 점철된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우종학 교수님이 페북에 올리신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교회에 나가게 되었고신학공부도 조금씩 하게 되었습니다과신대 추천 도서 중에서 <무신론 기자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와 알래스터 맥그라스의 책도 읽게 되었습니다과신대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회원가입도 올해 초에 했습니다.


[백] 우 교수님께서 전도를 하셨군요이런 멋진 사건들이 우 교수님을 비롯해 우리 과신대 사역에 힘을 더해줍니다감사합니다제가 목회자다 보니 신앙생활에 대해 관심이 가는데처음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을 때 소감이 어떠셨어요신앙생활 가운데 어떤 소망을 갖고 계시나요?


[노] 장년부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모두 친절하고 잘 챙겨주고 따뜻하게 대해주셨습니다교회를 계속 다니면서 제 삶에 변화가 생기기를 바라고 특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는 모습으로 제가 변화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백] 신앙의 모범이 되는 사람... 오로지 지혜만 구했던 솔로몬 왕이 생각나네요참 귀한 소망입니다예전엔 무신론의 입장이었다고 들었는데 하나님이 창조주로 믿어지시나요?


[노]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라는 것을 말하고 있고무에서 유로의 창조는 하나님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저절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고 믿습니다.




[백] 무에서 유로의 창조가 '전무'인지 '상대적 무'인지 신학적으로 깊게 들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만, 본인의 신앙고백으로 여기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난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노] 제가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에 의존을 많이 했습니다그런데 이제는 하나님 생각을 먼저 하면서 행동을 하려고 합니다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에서 약자를 돕는 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백] 사회적 정의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시네요하이파이브입니다!!! 과신대 얘기를 좀 더 나눠볼게요기초과정에서 유익한 점 혹은 기억에 남는 내용은 어떤 것이었나요?


[노] 교수님을 직접 뵈어서 좋았습니다. <과도기책 사인 받다가 저의 간증을 듣고 교수님께서 반응을 보여 주셔서 좋았습니다기억에 남는 내용은 평범성의 원리였습니다.


[백] ‘인간은 모두 평범하게 창조되었다그러나 우리 모두는 특별하다는 내용 말이죠?


[노] 창조의 방법이 평범하더라도 그 평범한 존재를 하나님이 계획하고 선택하고 인격적인 존재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특별한 존재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백] 과신대가 어떤 단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노] 과학을 먼저 접했다가 신앙을 접하는 사람도 있고과학 때문에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 중에는 진화론이라는 얘기만 들어도 거부하거나 창조과학에서 이것은 틀렸어라고 지적하면 금방 신앙이 무너져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과학은 신앙에 도전이 되고대립구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과신대는 이런 많은 사람들에게 다리가 되어서 신앙을 굳건하게 하는 정말 중요한 사역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왜 그렇게 살고 싶으세요?


[노]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고 비전을 주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주변에서 왜 교회에 다니냐고 물어요전혀 다닐 이유가 없거든요처음에는 그냥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아무렇게나 막 살면 사람들이 저를 욕하기 전에 교회 다니는 사람 전체를 욕하게 되잖아요그렇지만 제가 제대로 열심히 잘 살면 저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은연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우선 저의 부모님부터 도요.


[백]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군요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옥토 밭을 떠올려봤습니다참 좋은 마음의 밭믿음의 밭이 느껴집니다정의롭게실천하는귀한 성도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 글은 노재훈 학생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노재훈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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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5 / 2018.08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과신대 교육/출판 이사님이자 기자단 멤버인 백우인 목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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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이하 과)] 날이 점차 더워지는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백우인(이하 백)] 박사과정 1학기 기말 페이퍼 마무리하느라 부담감 안고 분주하게 지내고 있어요. 빨리 끝내고 방학을 맞고 싶어요. 

[과] 방학은 언제 들어도 신나는 단어죠. 더운 여름 시원한  곳에서 독서와 피서를 즐기는 경우도 많다던데 과신대 추천 도서 중에서 어떤 책을 권하고 싶으신가요?

[백] 과학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과학 그 자체보다는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생각됩니다.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에서  ‘성경은 누가 창조주인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지를 배울 수 있는 반면에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는지 배울 수 있으며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풍성한지 배울 수 있다.’고 씌여 있습니다. 참 명쾌한 설명이죠? 주변에서 아무리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성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에 대해 정확한 앎이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를 과학이 잘 설명해 줄 수 도 있으나 그것은 언제나 근사일 뿐이라는, 과학의 한계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은 우리시대의 과학적인 도전들 속에서, 특히 창조를 어떻게 해석하고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적극 추천하고 싶네요. 

[과] 맞아요. 성경에 대한 이해가 참 중요합니다. 청소년들이 특히 과학과 교회서 배운 내용 사이에서 혼동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목회자로서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백] 교회와 학교에서 배운 내용들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보여주시는 섭리와 자연을 통해 보여주시는 섭리가 상충되는 것이 아닌데도 자꾸 구분을 하고 과학-과학적인 결과물-을 믿으면 마치 신앙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목회자들이 그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고 무조건 적인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저는 첫 번째로 청소년들에게 그들의 궁금증을 말하게 하고 그들의 질문에는 성서에 근거한 얘기들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에 근거한다고 할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근본주의적이고 문자주의적인 해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가 쓰여 질 때의 시대와 문화적 환경 등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어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보다 더 철저하게 성서에서 말하려는 바를 제대로 연구해야겠습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청소년들이 쉽게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 청소년을 위한 교육의 장을 말씀하셨는데  과신대에서 계획 중인 내용을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요?

[백]  우리 과신대에서 곧 청소년을 위한 과학 캠프를 개최하려고 진행 중에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성경을 이해하고 성경과 과학이 어떤 관계인지를 듣게 되고, 또 과학 실험을 통해 성서의 말씀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접해보는 시간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핫 이슈였던 지동설과 천동설을  연극으로 재현해봄으로써 그 시대의 과거로 돌아가 왜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보는 시간 등과 함께 크리스찬 과학자와의 멘토링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의 장을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지 않고 믿음이 더욱 견고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과]  정말 유익한 사역이 되겠네요. 목사님께서 신학 대학생들과 함께 독서 모임을 진행하신 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독서모임에 어떤 마음의 소망을 갖고 계신지요?

[백] 빅뱅은 우주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1학년 과학 교과서 1장에서 다루고 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 같은 일은 빅뱅을 가수 이름으로만 알고 있거나 아니면 그 조차도 모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학’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어렵고 신앙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판넨베르크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에 귀를 닫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과신대가 대학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차근차근 책을 읽고 생각 나눔을 하면서 무조건적인 반감이나 회피하는 사례 없이, 들어야 할 이야기에 귀를 열고  교정해야 할 사고에  유연성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귀하게 쓰여지길 기대하고 있고 함께할 도서는 앞 서 말씀드린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입니다. 

[과]  청소년 캠프와 독서모임을 통해 과신대의 지경이 더 넓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성 | 류인선,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백우인 목사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백우인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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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4 / 2018.07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과신대 자문위원 조성호 교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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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이하 과)]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및 전공 분야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조성호(이하 조)]  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 리더십과 영성 신학 과목을 전공으로 가르치고 있는 조성호 교수입니다. 


[과]  교수님께서 처음 과신대와 함께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조] 과신대는 Facebook을 통해 우종학 박사님과 교류하면서, 또 과신대 회원들의 글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신대를 통하여 (실천)신학의 영역을 확대하고, 폭넓은 학문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여 함께하였습니다. 첫 공식적인 행사로는 동문인 박영식 교수가 대담자로 진행하였던 콜로퀴움(6회 차)에 참석하였습니다. 자주 참여해서 배우고 싶지만, 학교 일정 등 여러 일로 같이 하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과] 최근에 과신대 자문위원이 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과신대 자문위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조] 자문위원은 우 교수님이 부탁하셔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문위원이라고 해서 누군가를 자문해주기 보다는, 자문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큽니다. 앞으로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웃음) 


[과] 현재 신학대학교 내에서 신학 및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이 시대에 신학생 혹은 기독교인에게 어떠한 자세와 행동이 필요할까요?


[조] 저는 이 시대의 과학이나 기술은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같이 분화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나름의 전문적인 영역은 존재하지만), 학문의 영역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신학생이나 기독교인들이 평면적으로, 죽어있는 학문으로서 자신의 신학과 신앙을 가지는 것이 가져서는 안 됩니다. 변화되는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등의 영역까지 자신의 신학과 신앙에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지 늘 성찰하는, 살아 있는 학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교권주의나 창조과학 등으로 혼란에 빠진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열린 마음과 수용적인 태도로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가 신앙인들에게 필요하겠습니다. 


[과] 앞으로 과학과 신학과 관련하여 연구하고 싶으신 분야가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 저는 과학 그 자체의 학문보다도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나타난 사회·문화적 변화를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순수과학처럼 과학만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으로 인하여 일어난 변화가 신학이나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과] 마지막으로 과신대 VIEW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조] 저는 비록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늘 ‘배우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학자(學者)’라는 뜻도 결국 배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수업 시간에 맡은 과목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본래 저 자신의 정체성은 배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가 과신대 활동에 참여하게 된다면, 저는 배우러 가는 것이지, 조금이라도 누구를 가르치려고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토의하고, 서로의 것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작성 | 이준봉,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조성호 교수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조성호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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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3 / 2018.06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과신대 대의원 정준 목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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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이하 과)]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정준(이하 정)] 저는 현재 과신대 독서모임이나 콜로키움, 과신대 교사모임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교회, 더처치의 담임목사입니다. 과신대와 인연을 맺게 된것은 2015년 페북을 통해 우종학 교수님과 페친을 맺으면서부터입니다. 제가 과학고를 나와서 공대를 다니다가 경영학과로 재입학하고, 졸업 후에는 신대원을 졸업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전공 편력이 심한 편인데, 사실 목사가 되어서도 신학과 과학, 과학과 신학의 문제는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들더군요. 그런데 막상 목사가 되니깐 선제적으로 알고, 대응도 해야할 이런 부분에 너무 무지하고 심지어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과신대를 알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또 좋은 지적 도전과 가이드를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더군요. 


[과] 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창세기와 관련해서 불편함을 느끼거나 성도님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 목회 현장에서 보면 사실 드러내놓고 창세기에 관련한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한국의 교인들은 일단 성경에 쓰여져 있는 부분은 일단 의심없이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니까요. 물론 그런 생각은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이겠구요. 그래도 더러는 이런 질문들을 받게 되죠. 창세기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부분들, 이해가 안되거나 믿기지 않는 부분들 말이에요. 

정말 6일만에 온 우주만물들이 만들어졌을까? 아담과 하와가 최초의 사람이라면, 그 아들들은 누구랑 결혼했을까? 진짜 그 때에는 사람이 900년 넘도록 살았을까? 등등... 

최근에 안수집사님 한 분이 이런 문제에 대해 저와 질문과 격론을 벌이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절 보고 창세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창조를 믿지 않고, 창세기에 명백히 기록된 내용을 함부로 해석한다며 성경해석과 설교 코드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며 교회를 안나오시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작과 발단은 6일창조와 무에서 유의 창조에 관한 의견차이였는데(그 분은 오직 성경에 나온 문자 그대로만 믿어야 한다 vs. 저는 창세기의 기록은 당시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필요하다면 당시의 신화적, 상징적 체계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급기야 므두셀레가 969세 산 것을 왜 그대로 믿지 않느냐는 문제로 확대되었죠. 사람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본문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며 너무 문자 자체에 집중하지 마시라 권면드렸습니다. 결국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보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치유 이적과 부활은 어떻게 믿겠느냐며 도저히 제 얘길 듣지 않으시려 하더군요. 이런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마 목회적 성공, 교회의 수적 부흥을 위해서는 창세기는 너무 깊이 안 건드리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와 오해는 그대로 둘 수 없는 부분이 있기에 이것이 딜레마죠.


[과] 과신대에서 '목회자  창조과학에 답하다'는 주제로 7회 콜로퀴움이 열렸었는데  목회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과신대의 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싶습니다.


[정] 개인적으로 이번 콜로키움은 참 좋았습니다. 문제는 교회를 현재 불출석하고 있는 그 집사님이 꼭 오셨으면 했는데, 안 오셨다는 것이 아쉬웠죠. 따지고 보면 그 집사님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에게 창세기와 성경을 어떤 방식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지 처음 가이드를 해주신 분이 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그렇긴 하지만요. 저는 과신대가 목회자들에게 적어도 창세기의 창조사건에 관한 과학과 신학적 소양을 제고하는데 역할을 감당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교회는 목사님의 설교와 가르침이 바뀌어야 양육받는 성도들이 달라지니까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문제 같은데, 목회자가 변해야 성도들이 변하고, 성도들이 변해야 목회자도 변하는 것이겠죠. 다만 저는 목사라서 그런지 목회자들이 더 앞서서 이런 지적 소양을 갖추고, 과학과 신학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과신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이 설 자리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혹자는 종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종교(특별히  기독교)가 과학시대에 요청받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 글쎄요. 저는 종교의 역할(기독교의 역할)이 더 줄어든다고 보진 않습니다. 과학의 발전이 종교의 역할과 수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이죠. 사람들의 설 자리가 축소되기보다는 이전보다 훨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것은 철학적이면서 종교적인 질문이고,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에 대한 답은 과학만으로는 답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로, 인간은 인간의 자리로’, 결국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간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려놓았듯, 과학이 발달할수록 기독교가 과학의 영역까지 침범하거나 과학 위에 서려하지 말고, 과학의 결과물을 수용하면서, 기독교는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가르치신 참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을 해야 가치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등 이런 가이드의 역할은 종교(기독교)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과] 과신대 북클럽이 서울 남부지역 과 분당/판교, 전주, 제주도 등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클럽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가운데 살짝 권유를 하신다면 어떤 부분이 있는지요? 

[정] 지금도 잘 하고 있지 않은가요?  다만 독서모임이 진행되면 아무래도 처음 입문자와 꾸준히 관련 책을 몇 년간 읽어온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독서모임은 점점 더 어려운 책을 택할 수 있는 위험성도... 과신대 제자 양육 시스템을 도입해야할까요? (웃음) 결국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독서모임이 각 지역별로 진행, 확대되고 있다면 이제는 다양한 수준의 다양한 모임들로 확산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신앙생활도 혼자보다는 교회라는 공동체가 필요하듯이 책도 혼자보다는 같이 읽는 것이 훨씬 좋다고 봅니다. 단순한 지식 축적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감에 있어 더불어 함께 걷는 길동무를 얻고 연대해가는 힘이 과신대 독서모임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 백우인,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정준 목사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준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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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2 / 2018.05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과신대 대의원 한은애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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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이하 과)] 회원님의 소개와 과신대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은애(이하 한)] 안녕하세요, 저는 과신대 남부 북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은애입니다. 서울대학교 교육상담 전공에서 석사 학위를 마쳤고, 현재는 박사과정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상담사로 구립 청소년 상담센터와 교회에서 근무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6년 겨울에 총신대학교에서 우종학 교수님의 강의가 급작스럽게 취소된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교수님께서 더처치에서 특강을 열어 주셔서 처음으로 과학과 신앙에 대한 강의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열린 제 2회 포럼에 참석하며 과신대를 알게 되었습니다. 2회 포럼 때, 이전까지 괴리를 느껴 온 심리학 지식과 새로운 신학의 해석이 조화가 되면서 느꼈던 짜릿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과] 과신대 독서 모임에 함께 한지 1년이 넘었지요? 모임을 통해 어떤 부분의 관점변화가 있었는지 말씀 듣고 싶습니다. 


[한] 저는 인문 사회과학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독서모임을 통해 양질의 자연과학지식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성경 해석과 믿음에 대한 관점이 많이 변했습니다. 이 전에는 성경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읽히는 대로 믿어야 한다는 문자주의적 사고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임을 통해 성경 또한 다른 책들처럼, 폭넓은 맥락에서 성실한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약 문자 그대로 성경을 읽고 의심 없이 믿어야 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고 생각해 왔다면, 저는 지금쯤 믿음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성경이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공격하고 혐오하는 일에 자주, 효과적으로 쓰이니까요. 그렇지만 과신대 덕분에 이런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믿음을 확고하게 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과] 과신대의 사역이 점점 지경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과신대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개인에게 혹은 공동체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되시는지요?  


[한] 저와 같이 성경과 교회, 믿음에 대한 의문을 해결할 수 없어서 신앙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과신대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새롭고 산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개인의 믿음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 교회와 신앙 공동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도 과신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저에게 과신대는 여러 의문들을 보다 더 자유롭게 나눌 수 있고, 혼자만 가지고 있는 줄 알았던 괴리들을 이미 고민해 오셨던 좋은 선생님, 선배와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입니다. 


[과] 최근에 과신대 대의원에 추대되셨는데 축하드리고 귀한 섬김에 감사드립니다. 과신대에 바라는 점이나 회원님의 하시는 일과 관련하여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 제게 과신대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아직도 많은 분들이 제가 과신대를 알기 이 전에 가지고 있던 의문들로 힘들어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일 년 동안 저에게는 익숙해지고 편안해진 관점들이라, 이미 많은 분들이 과신대 운동과 비전을 접해보셨을 것이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과신대가 오랫동안 더 많은 분들에게 전해질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전해야 할 곳이 많다고 해야 할까요? 그 길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제가 최대한 돕고 싶습니다. 


[과] 아직 전해야 할 곳이 많다는 말씀에 우리 과신대가 오늘도 가야하는 “사명의 길”, “새롭고 산길”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동역자로서의 귀한 섬김의 마음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성 | 백우인,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한은애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한은애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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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1 / 2018.04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서울남부 북클럽 회원 최자인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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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이하 과)] 본인의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최자인(이하 최)]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외교학전공 석사과정 2학기 재학 중인 최자인입니다. 공부를 따라가는 것을 버거워하고 있고 ... 예수님의 복음이 주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 가운데 있습니다.

[과] 서울남부 북클럽 모임을 알게 된 경위와 참여하게 된 동기를 소개해 주세요.

[최] 저희 과 안에는 윤영관 교수님을 중심으로 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누는 '지혜모임'이 있습니다.  제가 희수 언니(서울남부 북클럽 회원)를 만나게 된 곳이었어요. 그 곳에서 희수 언니가 깊고 끈기 있게 사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니에 대한 궁금증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언니와 대화하면서 서울남부 북클럽 모임을 알게 됐습니다.

[과] 3개월 정도 꾸준히 참여하고 계신데 소감이 있다면?

[최] 먼저 3개월 정도의 참여라는 것이 3번 정도 나간 것 밖에 되지 않아서 소감을 나누기에 약간의 민망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도 나누자면 진리를 깨달아 가는 것에 다양한 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과신대 모임에 참여하면서 제가 생각보다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사고를 즐겨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주로 진리를 알아가고자 하는 다양한 방법들 가운데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추론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과] 과신대에서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포럼과 콜로퀴움, 그리고 교육과정 등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과신대의 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최] 먼저는 제가 과신대의 사역을 경험한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많은 점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만 과신대의 사역이 '개방성'을 지향하는 것 같다고 느꼈고, 그렇기에 그것이 과신대만의 특징과 장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표출해 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가진 배타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신대 사역은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 또 다른 목소리를 내주는 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연역과 귀납을 통해 특정 학문을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듯이, 과신대는 신학과 과학 간의 소통을 마련함으로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 과신대가 나아갈 방향이나 북클럽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최] 과신대가 과신대의 자리를 묵묵히 잘 지켜나가 주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신대 화이팅 :)


작성 | 백우인,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최자인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자인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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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0 / 2018.03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현재 과신대 자문위원으로 계신 제주대학교 팽동국 교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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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이하 과)] 한파가 계속되는 날씨입니다. 건강을 기원하며 교수님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팽동국 교수(이하 팽)] 저는 제주대학교 해양 시스템 공학과에서 음향학을 가르치고 있고 의료용 초음파와 수중음향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학부에서 해양을 전공했고 석사로 물리해양과 수중 음향 그리고 박사 때 의료용 초음파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생활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 오게 되면서 다니게 되었고 중고등부 시절을 지나 교회 생활과 신앙의 기초가  쌓여졌으나 대학에 와서 사회문제와 정의 독재와 교회의 역할 등의 문제로 회의와 방황을 하다가 1990년도부터 남서울 교회 청년부를 다니면서 새롭게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미국 보스톤과 펜실베니아 스테이트 컬리지, 로스엔젤레스에서 유학하는 동안 지역교회에도 속해 있었지만 코스타 집회도 참석하며 섬겼고, 2003년에 제주대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과] 교수님의 청년 시절의 고민의 내용과 모습이 지금 우리 모두의 것으로 느껴집니다. 과신대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궁금하고 제주도에  진행 중인 북클럽 모임에 대해서도 소감이랄까요? (혹은  모임을 결성하고 변화의 모습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


[팽] 우종학 교수와는 세기말부터 거의 매년 코스타 집회에서 만나서 같이 동역하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우 교수는 코스타 첫 참석 때부터 신앙과 학문의 통합 같은 중요한 문제 제기를 했었고 그 계기로 그 일을 책임지고 섬기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창조과학에 기반을 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몇 가지 근본적으로 궁금한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창조과학에서는 부분적인 것만을 비판하지만 거시적인 패러다임이라던가 체계를 만들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아쉬움과 그 한계를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미국 캠퍼스 사역자 한 분의 소개로 물리학자라고 소개한 모리스의 소책자를 통해서 6일 창조 가능성을 얘기하는 우주 물리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2000년 초, 저녁 집회가 끝난 밤 10시쯤 우교수와 둘이서 얘기가 시작되어 거의 밤새워서 질문하고 답했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그랬지만 그 때도 책 제목을 몰라서 나중에 그 책을 보내준다고 했고 보내준지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그 책에 대한 답은 우교수에게 한 마디로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 책의 모든 내용은 가장 기본적인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가정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질 수 없는 내용이다’ 그 뒤로도 가끔씩 이런 내용을 얘기하곤 했었는데 2007년인가 제가 LA에 연구교수로 가 있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우교수와 같이 차를 타고 오가며 다시 여러 궁금한 점들을 물어가면서 창조과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알게 되고 여러 다른 복음적인 해석 방법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이런 내용을 책으로 쓸 예정이라고 해서 적극 지지한다고 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끄따 책이 나오더군요. 우교수 책의 초안을 읽고 그동안 읽었던 하아스마 부부의 오리진 책과 비교해서 간단한 몇 가지 제안을 했었는데 덕분에 별로 한 일 없이 감사의 글에 제 이름이 언급되었지요. 그 후에도 십 수년을 서울과 제주에서 기회 될 때 마다 만나며 대화를 나누며 과신대에 대한 계획과 일정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적극 지지자로서 저의 바뀐 생각과 경험들에 비추어 격려도 하고 중요성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제주에 있어서 한계가 있기에 직접적으로 도와주지도 못하고 소식만 듣고 있어서, 무엇이던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더니 자연과학 전공자도 아닌데 자문위원에 제 이름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제주에 있다보니 모임에도 못 가고 아무 일도 안하며 자문 위원으로 있자니 맘도 편하지 않아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북클럽 지방 모임 하는 것을 보고 제주 모임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교수 만나서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과신대 모임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려 했었는데 어느 날 페이스북에 몇 년 전에 학생들과 책나눔 모임을 하면서 우교수의 무끄따 책을 함께 읽고 제주 방문 일정에 맞추어 모임에 초청 하고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찍었던 사진이 떠 올라, 바로 제주 모임에 대한 생각을 페북을 통해서 밝히며 2~3 사람만 모여도 하려고 했더니 7분이나 적극적으로 답을 해서 작년 11월 1일에 첫 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모임을 하면서 창조과학에서 ‘회심’-회의가 들고 생각이 바뀌게 된 경험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다양한 경험과 신앙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서서히 혹은 특정한 계기로 짧고 격렬하게 바뀌었던 자신의 시각들을 나누었는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과 답을 찾으려고 하는 평신도 뿐 아니라 젊은 목회자 분들도 참여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고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목사 또 교수라는 직함으로 서로 부르거나 불려지면 그렇지 않은 평신도 입장에서 자유로운 생각을 나누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색해도 우리 모임에서는 모든 직함 빼고 그냥 형제 자매 혹은 성도로 부르기로 정하였습니다. 세 번 만났는데도 아직도 적응이 안 되어 직함이 툭 튀어 나오기도 하고 아직도 어색해서 직함과 호칭을 거의 부르지 않는 폐단도 있기는 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도 있고 바쁘기도 한 상황임에도 서귀포 애월 삼양 신제주 구제주 등 생각보다 멀리 퍼져 있어서 운전하는 시간이 꽤 됨에도 아이들 데리고 오는 부부도 있고 아르바이트 일정 조정해서 오기도 하고 아이 맡기고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 번 모임 모두 얘기하다 보면 3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풍성하면서도 아쉬움을 느끼는 열기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 하아스마 부부의 오리진 책의 각 장을 읽고 한 사람이 가능한 짧게 발제하고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고 장소는 제주 반석교회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과] 거룩한 부담감이 제주 북클럽을 만들게 하고 귀한 사역으로 이어지게 되었네요.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청소년들의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질문들-과학과 관련된-에 답하기 위한 노력과 관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팽] 인지과학이 발달하고 양자 생물학 등의  연구 결과물들은 신앙의 기본을 흔들기도 합니다. 자유의지가 있는지, 신앙이 유전자에 의해 가능한지, 등등 성도들에게  질문이 생깁니다.

어려운 질문이고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답할 전문가도 아니고 지식도 부족합니다. 다만 한 가지 드는 생각은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독 신앙인들이 움츠려들거나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강한 거부를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에 궁극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하게 되면 창조주이자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더 드러날 것을 신뢰해야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반대로 과학적 무신론이나 과학만능주의에 너무 쉽게 빠지거나 양보해서 성경 내용을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쉽게 왜곡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아야 될 것 같습니다.


[과] 과신대가  추구하는 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하고 더 필요한 사역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팽] 과신대가 창조과학에 대항하는 유신론적 진화과학이라는 이름이나 그런 것을 지향하는 모임이었다면 저는 아마 관심자였을 수는 있지만 참여는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라는 이름과 지향하는 점에서 보다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문제인 과학 시대에 성경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한다고 생각되었기에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자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이 시대에 그리고 인지과학 유전공학 로봇공학 등 인간과 생물에 대한 관점이나 정의 자체가 부분적으로 바뀔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전 시대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빠른 변화 가운데 살아가고 있고 거의 매일 새롭게 밝혀지는 과학적 사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변화는 더 가속화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성경의 문자적인 내용과 상충되어 보이는 혹은 성경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미묘한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럴 때 어떻게 성경적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여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아가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몇 천 년 전에 특정한 상황의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들려진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우리조차도 변화는 속도에 적응해 나가기 버거운 이 시대에 어떻게 그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해서 이 시대에 적용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과학과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 경제 등 모든 부분에서 변화의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가와 사회와 개인, 가족과 결혼과 성, 교회와 예배의 형태 등 다양한 문제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변화 되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어떻게 성경을 통해 본질과 진리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이 변화되고 다양화된 시대에 적응하여 효과적으로 성경적 진리를 밝히 드러내는데 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과신대 모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최근에 교회의 타락과 교조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청년들과 젊은이들에게 과학기술 시대에 오히려 더 성경적 진리를 알아가야 하고 그 진리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는 사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다변화된 사회에서도 그 진리는 여전히 중요하고 빛이 더 날 수 있다는 소망을 바라보게 하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더 밝히 알게 된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아니 나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그런 과신대 모임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시작해서 먼저 기반을 잘 닦은 다음에 인문 사회 경제 등의 문제들까지도 확장되거나 연합할 수 있는 과신대가 되면 더 좋겠습니다.


작성 | 백우인,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팽동국 교수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팽동국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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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09 / 2018.02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