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남부 북클럽 모임 후기 (알리스터 맥그래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책으로 북클럽을 진행 하였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참석인원이 줄어서 8명이서 조촐한 책모임을 했습니다. 


책은 맥그래스가 과학과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던 개인적인 경험들과 그 가운데서 깨달았던 것들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고백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공존하고 대화해왔던 것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적절히 나열하며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라는 신화를 깨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좀더 풍성하고 실재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이 다중적인 이야기라고 합니다. 종교라는 서사와 과학이라는 서사는 서로 상보적으로 실재를 조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지도라는 비유를 통해 실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의 지도가 아닌 다중적인 지도가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실재의 깊이와 상세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실제는 다중적인 층위가 있기 때문에 일부만을 가지고 전체라고 주장하는 환원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과학과 종교가 실재를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비슷한 점을 말하며 각각의 이론은 완전하게 증명될 수 없다는 것과 각각에는 어느 정도의 믿음이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론 자체를 증명할 수 없어도 통합하고 설명하는 능력에 근거해 그 이론을 채택하는 것이 지적으로 적법하다는 루이스의 발언은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서 어떤 이론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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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7일 화요일 과신대 서울남부 독서모임 후기 | 이정후(서울남부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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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남부독서모임에서는 총 9명의 회원이 참석하여 말콤 지브스의 저서 <마음, 뇌, 영혼, 신> 중 14장부터 19장까지의 다양한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었다. 14장에서 16장까지의 주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신경심리학이 심리치료와 상담에 도움이 되는가?’, ‘종교는 21세기의 민중의 아편인가?’는 한은애 회원이 발제를 맡았고, 17장부터 19장까지 ‘영성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과학의 설명으로 종교를 부정할 수 있는가?’그리고 ‘이제 그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부분은 이정후 회원이 발제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은 음성이나 환상을 경험하는 극적인 인도와 지성, 감정의 통합된 활용, 성경의 강한 촉구 그리고 사회신경과학의 연구결과를 참조하는 것이 있다. 이때 환청과 환시는 정신병리학적 관점에서는 분명 정신 병리적 신호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적 체험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귀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신앙이 21세기 민중의 아편인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매우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저자는 종교적 신앙을 위약효과라는 측면으로 설명하였는데, 회원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비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인 인물이 종교적 공동체의 리더가 되었을 때 그 공동체는 물론이고 사회에까지 미치는 폐해에 대해 역사적이며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과학의 설명으로 종교를 부정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다룰 때에는 환원주의적 논증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데 회원들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양한 신학자들의 의견을 통해 신앙인들이 갖게 되는 ‘의심’이 정죄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필요한 과정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특히 이 부분은 애톨 딕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외심을 가장한 편집증’ 증상을 보이는 문자주의자들 혹은 근본적인 교리를 신봉하는 이들이 되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외에 회원들이 흥미롭게 논의한 것은 과연 종교를 진화론적 발달로 인한 자연적인 결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 나아가 그것을 증거로 종교를 부정하는 설명이 가능한가의 문제였는데 저자의 이런 성급한 전제는 사실상 모순이 내재되어있으며, 어떤 신념에 대한 다양한 측면의 통찰이 시도된다고 해서 그 신념의 참과 거짓을 알 수는 없다는 논의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증거에 근거하고 정확한 지식에서 나오는 논평과 분석, 비판이며,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주시는 지식과 그 분이 주신 지성을 통해 우주를 이해하는 지식 사이에 궁극적인 충돌은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통찰과 지식을 통해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으로 모임 마무리...


  3월 모임에는 많은 회원들이 불참을 해서 아쉬웠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읽고 토의할 4월 모임은 더욱 재미있고 알찬 시간이 되길 바란다. 


(4월 모임)

일시: 4월 24일 화. 7시. 서울대 입구역 더 처치교회.

도서: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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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뇌, 영혼, 신 - 두 번째 모임 후기 | 구형규  (서울남부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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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입구에 있는 한 교회에서 20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였다. 20대 초반의 대학원생부터 50대 후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기독교 심리학자의 글을 읽고 다양한 생각을 나누었다. 말콤 지브스는 기독인 심리학자로서 심리학의 다양한 발견 결과들을 기독인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크게 초심리학과 진화심리학에 대한 부분이다. 심리학에서는 초심리학, 심령술, 임사체험, 유체이탈 등 흥미로운 주제들을 뇌의 활동으로 인한 결과 설명한다. 예를 들면 유체이탈 체험을 통해 영혼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은 뇌의 측두엽과 두정엽의 경계부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뇌의 특정 부위에 전기 자극을 주면 유체이탈을 경험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토론에서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영적인 체험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우리가 그 사람의 경험에 대해서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한 경험이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고, 그 경험은 뇌를 기반으로 해서 개인의 과거의 경험과 잠재의식 등의 복합적인 작용에 의해서 나타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식으로 정리가 되었다. 우리가 체험하는 영적인 체험들도 개인의 신념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도 유의해야 하겠다. 진화심리학은 인간과 동물의 겹치는 부분에 집중하기도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인간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이 새로웠다. 그동안 진화 심리학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책의 저자는 진화 심리학을 인간의 행동에 대한 다양한 설명의 층위를 담당하는 전문 영역 중 하나라고 해서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진화주의나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이들의 과학적인 연구결과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심리학의 한 분야로서 진화심리학을 인정하면서 진화심리학을 분별력을 가지고 보면 놀라운 창조세계에 드러난 창조주의 위대함을 가리키는 새로운 표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고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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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 장현일 (과신대 총무이사, 서울 남부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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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19일에는 과신대 남부북클럽이 송년모임으로 모였습니다. 백우인 회원님이 정성껏 준비해주신 음식을 나누고 불끄고 축하 케익도 불고 서로 둘러앉아 노래도 함께 부르는 참 훈훈하고 정겨운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고난 중에 계신 정준 목사님이 오랜만에 오셔서 위로가 되셨다고 하니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작년 7월 비오는 날 7명이 처음 모이기 시작해서 벌써 두 번째 송년모임을 가졌는데 이제 북클럽 멤버가 28명으로 늘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창조기사 논쟁을 집중적으로 읽고 나누었는데 이제 송년 모임에서는 월튼을 마지막으로 창조기사 논쟁을 끝내고 새해 1월부터는 새 책을 읽기로 했답니다.

월튼은 참 독특한 신학자인 것 같아요. 그는 창세기1장을 고대근동의 인지환경을 고려하여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능창조론"과 "우주성소론"을 제시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제안이면서도 창세기1장을 읽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탁견으로 느껴졌습니다. 월튼을 제외한 다른 신학자들은 대체로 본문을 어느 정도 문자적으로 혹은 유비적으로 해석할 것인가라는 문자-유비 패러다임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드 비일이 가장 문자적인 관점이고 트럼프 롱맨이 가장 유비적인 관점이라면 그 사이에 에이버벡과 콜린스가 위치해 있는 것 같습니다. 월튼의 공헌은 이런 문자-유비 패러다임이 아닌 고대인지환경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데 있다고 보입니다. 월튼은 발화수반행위가 중요하지 발화행위 자체가 어떤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권위는 발화수반행위에 의해 주어지지 발화행위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월튼의 이런 제언은 과학과 신학이 대화해야할 방향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월튼은 창조적 진화론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논쟁에 등장하는 5명의 구약학자들이 모두 복음주의 신학자들이라는 점이 눈에 뜨입니다. 복음주의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창조기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을 가지고 있으며 토드 비일을 제외하고는 창조기사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과신대가 나아가는 방향이 주류의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새해에는 과신대 북클럽 모임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특히 정회원 여러분들이 친해지고 서로 알아가는 공간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전국 각처에서 과신대 북클럽이 활발하게 모이는 일 그것이 바로 과신대 사역의 가장 핵심적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때 과신대 운동이 한국 교회에도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과신대 정회원 동역자 여러분들과 함께.. 새해에도 우리 주님께서 과신대 운동에 베풀어주실 풍성한 은혜와 인도하심을 소망합니다. 복된 새해맞이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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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 김진희 (서울 남부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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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과신대 서울남부 북클럽의 회원입니다. 무크따, 창조론자들, 최초의 7일, 오리진과 같은 책에 관심을 가지고 북클럽에 참여해오다가, 창조기사논쟁 북클럽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창조기사논쟁 북클럽이 처음 열렸을 때 저는 첫 번째 발제자로 <리처드 E. 에이버벡>을 발제하게 되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전통적인 성서해석을 선호하면서, 창조과학처럼 극단적 문자주의는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에이버벡의 발제문을 준비하며, 문자적 해석과 고대근동문헌과 비교한 문학적 해석을 조화시키려는 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어지는 다음 북클럽에 두 차례 참석하며 토드 비일, 트램퍼 롱맨의 관점도 보게 되었는데, 트램퍼 롱맨은 에이버벡과 토드비일에 비해 문자적 해석의 한계를 더 많이 보여주고, 대안적 해석을 보여줌으로써 신앙적으로 더 자유롭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에이버벡이나 토드비일과는 달리 문자적으로 24시간으로 해석하지 않고, 첫 3일은 “영역이나 거주지 창조”, 뒷 3일을 “창조될 거주자들이 채울 장소”로 해석함으로써, 문자적 24시간 해석에 매이지 않고, 문학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 냄으로써 성경 해석에 있어서, 신앙적으로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되는 모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발제에 이어서는, 롱맨의 창조기사 해석에 대해서, 에이버벡, 토드비일 등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점과 동의하지 않는 점을 다룬 논평을 봄으로써 타 신학자의 관점에서 롱맨의 해석과 일치하는 부분과 한계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에이버벡은 롱맨의 주장이 너무 오늘날의 과학에 의존한다는 점과 아담 창조 이야기를 비유로 해석하는 것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저 같은 경우 아담 창조 이야기를 비유로 해석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만, 한편으론 이 해석이 가져올 한계점을 생각하면서 아담 창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더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클럽에서는 발제 뒤에 토의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그 시간을 통해서 독서모임에 함께하는 많은 동료들한테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독서 모임 안에서 고단수(?)이신 분들에게 흥미로운 답변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신앙적 선배들이나 신대원 출신 목사님들도 많이 계셔서 무신론자들의 도전에 응답하여 신앙에 도움 되는 말을 많이 듣고, 격려 받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본인의 신앙이 무신론자나 이성의 도전에 직면하시거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폭넓게 알고 싶으시면 과신대 독서모임에 참여하시는 것도 훌륭한 선택일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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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와 채소 - 과신대 남부 북클럽 ‘창조기사 논쟁’ 세번째 모임 후기 | 강사은 (서울 남부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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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슬초’ 라고도 불리는 ‘쇠무릎’ 이라는 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길가에서도 많이 자란다고 합니다. 잡초이지요. 줄기가 마치 쇠의 무릎을 닮았다 하여 ‘쇠무릎’이라고 한다는데요. 재미있게도 이 잡초는 관절염, 통풍, 신경통 등의 약재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약재로 사용 가능하다는 것을 농부가 알게 되면 잡초는 재배되게 되고 재배되는 순간 잡초는 채소 또는 약초로 불리게 됩니다.

잡초와 채소의 경계는 이렇듯 경작하는 자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고 처음부터 설계되거나 이름지어진 것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창조 기사 논쟁” 남부 북클럽 셋째 모임에서 잡초와 채소의 애매한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을 창세기 2장에서 만났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창 2:5)

2.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창 1장 셋째 날에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나무, 즉 식물을 창조하신 후 여섯째 날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순서와 맞지 않는 구절입니다. 2장의 이 순서에 대해서 에이버벡(리처드 E. 에이버벡)은 경작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광야나 잡초, 경작물과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만(p. 83) 북클럽 셋째 날, 콜린스(C. 존 콜린스) 글에 대한 논평에서 비일(토드 S. 비일)은 너무나 자신있게 “창세기 2:5에서 먼저 언급되는 ‘관목들’은 황무지에서 자라는 식물을 가리킨다(즉 이들은 창 3장의 저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잡초들을 가리킨다). 그 다음으로는 ‘경작된 작물들’이 언급되는데, ... 이러한 경작물은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p. 226) 라고 주장합니다. ‘개념’이 없었다는 에이버벡의 주장과 달리 일관되게 강한 문자적 해석을 하는 비일의 관점에서 보자면 창 2:5절의 초목과 채소는 셋째날 창조된 것이 아니고 창 3장의 타락 이후 나오게 된 것이라는 것이지요. (씨 형태로 존재하다가 타락 이후에 땅 위로 솟아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비일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아마 모티브가 된 구절은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창 3:18) 이겠습니다.

6일 창조를 늘 강조하는 비일의 주장에 예외가 발생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타락 이후 지구 상에 새로 나타난 잡초랄까요? 이 잡초들은 모두 경작 불가능한 것들이었을까요? 셋째날 창조된 식물은 모두 경작 가능한 식물들이었을까요?
쇠무릎은 셋째 날 창조되었을까요? 아니면 인간이 타락 이후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쇠무릎의 줄기가 소의 무릎을 닮게 된 이유는 마디에 쇠무릎혹파리가 구멍을 내어 부풀어 오르게 했기 때문이라는데 쇠무릎혹파리는 언제부터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을까요? 콜린스는 이 부분에 대해서 또다른 관점의 해석을 합니다만 에이버벡과 비일의 관점을 비교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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