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정 II (2기)

과신대 기초과정Ⅱ를 마치며   |   이준봉


2017년도 말부터 시작된 기초과정Ⅱ가 벌써 막을 내린다. 도대체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솔직히 기초과정Ⅱ 세미나에 너무 집중하지 못하였음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있다. 방학 중이기는 하였지만, 교내근로와 해외 봉사 등으로 외부 일정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물론 생각과 뜻이 있었다면, 그 가운데에서도 집중하여 좋은 성과를 도출할 수 있었겠지만, 나의 한계는 아직 여기까지인 듯싶다.

비록 전력을 다하지는 못하였으나 지난 방학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기초과정Ⅱ’ 수강하였던 것이라고 말하겠다. 적극적이고 세미나에 참여하거나, 기한 내에 과제 제출을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나에게는 이번 세미나에 앉아서 진행자의 강의를 듣고, 참석자들의 토론 및 발제를 듣는 그 시간 자체가 너무나 소중했다. 

약 15명 정도의 인원이 6주간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인원이 적지 않은 만큼 다양한 사람이 모였고 폭넓은 주제가 대화 중에 오고 갔다. 자연스럽게 토론의 소재도 광범위하였다. 그리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나도 좀 더 읽고 생각해볼걸…….’, ‘더욱 철저히 준비했으면 좋았을 텐데…….’ 과신대 기초과정Ⅱ는 나에게 커다란 지적 자극을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기초과정을 수강하는 동안, 나는 본교에서 2박 3일 동안 종교학을 전공하신 교수님과 함께 책을 강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우리는 조너선 스미스의 저작을 읽고 토론했다. 조너선 스미스 시카고 대학의 종교학 교수이다. 그는 종교학을 가르쳤지만, 문화·인류학적으로도 탁월한 안목을 갖춘 저자이다. 그의 연구를 통하여 우린 종교와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통계적 자료나 현상도 얼마든지 종교와 연관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두 학술적 모임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과학과 신학 사이에서도, 고대 근동학과 성서 사이에서도, 정치·사회적 견해와 성서 해석 방식 사이에서도, 어떠한 ‘고리’가 있음을 발견했다. 양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작업은 꽤나 흥미로워 보였다. 앞으로 그러한 작업을 시도해보고 싶다.

6주간의 세미나 기간은 흘렀지만, 걸어가야 할 길이 아직 멀었다. 학기 중에도 틈틈이 관련 주제를 탐구해야겠다. 앞으로 기초과정Ⅱ와 같은 기회가 언젠가 다시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때 나는 또다시 참여하고자 한다. 돌아오는 새로운 장에서는 이전과는 확연히 발전되고 모습으로 탐구하는 내가 되기를 기대한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자리에 함께했던 모든 이들도 그러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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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정 II (2기)

과학과 신학에 대한 이해 정리 및 삶의 현장 분석 적용    |    심기주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과신대 기초과정2도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어쩌다가 나는 지난 4년 동안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 신학과 과학이라는 주제에 흠뻑 빠지게 된 걸까? 신앙에 관심은 있었지만 신앙은 내 일상의 삶과 내 꿈과는 조금 떨어진 독립적인 무언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님을 계속해서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릴 공동체로 부르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작년 하반기 때 숭실대에서 청강한 ‘창조신앙과 자연과학’ 수업을 시작으로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가 내게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 과신대 기초과정2에서 여러 분야에서 일하시는 다양한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때로는 날카롭고 냉철하게, 때로는 마음 뜨거운 메시지로 함께 발제하고 토론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이 강의는 단지 이 수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과신대를 통하여 내 마음 속 깊이 덮어두었던 신앙에 대한 날카롭고도 냉정한 질문을 던지면서 신앙을 좀 더 현실과 가깝게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또 이미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주변에서 신앙과 과학, 혹은 신앙과 일상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고민하는 사람들, 혹은 그저 피했던 사람들에게 신앙과 과학, 신앙과 일상은 얼마든지 양립 가능하며, 신앙은 과학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포괄하는 더 높은 차원의 가치임을 알려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이 강의를 통해 얻게 된 것은 쪽글로 적거나 머릿속에서 정리했었던 신학과 과학에 대한 내용을 마음먹고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테지만 글로 잘 정리해서 남겨놓으면 후에 분명히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하게도 예상 외로 얻을 수 있었던 통찰은 바로 여러 창조론 견해에 대한 논리와 생각이었다. 특히 이번에 과도기 13,14장에 대한 발제와 창조 기사 논쟁에 대한 논평을 쓰면서 창조론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음모론’과 ‘굉장히 확실하고 냉철한 정설’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고대, 중세의 창조론부터 진화적 창조론까지 굉장히 다양한 견해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각자의 견해는 나름의 신학적 토대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상대방의 견해를 비판하는 논리와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그래서 ‘창조 기사 논쟁’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와 ‘나와 생각이 달라도 끝까지 들어보자’였다. 물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견해를 오래듣고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을 볼 수 있고 다시 나의 입장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것이 바로 토론의 순기능이다. 이는 비단 과학과 신학의 관계뿐만 아니라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문제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회복된 우리의 모습은 획일성이 아니라 개성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화한다. 우리의 다름 속에서 서로가 생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겸손할 수 있다. 물론 이 말이 여기저기 휩쓸려 다니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귀를 틀어막고 내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해서는 대화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내가 아는 하나님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하겠지만 틀릴 수도 있다는 여지를 열어두자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그들도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걸 실천하는 것은 지금부터 풀어가야 할 나의 숙제인 것 같다.


  인생의 방향에 대해서도 이번 수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크따를 처음 접했을 때, 유신진화론(진화적 창조론)은 진화론에 신만 끼얹은 무책임한 끼워맞추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보다는 남이 뭐라고 하든 자기 갈 길을 꿋꿋하게 가는 창조과학이 진짜 신앙처럼 보였고, 그렇게 믿지 않을 거라면 믿음은 그다지 ‘믿음직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사실 이건 정보의 불균형과 편견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사실 다윈의 ‘종의 기원’ 이전에도 이미 기독교 내에서 다양한 창조론 견해들이 있었고, ‘종의 기원’ 출판 당시에도 기독교계와 과학계의 다양한 견해들이 있었다. 결국 이 문제는 ‘초자연적인 것’만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자연법칙으로 설명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필요없다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연법칙으로 설명이 된다면 하나님이 필요없다는 생각은 과학을 뛰어넘는 형이상학적 설명이다. 과학은 이 문제에 대해서 침묵한다. 나는 바로 여기서 기독교 신앙의 원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과학적으로 하나님이 보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인 것이다. 내게 신앙은 과학으로 따질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나의 세계관이며 인생을 아우르는 버팀목이다. 아무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이 신앙이고, 이해관계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을 헤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가페적인 사랑, 즉 신앙이며 또한 내가 있는 배움터와 일터에서 실천해나갈 방향성인 것 같다.



신학과 과학, 철학과 공학 

그 합주 앞에 서서 감상하다

불협화음이 될 것 같아 뺄 것을 찾아보다

뜻밖의 하모니에 멍하니 서있다

감상하다 고민하다 어디로 갈까

눈앞의 심포니에 마음이 간다.

융합이다 대화다 말만 하지 말고

기꺼이 빠져들어 한번 찾아보다

나의 길은 어딜까 괜찮은 걸까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이상한 대학생.



  나는 커서 뭐가 될까? 맡은 바가 늘어날수록 권리도 늘어나지만 그에 따른 죄의 유혹 또한 늘어날 것이다. 무엇을 맡게 되든 능히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길, 그렇게 어떤 질문이든 솔직하게 하나님께 말하고 또 공동체에 말하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길 기대한다. 


“신앙은 질문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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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정 II (2기)

과학의 도전에 대한 나와 교회의 대응    |    최재공


  마지막 과제를 제출할 수 있게 되어 뿌듯합니다. 개별목표에 서평 및 보고서 완료를 썼는데 그 목표가 실현되어 더욱 기쁩니다. 성실히 읽은 책을 완성된 글로 표현하는 건 언제나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달라진 나의 모습과 직접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두 번째 과제였던 창조기사 논쟁 서평은 성경 자체를 더욱 실증적으로 이해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한 과정이었습니다. 교회만 다녔다면 평생 몰랐을지도 모를 것들을 접하면서 성경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지평이 넓어진 것 같아 과신대 과정이 꽤나 만족스럽습니다.


  사실 제 일상에는 젊은 지구론이나 창조과학회와 같은 이슈가 없습니다. 학생 때 다니던 교회나 속했던 선교단체에서도 그런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창조과학을 비판하거나 이상하다는 소리만 어쩌다 듣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과신대를 하면서 제 안의 진화와 창조에 대한 정리하지 못한 어떤 것들이 생각나긴 했습니다. 신학과 과학의 충돌로 신앙이 흔들리거나 반대로 과학전반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그런 일은 없었지만 이 기회에 둘의 관계를 잘 정립한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젠 신학으로 과학을 재거나 과학으로 신학을 판단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근거에 대해 차근차근 반론하거나 그 한계를 집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과 그것에 대한 해석 그리고 성경말씀과 그것에 대한 해석을 예리하게 구분하는 능력과 감수성을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 계속해야 할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야의 서로에 대한 거만한 태도가 문제를 일으키고 겸손한 태도가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는 것을 느껴서 인생의 어떤 가르침까지 과신대에서 얻어가는 것 같아 들인 시간과 노력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지난주부터는 새로운 교회에 등록했습니다. 몇 주 동안 새신자 교육 받고 그룹모임도 참여할 것 같습니다. 과신대에서 공부한 것을 기반으로 제가 있는 곳에서 과학과 신학의 몰이해가 있다면 잘 설명해주기도 하고 제대로 된 이해를 돕는 다양한 루트도 소개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과 웹툰, 유투브 등 과학과 신학이 잘 대화하고 있는 채널들을 알고 있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같이 책모임과 글쓰기 모임을 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것들이 과신대 졸업생들의 사회와 교회에 대한 실제적인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과학의 발전을 통해 성경해석의 변화가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지 궁금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수인 저도 과학 분야의 발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가 기독교인이 돼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20대 중, 후반을 거치면서 조금씩 알아갔는데 30대 초입에는 과신대를 만나 과학과 기독교세계관의 관계를 잘 정립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과신대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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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정 II (2기)

창조기사논쟁(새물결플러스) 서평    |    최재공



문학적으로 본 “날”, 상호텍스트성과 배경 (리처드 E. 에이버벡)

창세기가 쓰일 당시의 문화적 상식에 기대어 쓰였다. 당시의 한계 상황을 인정하는 해석이다. 6일 창조와 안식일은 유비적 표현으로 해석해야 한다. 창세기는 유비와 의인화 그리고 당시 자주 나오는 패턴적 기술로 이루어졌다.


문자적 해석 (토드 S. 비일)

창세기의 비유적 해석의 정당성이 없다. 창세기의 어떤 부분은 역사적 사실로 해석하고 어떤 부분은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건 해석학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문맥에 따른 해석: 유비적 “날들” (C. 존 콜린스)

성서의 본래 의도대로 그것을 사용해야 옳다. 이는 쓰인 시기와 쓴 사람과 당시의 독자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창세기의 각 장들을 문학적, 언어적 관련성에 기인한 해석을 해야 할 것이다. 창조 6일이 우주나 지구의 시작이어야 할 근거는 없다. 창세기는 다른 책과 다르게 “고양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창세기가 설명문이 아닌 어떤 묘사를 통해 더욱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게 하는 문학 장치가 특징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창조기사는 패턴과 유비를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한다.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how에 대한 대답을 위한 책이 아니다.


창세기 1-2장이 주는 교훈(혹은 교훈이 아닌 것) (트렘퍼 롱맨)

성서는 각각의 책에 따라 장르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읽고 해석해야 한다. 창세기 1-2장을 해석할 때는 첫 째, 비유 언어를 사용했다는 것, 둘 째, 두 창조 기사의 순서가 다르다는 것, 셋 째, 고대 근동의 창조 기사들과 상호작용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즉 성서는 고대 근동의 신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대 우주론을 반영하는 창세기 1장 (존 H. 월튼)

현시대의 우리는 1차 독자가 아님을 인식하고 성서가 쓰였을 당시의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통해 텍스트를 해석해야 한다. 중요한 부분은 창세기 창조기사를 기능 중심의 우주 존재론에 기대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능이 중시되는 대화에서 물질의 존재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물론 하나님이 어느 시점에 무에서부터 물질을 창조했지만 창세기 1장의 창조는 기능의 창조를 말한다.




창세기를 읽는 나의 관점


  창조기사 논쟁은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창세기를 어떻게 읽어야지 하는 선명한 관점은 없었지만 저자들의 관점은 생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창세기를 ‘기능’에 초점을 둔 창조이야기라는 설명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창조하면 당연히 물질의 창조로만 이해하고 있었는데 나의 생각의 비루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기능을 중시하는 해석은 창세기 이야기가 어떤 의미를 생성하고 그로인해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게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려는 성경의 목적과 일치한다. 또한 자연세계의 물질 양상을 탐구하는 과학이라는 장르와 성경을 분리시키는 데에 적절한 해석법이기도 하다. 성경을 과학책으로 읽으려고 하는 오류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몇몇 저자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해석은 ‘쓰인 당시의~’를 고려하라는 것이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적용가능하다는 믿음은 있다. 하지만 그건 성경 전체의 단어들, 문장들 그리고 문단들에 의해 해석된 하나님의 어떤 메시지가 진리의 말씀이란 말이지 진리의 메시지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지 않는다. 성경이 쓰인 사회 문화적 맥락 안에서의 해석 이후에 오늘날의 나의 상황에 적용을 모색해야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장르 개념으로 창세기를 들여다본 것도 흥미로웠다. 문학의 내용과 상관없이 장르 자체가 주는 정보가 있다. 분명 창세기는 설명문이 아닌 어떤 “격양된” 표현과 비유적 표현이 있는 장르이다. 설명문만이 역사성이 있거나 권위가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에게 있었던 오류는 성경의 무오성을 담을 수 있는 장르는 설명문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성경 전체를 문자주의적으로 읽진 않고 내포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장르는 여전히 어떤 명백한 증거들이 있는 역사책이라고 생각했다. 신화적 상상력에 의해 쓰인 이야기책이 아니라. 하지만 장르 개념은 성경을 특히 창세기를 역사책 그 이상의 무엇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문자적 해석은 나에게 별로 설득력 있지 않았다. 성경을 어떤 고정된 시선으로 일괄되게 해석해야하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왜냐하면 성경 각 책의 저자도 다르고 쓰인 시대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감도 성경 저자들에게 일괄되게 임했다고 볼 근거도 없다. 성경 저자의 의도에 따라 달리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어떤 해석의 방법을 결정하고 읽는 건 정작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발견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같은 저자가 쓴 같은 책 안에서도 문맥과 분위기를 고려하여 앞 절 부분과 뒷 절 부분을 달리 해석하는 것도 같은 의미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사실 성경을 잘 안 읽는 나에게 이런 성경해석의 지평에 대한 논의는 커피 맛을 잘 모르는 내가 커피 향에 대한 갑논을박에 대한 글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떤 감동이나 감수성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다만 다양한 성경 해석의 지평의 존재를 알았으니 성경을 실제로 읽을 때 내가 한 해석이 분명 잘못된 해석과 적용일 수 있다는 의심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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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에 관한 독서 길잡이 - 10단계


1. 창조과학 얘기만 들어봤다면, 진화는 공산당처럼 나쁜거라고만 생각했다면, 도대체 창조과학이 왜 이슈가 되는지 궁금하다면, 김민석 작가의 <창조론연대기>를 읽는다. 만화다. 재밌다. 로맨스도 나온다.


2.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지식들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무신론기자, 크리스천과학자에게 따지다> (무.크.따) 를 읽는다. 한박사와 박기자의 대화를 따라가면서 숲을 보듯 전체를 조망해 본다.


3. 그리고 나면 평소 들어왔던 창조과학 주장들이 궁금해 질텐데, 임택규 작가의 <아론의 송아지>를 읽으며 어릴 때부터 들어온 창조과학 괴담들의 과학적 오류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창조과학의 물을 뺀다. 


4. 그 다음엔 <개혁신학 vs. 창조과학>을 읽으며 창조과학 주장에 담긴 한자풀이를 비롯한 신학적 오류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5. 과학 때문에 생기는 갈등, 도킨스 등 무신론자들의 공격, 그리고 창조과학의 문제 등 이런 도전들에 어떻게 응답해야할지 궁금하면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과.도.기.)를 읽는다. 


6. 인류의 기원, 아담, 원죄 등은 그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궁금해지면,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칼빈신학교의 하스마 교수 부부가 쓴 <오리진>을 정독하며 숲에 담긴 나무들을 하나하나 공부한다.


7. 그러다 창세기 1장의 연대가 궁금해지면 <최초의 7일>을 가볍게 읽어준다.


8. 다양한 견해가 있는걸 깨닫고 보니, 진화적 창조를 수용하는 사람들의 신앙에 대해 궁금해질텐데 프란시스 콜린스 박사의 <신의 언어>를 읽는다.


9. 결국, 창세기 1-2장 해석이 중요하겠구나라는 심각한 고민이 들면 복음주의 신학자 5명이 서로 토론하는 <창조기사 논쟁>을 꼼꼼이 읽으며 구약성서학자들의 의견이 어떻게 나눠지는지 파악해 본다.


10. 도대체 창조과학자들은 어쩌다 괴담과 반과학적인 주장을 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이 궁금해지면 저명한 과학사가 인 넘버스의 <창조론자들>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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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문서


1) 기본 입문

-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 When Science Meets Religion (이안 바버 Ian G. Barbour, 김영사)

- 무신론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우종학, IVP)

-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Responses to 101 questions on God and evolution (존 호트 John F. Haught, 지성사)

- 예수와 다윈의 동행 (신재식, 사이언스북스)

- 신의 언어 The Language of God (프란시스 콜린스 Francis S. Collins, 김영사)

- 하나님과 진화를 동시에 믿을 수 있는가? Can Your Believe in God and Evolution? (테드 피터스 Peters Ted & 마르티네즈 휼릿 Hewlett, Martinez)

-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우종학, 새물결플러스)


2) 심화 입문

- 오리진 Origins (데보라 하스마 Haarsma, Deborah B. & 로렌 하스마 Haarsma, Lauren, IVP)

- 한눈에 보는 기원 논쟁 Mapping the Origins Debate: Six Models of the Beginning of Everything (제럴드 라우 Gerald Rau, 새물결플러스)

- 현대과학과 기독교의 논쟁 Science and christianity: Four Views (리챠드 칼슨 Richard F. Carlson Ed, 살림)

- 창조와 진화에 대한 3가지 견해 Three views on creation and evolution (모어랜드 Moreland, James Porter, IVP)

- 다윈의 경건한 생각 Darwin's pious idea : why the ultra-darwinists and creationists both get it wrong (코너 커닝햄 Conor Cunningham, 새물결플러스)



2. 과학사 관련


1) 입문

- 창조론자들 The Creationists (로널드 넘버스 R. Numbers, 새물결플러스)

-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 Galileo goes to jail and other myths about science and religion (로널드 넘버스 R. Numbers, 뜨인돌)

- 신과 자연: 기독교와 과학 그 만남의 역사 God and nature : historical essays on the encounter between Christianity (데이비드 린드버그 Linberg, David C.,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 심화


3. 과학


1) 지구연대

2) 우주론 및 우주나이

3) 생물학 및 진화이론


4. 성서신학


1) 성서신학 일반

-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 Inspiration and incarnation : evangelicals and the problem of the Old (피터 엔즈 Enns, Peter, CLC)


2) 창세기 1장 관련

- 창세기 1장의 잃어버린 세계 (The)lost world of genesis one (존 월튼 John H. Walton, 그리심)

- 아담의 역사성 논쟁 Four Views on the Historical Adam (라뮈르 Dennis Lamoureux 외, 새물결플러스)

- 아담의 진화 Evolution of Adam: What the Bible Does and Doesn’t say about Human Origins? (피터 엔즈 Enns, Peter, CLC)

- 『창세기 1장과 고대근동우주론 Genesis 1 as Ancient Cosmology』 (존 월튼 John H. Walton, 새물결플러스)


5. 과학신학


1) 입문서

- 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Quarks, Chaos & christianity : questions to science and religion (존 폴킹혼 John Polkinghorne, 우종학 역, SFC)

- 기독교 신학과 자연과학의 대화 (김균진 & 신준호, 대한기독교서회)


2) 심화

- God and the Cosmos: Divine Activity in Space, Time and History (Harry Lee Poe & Jimmy H. Davis)


6. 과학철학 관련


1) 입문서

2) 심화


7. 과학주의 무신론 비판


- 도킨스의 신 Dawkins' God (알리스터 맥그래스 Alister McGrath, SFC 출판부)

- 도킨스의 망상 The Dawkins Delusion? (알리스터 맥그라스 Alister McGrath & 조에나 맥그라스 Joanna Collicut McGrath, 살림)

- 새로운 무신론자들과의 대화 (윤동철, 새물결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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