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 김란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시월의 어느 날 밤 분당/판교에 눈빛 형형한 독서쟁이들이 모였습니다.

반가운 a new-face가 오셔서 우리는 오늘도 첫 만남처럼 각자를 재미나게 소개하면서 독서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화학을 전공했고 기병대를 생각하시면 기억이 날 겁니다. 기독교 변증에 대한 관심이 여기까지 오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저도 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데 그들의 질문에 정직하고 정확하게 답해 주고 싶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전 칠성 사이다를 생각해주세요.

전 동네사람인데 동네에 있는 유일한 독서모임이고 목사 후보생으로 신학을 위한 지성의 깊이를 더하고 싶어 오게 되었습니다. 못난이로 기억해주세요.

공학박사로 연구원으로 있고 주중 느헤미야 강의로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성경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싶다는 열정이 느헤미야를 알게 했고, 그 앎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도 컴퓨터 공학을 했고 과학적 사고가 강한 안티 크리스찬인 남편에게 기독교를 제대로 알려 주고 싶어왔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 책을 인상 깊게 읽던 중 마침 그 분의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다고 해서 한달음에 왔습니다.

저는 과신대 분당판교 부지기로 방금 임명 받은 정통 인문학을 공부한 철학적 사유자입니다. 이 바닥에 많이 계시다는 박사는 아니지만 향학열은 높아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아 앎을 위한 주파수를 세우던 중 지기님과 신부님의 소개로 과신대를 소개받아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성공회로 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신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인식의 외피를 걷어내는 귀한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공학을 전공한 프로그래머로 북카페 지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상은 오늘 참석한 6인의 자기 소개였습니다. 전체 멤머 15인.



오늘은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인간, Great Mystery>를 석기병 님의 발제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저자는 ‘인간이란 본질적 특성으로,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로서, 생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탐색한다.’로 인간에 대한 간략한 정의와 함께, 심리학의 경험적 연구를 동원하여 ‘인간은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한 부분이라 느끼게 해주는 Big Picture('큰 그림')을 갈망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길 위의 존재로서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세상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을 하지만, 자신과 세상을 실제 모습 그대로 보려면 외적인 도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신적 계시,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주어야 비로소 세상은 우리에게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의 모양으로 우리 역사 세계에 들어오셔서 비로소 발코니가 아닌 길에서 우리 실존을 납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자연과학의 통찰을 받아들이되, 기독교 신학으로 인간 본질의 '큰 그림'을 통섭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객관적 설명과 주관적 체험, 지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죠.


존 알렉산더 매케이는 “발코니와 길”이라는 유명한 비유를 통해 발코니는 ‘완벽한 관찰자’로 과학이고, 그에게 생과 우주는 영원한 연구와 숙고의 대상이나 발코니 아래 거리의 삶은 흥미를 갖고 바라보는 관찰대상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발코니는 특권적 위치로서, 이 위치에서 우리는 발아래 광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발코니는 하나님 시점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길에서 보는 풍경은 보는 사람 자신이 몰두해 있는 풍경이나 우리는 그 여정의 참여자이며, 거기에 더하여 우리의 시야는 길에서 보이는 것들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 제한적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관점과 함께 움직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여자 모두 가장 흥미로워 한 부분이라 길게 적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의 도정에 서 있기에 우리의 안목으로 볼 수 있는 삶의 진면목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가능한 것인데, 이 지점에 신앙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피조물이기에 창조주의 시선을 갖는다는 것은 성육신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고,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내주를 그리도 갈구하게 되는가 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들의 독서 토론은 매우 활발했습니다. ‘길 위에 있는’ 우리가 발코니에 서 계신 하나님의 시선을 닮아 생에 대한 통찰력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저자가 말하는 “큰 그림을 찾는” 순례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역사에 있어 ‘진보’란 무엇인가, 기독교의 ‘진보’는 어떤 개념인가 세속사의 ‘진보’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죄’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본질인가, 아니면 생존의 기재인가, 저자가 지지하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 휴머니즘으로부터 교육을 통한 인간 변화론은 어떻게 볼 것인가까지 그 주제에 따라 묵직한 대화가 많이 촉발되었습니다. 진지하게 읽고 사색할수록 인간에 대한 탐구가 깊어지고 그만큼 하나님께도 다가갈 수 있는 책으로 10월 달 분당 독서모임은 또 한 번 책 선정의 “엄지 척”을 자랑하고 싶습니다. 후기는 발제 내용을 중심으로 적었습니다. 석기병 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11월은 김근주 교수님의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가 선정되었습니다. 많은 분들께 참여를 강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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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와 과학자의 유쾌한 대화로 풀어가는 과신톡]




창조는 어떻게(How)? 왜(Why)? 무엇(What)?



신학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창조

과학자가 말하는 우주의 시작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를까요? 

신학자와 과학자의 유쾌한 대화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저녁 7시

장소: 서울신대학교 백주년기념관 512호

대상: 누구나


진행순서


7:00-7:30 "신학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창조" 

박영식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창조의 신학> 저자)

7:30-8:00 "과학자가 말하는 우주의 시작"

우종학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8:00-8:10 휴식 및 질문지 작성

8:10-9:00 신학자와 과학자의 유쾌한 대화 

대담: 박영식 교수, 우종학 교수

9:00-9:15 추첨 및 저자 사인회, 기념 촬영


주최: 과학과 신학의 대화, 서울신대학교 신학과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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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놀기도 좋고, 여행 가기도 좋은 날씨죠.

하지만 책 읽기도 좋은 날씨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마음껏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과신대 북클럽에 

참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 (아니 전 세계) 각 지역에서 

과신대 북클럽 모임이 

진행됩니다. 


* 혹시 아래 지역 외에 

새롭게 북클럽 모임을 

시작하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저희 사무국으로 

연락주세요. 

모임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안양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12일(금) 저녁 7:30

장소: 범계 크리에이티브 카페

교재: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4, 5부

북클럽지기: 김고운 (jclovesme@nate.com)


<부천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16일(화) 저녁 7시

장소: 서울신학대학교 우석기념관 3층 교수라운지

교재: 박영식, <창조의 신학> 2, 4, 6장

북클럽지기: 최경환 (john9567@naver.com)


<관악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16일(화) 저녁 7:00

장소: 더처치 교회

교재: 알리스터 맥그라스, <인간, Great Mystery>


<분당/판교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16일(화) 저녁 7:30

장소: 성공회 분당교회

교재: 알리스터 맥그라스, <인간, Great Mystery>

북클럽지기: 강사은 (overfrost@naver.com)


<전주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19일(금) 저녁 7시

장소: 미정

교재: 알리스터 맥그라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6, 7장

북클럽지기: 김재상 (kjs75mc@naver.com)


<제주 북클럽 모임>

일시: 11월 2일(금) 저녁 8시

소: 제주 에스프레소 라운지

교재: 김기석, <신학자의 과학산책> 1부

북클럽지기: 팽동국 (paeng@jejunu.ac.kr)


<파사데나 북클럽 모임>

일시: 10월 24일 (수) 저녁 7:00

장소: 파사데나 장로교회

교재: 임택규, <아론의 송아지> 저자직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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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얀양 북클럽]


| 김고운 (안양 북클럽 회원)




- 일시 : 9/28(금) 저녁 7시 30분

- 장소 : 범계 크리에이티브 카페

- 도서 : 과.도.기 1부~3부

- 참석인원 : 5명 


첫 모임이라 시작은 간단한 자기 소개와 더불어 참석하게 된 계기를 나누었습니다. 


미리 요약해 올 부분을 정해 놓아서, 가지고 온 요약본을 함께 읽고, 내용에 대해 나누고 싶은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 했어요.  


생각해 온 몇 개의 질문을 가지고 토론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무신론자와의 대화와 변증에 대해 할 이야기들이 많았죠.


국제백신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자매는 과도기를 읽고 도전이 되서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더군요. 성경도 제대로 읽고 싶다고 합니다. 한국에 여성 크리스천 과학자가 드문지라 앞으로가 기대가 되었습니다. 


과도기를 읽을수록 모두 성경 해석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성경 본문의 원어의 의미, 문화적 배경 등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네요. 모르는게 많다보니 ㅋㅋㅋ 북클럽이 오래 지속되길 소원합니다. :-)


다음 모임(2주에 한번 모입니다)은 아래와 같습니다.


-일시 : 10/12(금) 저녁 7시 30분

-장소 : 범계 크리에이티브 카페

-도서 : 과.도.기 4부~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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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과신대 <기초과정I>을 수료하고, 이어서 <기초과정II>에 참여하고 계시는 오세조 목사님(팔복루터교회 담임)을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생물학과 진화과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신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독특한 이력이 궁금해서 직접 만나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어 | 최경환

인터뷰이 | 오세조

사진/글 | 최경환



Q: 목사님 간단한 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석사 과정에서는 분자유전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박사에서는 의과대학에서 면역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포닥 과정을 하다가 그곳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2013년에 루터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2017년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준목을 하다가 갑자기 목사님이 사임하셔서 올해 7월에 안수를 받고 담임목회를 하게 됐습니다. 박사과정에서는 음식물 알러지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Q: 어쩌다 신학을 하시게 됐나요?


저의 신앙적 배경은 성결교입니다. 어려서부터 성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생물을 전공하고, 석사에서도 ‘양서류의 종 분화’에 대한 것을 연구했습니다. 아버님이 목사님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진화론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계가 어색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포닥을 할 때, 부모님께서 모두 돌아 가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가 다 돌아가셨는데, 그때 의학이 별로 도움이 안 되더군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면서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10년 넘게 공부한 내용이 인간의 삶과 죽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목회자가 되겠다는 저의 결정이 일시적인 것이지 주님의 소명인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Q: 그런데 왜 하필 루터교회였나요?


저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신 분이 계신데, 그분이 루터교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때 제가 성경에 눈을 떴습니다. 저는 루터신학을 공부한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낯설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기존교회에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믿음이 저하고는 잘 안 맞더라고요. 너무 율법적이고 목사님을 너무 높이 보는 것이 싫었습니다. 루터신학을 공부하면서 저의 고민을 풀고, 같은 고민을 하는 그리스도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루터교를 선교한 것은 미국의 미조리 시노드(Lutheran Church–Missouri Synod)였습니다. 굉장히 근본적인 시노드였고, 아마 젊은지구 창조론을 지지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학교에는 신학적으로 열려 있는 분들이 많이 있으세요. 물론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어느 신학교나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루터교가 국내 선교를 한 것은 1958년이고, 국내에는 50여개의 교회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저희는 기존 교회를 섬긴다는 마음으로 문서선교와 방송선교를 주로 했습니다. 베델성경연구가 유명하죠. 그러다가 교회를 늦게 시작했습니다. 총회에서 교회를 관리해서 개척을 지원해 줍니다.




Q: 과신대 기초과정 강의는 어떠셨나요?


사실 제가 기초과정을 두 번 들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4기 두번째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수업을 안 들었기 때문에 5기 수업을 다시 들었죠. 수업 내용은 좋았습니다. 교회에서 할 수 없는 얘기들을 듣고, 같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았어요.


기억에 남는 것은 강의가 끝나고 어떤 친구가 했던 질문이 생각나요. 그 친구가 강의를 듣고 너무 좋았나 봐요. 그래서 이걸 교회에 가서 알려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되냐? 질문 하더라고요. 그때 우종학 교수님께서 대답을 어떻게 해 주셨냐면, 질문으로 다시 바꾸셔서, ‘왜 굳이 이것을 교회에서 말하려고 하냐?’ 하셨어요. ‘기존 교인들과 이 문제로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오히려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해라.’ 이렇게 조언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 저건 목회자 마음인데’ 했죠. 굳이 교회에서 분쟁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거죠. 다만 우리는 교회에서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면 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제 기억에 남아요. ‘창세기 1장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가르쳐라. 대신 아이들의 상상력을 막지 말라.’ 이런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교리가 중요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교리가 화석화되면 안됩니다. 교리와 믿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나의 고백이 있어야 하는데, 교리화된 믿음이 조금 답답합니다.


제가 요즘 수원남부 북클럽 준비를 위해 분당 북클럽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진행하는지 배우러요. 그런데 모임에 참석하면서 ‘목회자들이 공부 안 하면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평신도들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목사들 큰 일났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옛날처럼 목회자가 권위만을 내세우면 안 되겠더군요. 평신도들의 신학 수준이 상당합니다. 평신도들이 보다 근원적이고 신학적인 질문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궁금해 합니다. 옛날 신학 가지고는 안 됩니다.


Q: 과신대에 기대하는 바를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과신대가 이런 사역을 하면 좋겠다.’ 조언 한 말씀 해주세요.


과신대가 한국교회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과학적인 관점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혹은 반대로 신학적인 관점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이 양쪽의 접근법을 모두 잘 소개해 주면 좋겠습니다. 또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더 튼튼해지려면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 필요해 보입니다. 성경관, 성경해석이 중요합니다. 너무 민감한 주제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기초적인 성경공부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 과학에 대한 공부를 진지하게 더 해야 합니다. 진화에 대해서도 너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양쪽 공부를 모두 해야 합니다. 어쩌면 과신대는 신학쪽 책들을 많이 읽는데, 북클럽에서 과학책을 더 읽으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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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재상 (전주 북클럽 회원)



8월 전주 과신대 북클럽 BLUE는 특별한 스터디를 했습니다. 로버트 러셀의 과학신학방법론을 소개하는 정대경 박사의 글과 뉴턴 과학에 대한 신학의 영향을 소개하는 김재상 목사의 글을 함께 읽고 토론하였습니다. 러셀이 제안한 방법론인 ‘창조적 상호작용’은 다양한 사고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비판적 실재론, 라카토슈의 연구프로그램방법론 등이 교차하며 하나의 큰 얼개를 만들었습니다. 함께 읽어오고 있는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에서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비판적 실재론을 통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러한 맥그라스의 제안과 연구프로그램이라는 과학철학 작업이 공명을 이루어 나온 러셀의 방법론이었습니다. 뉴턴 과학에 대한 신학의 영향에 대한 과학사적 탐구 결과를 러셀의 방법론으로 읽어보니 과학과 신학의 대화 지점이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9월 모임도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우종학 교수님의 특강을 함께 들었습니다. 특강 덕에 새로운 청년들이 전주 북클럽 회원에 가입했습니다. 식사를 하며 교제를 하고 특강 내용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과학을 과학대로, 신앙을 신앙대로" 그 의미를 살리는 특강이었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생활이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점을 다시 상기시키는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과학을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 사역을 탐구하는 활동이라는 새로운 정의가 인상 깊었다.”는 등 여러 나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맥그라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5장 다윈의 진화이론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신학, 철학, 사회, 역사 측면에서 다윈의 진화이론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와 가치들을 탐구하였습니다. 다윈이 지닌 질문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 전주 북클럽 BLUE 는 전주의 청년들이 모이는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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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칼럼

인스턴트 유감?


권영준 교수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과신대 자문위원)




한 학기 수업을 하다보면 여러 번의 마무리가 필요하다. 우선 정규 강의를 모두 마치는 종강 시간이 있다. 그렇지만 종강이 끝은 아니다. 기말고사의 출제와 채점, 그리고 평가가 남아 있다. 그 다음엔 성적 평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과정이 있다. 물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수들은 성적 합산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 외에는 절대로 평가 결과에 대한 변경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 끝은 아니다. 학생들이 작성한 강의평가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그 수업은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대학에 임용되어 20년이 훌쩍 지나간 지금도 매 학기 강의평가 내용을 확인하는 시간은 늘 설레고 즐거운 경험이다. 특히 서술식 평가문항들은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느낌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큰 도움이 된다. 그중에도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표현들은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몇 년 전 잠시 맡았던, 이공계 학생을 제외한 전교생 대상 어느 교양과목의 평가문 중 “현대물리학의 기적적이고 감동적인 narrative를 살릴 수 있는 강의는 무엇일지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라는 내용은 분명 내 강의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니 내가 좀 더 노력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적적이고 감동적인 narrative’에 대해 공감해 주는 수강생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따뜻해 진다. 지난 학기에 나온 “한 학기 수업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라는 평가문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같다. 


나는 이력서에 취미를 적어야 하는 경우 ‘합창’이라고 적곤 한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 성가대원으로 참여하였고 미국에 거주하던 시절 학교 및 마을 합창단에 참여하다 보니 여러 좋은 지휘자님들을 통해 음악에 대해서, 합창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중 어느 지휘자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음악의 조건은 지금도 무척 공감이 된다. 답을 직설적으로 주는 음악이 아니고 한 곡 전체를 통해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수업에서도 조금 긴 호흡으로 함께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하길 원하고 그렇게 되도록 준비한다. 


강의평가 내용 중 특별히 나를 당혹케 하는 평가문은 ‘강의의 요점을 좀 더 명확히 정리해 주면 좋겠다’라는 내용의 평가들이다. 이 평가를 작성한 학생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면 그 친구를 만나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보고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이 평가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내가 긴 호흡으로 전달하려 한 그 결론의 제시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긴 호흡을 떠받치는 논리의 전개가 취약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나의 동료 교수 중 한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분은 의외의 답을 주셨다. '아마도 고교시절까지 입시위주의 교육을 받다 보니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들의) 정답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제시해 주어야 만족스런 평가가 나올 것이라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효율성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입시 준비를 위한 교육에서는 긴 호흡의 이야기 전개를 함께 즐길만한 여유는 없다. 그저 가능한 짧은 시간에 가능한 많은 문제의 정답을 맞출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 주기만을 바란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 사반세기가 지나도록 자녀가 없다. 그래서 우리 나라 중고생들이 어떤 종류의 교육과 평가를 받는 지에 관해 사실 아는 것이 거의 없기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늘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교사가 모든 것을 소화하기 좋게 다듬고 정리해서 제공해 주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게다가 효율성의 논리 아래 책에 있는 ‘정답’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하는 그런 인스턴트식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전에 과신대의 어느 모임에서 인스턴트 음식과 어머니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마련하신 음식과의 차이를 비유로 들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공부도 이와같은 것이 아닐까.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한가지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공부하고 마침내 지금까지 아무도 찾지 못한 새로운 진리의 한 부분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중한 배움이고 깨달음이 될 것이다.  



어느새 올해도 10월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10월초에는 각종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된다.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본인이 흥미를 느끼는 한가지 주제에 깊이 들어가 연구하다보니 나온 중요한 업적으로 인정받는 결과물들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벨상 소개 기사 옆에는 ‘우리 나라에서는 왜 아직도 과학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가’하는 기사들이 따라 나오곤 한다. 글쎄다. 효율과 경쟁의 깃발 아래 인스턴트식 맞춤형 공부, 맞춤형 연구의 틀을 벗어나 연구자 개개인의 학문적 관심과 흥미에 따라 깊이있는 긴 호흡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이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무엇보다 우선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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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7 /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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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과신대 정회원이 되어주세요. 


지난달 새로운 사역과 도약을 위한 

정회원 모집 공지를 올렸는데, 

한 달 동안 많은 분들이 

후원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처음에 제시했던 목표 치 

10%를 달성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참여와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저희 과신대의 정회원이 되어주세요.


앞으로 더욱 과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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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조충연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아담의 진화> 


지난 늦은 화요일 저녁. 피터엔즈의 <아담의 진화>를 통해 성실한 발제와 열띤 논의, 삼천포 신학논쟁 등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과신대 분당판교 모임을 가졌습니다. 

<아담의 진화>는 단순히 아담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에 기초한 생물학적 탐구에 집중하기보다는 구약과 신약을 아울러 아담이 가지는 신학적 중요성에 대한, 더 정확히는 아담을 둘러싸고 그리스도를 통한 대속과 인간의 구원문제가 어떻게 발전되어왔는지가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소의 그 이과 출신들의 집요하고 꼼꼼한 과학논쟁은 어느새 존재론적 질문들로 한층 진지해졌던 것 같습니다. 죄와 구원은 무엇인가?


<아담의 진화>에서 저자는 창세기를 제외하고 구약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아담’이 어떻게 바울을 통해 신약 안에서 인간의 구원사역을 위한 중요한 알리바이로 제시되는지를 따라가면서, 바울의 신학적 의도와 해석학적 기획들의 ‘아담'의 개념이 종국엔 시대적이고 문화적 한계안에서 진화해온 것이고 그것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진행형이라며 다소 도전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서의 권위안에서 인간의 원죄와 죄성에 대한 기원으로서 아담이 필요한 이유, 따라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위한 아담-그리스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통해 ‘역사적 아담’과 ‘유대인과 이방인’의 조상으로서의 아담의 위상은 흔들리게 되는 것이죠. 


저자의 진화론 언급은 거의 마지막에 총론에 주요하게 등장하는데 결국 진화론으로 인해 바울과 성 어거스틴이 정립한 ‘죄의 본성'과 ‘인간의 죽음'의 문제가 불협화음을 일으키게 되었고 따라서 궁극적 실체에 대해서 진화론과 신비와 초월의 신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요청하면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다소 김빠지는 결론에 대해 상대적으로 아쉬움 들기도 했지만 이런 열린 대화의 필요성과 과신대의 공부가 진화론 입장을 전제할 때에도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아담의 진화>로부터 출발된 주제들로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풍성하게 채워졌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독서모임의 구성원이 늘어서인지 논의의 방향과 의견들이 더 다양해지고 상호 보완되어지는 자리로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각기 다른 분야의 여러 전문직 구성원들의 의견들이 세찬 바람을 일으키면 새로 합류하신 루터교 목사님이 앵커같은 역할로 논의의 신실한 목표점을 잃지 않도록 하셨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상 이과학도들 사이에서 고전하는 예체능과의 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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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부천 북클럽 이야기]


| 최경환 (인천/부천 북클럽 회원)





서울신학대학원 우석기념관 교수라운지에서 인천/부천 북클럽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축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박영식 교수님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서울신대 조성호 교수님과 김성호 박사님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박영식 교수님의 <창조의 신학>(동연, 2018)을 중심으로 교수님과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메모한 내용을 함께 나눠 봅니다.


  • 나이가 들면서 책을 이해하는 수준이 나아져야 하는데, 성경만큼은 우리가 주일학교에서 배운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성경을 이해하는 수준이 너무 낮습니다.

  • 처음 책 제목은 ‘창조의 모험’이었습니다. 창조는 하나님에게도 모험이라는 관점이었습니다.

  • 책 1장은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을 신학적으로 풀었습니다. 저는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곳곳에 창조의 모티브가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타락-구원'의 이야기만 익숙하니, 창조는 옛 이야기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창조는 오늘의 이야기이고, 내일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창세기 1장의 내용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기록된 내용입니다. BC. 6세기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창세기를 세상의 기원에 대한 정보라는 관점에서만 읽습니다. 그런데 창조 이야기는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창조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창조 이야기를 기록한 겁니다. 창조 이야기는 신앙고백이고 설교이자 찬양입니다.

  • 결국 창조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의 삶을 설명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현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는 세상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공포 속에서도 하나님은 빛과 길을 만드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무로부터의 창조와 혼돈으로부터의 창조를 대립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삶의 관점에서 볼 때는 사실 같은 것이다. 혼돈이 심하면 무를 경험하고, 무는 결국 혼돈으로 경험되기 때문입니다.



  • 샤갈의 '하얀 십자가'라는 그림을 보면, 하나의 그림 안에 다양한 시간과 사건이 담겨있습니다. 예수 십자가 주변으로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예루살렘 성전의 명망과 나치 정권의 폭력적인 정치 권력에 대한 그림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십자가는 결국 오늘의 이야기와 깊이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도 이와 같습니다. 창세기 1장은 단순히 창조의 계획이나 순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현실의 처절함과 공포,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신실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흑암과 공허함으로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빛을 창조하시고 그들이 발 디딜 수 있는 땅을 만드십니다.
다음 모임은 <창조의 신학> 2장, 4장, 6장을 각자 읽고 질문을 만들어 오기로 했습니다. 다음 모임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갈지 기대가 됩니다. (모임에 참석하실 분은 010-사삼삼삼-4625로 메시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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