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 김유정 (서울남부 북클럽 회원)


6월 서울 남부 북클럽에서는 알리스터 맥그래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마지막 부분인 7장에서 9장까지를 읽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7장에서 “과학이 궁극적 질문들에 대해, 의미 추구에 답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파고들며, 과학이 그러한 답을 하고자 할 때에 생기는 문제들을 지적합니다. 8장에서는 과학으로부터 윤리의 토대를 찾으려는 시도들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여러 사례를 들며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인 9장에서는 과학의 서사와 신앙의 서사 등 여러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서로 보완하며 건강하게 대화를 나눌 때, 삶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결론을 맺습니다.


맥그래스는 궁극적인 질문들에 대한 반응을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첫째는 답하기를 피하는 것이고, 둘째는 과학을 통해 대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며, 셋째는 다중적인 의미 지도를 사용해서 답하려는 것입니다. 맥그래스는 세 번째 방법을 지지하는 입장, 즉 과학과 신앙이 상호 보완적으로 만들어가는 풍성한 실재관을 통해 궁극적 질문에 답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북클럽 모임에서, 맥그래스의 분류에 기반해 자신은 궁극적 질문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돌아보고, 나누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과학과 도덕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면서, (멜서스의 인구론에서 주장하는 차별과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계 등) 과학을 기반으로 윤리적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한 사례들을 공유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난민 문제 등 현재의 한국 기독교가 봉착한 윤리, 사회적 이슈와 연결지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차례에 걸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책 모임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이는 과학의 서사와 신앙의 서사가 이루는 조화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을 뿐 아니라, 책의 내용과 관련된 토론을 통해 실제적 이슈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북클럽 > 서울남부 북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클럽 이야기 (18-6)  (0) 2018.07.06
북클럽 이야기 (18-4)  (0) 2018.05.04
북클럽 이야기 (18-3)  (0) 2018.04.02
북클럽 이야기 (18-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7-1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7-11)  (0) 2018.03.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혜리 (전주 북클럽 회원)





이번 모임에서는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3장과 4장을 함께 읽고 고민하였다. 두 장 모두 과학에 대한 종교적 환상을 걷어내는 작업과 같았다. 먼저 관측기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에 따르면, 관측기구는 과학자의 이론으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관측기구에 따른 결과가 이론과 상반될 수도, 일치할 수도 있는 거다. 만약, 과학자가 자신의 이론에 반하는 관측 결과가 나올 때는 어떠할까? 이 질문은 모임을 뜨겁게 달구는 흥밋거리였다.


우리는 세 가지 경우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다. 첫째는 변칙 사례 해결을 위해 과학자가 대응하는 것이다. 더욱 발전적인 과학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관측 결과가 이론과 다를 지라도, 이론의 설명력에 손을 드는 것이었다. 이 경우에 과학자들은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사례를 무시하고 지나간다. 마지막으로는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변칙 사례가 늘어나 쌓이게 되면, 과학자들은 변칙 사례 문제를 해결하는 이론으로 마음을 돌린다. 이는 논증실증주의가 무너지고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과학처럼 객관적 데이터를 놓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진리의 탐구와 같은 ‘예측’을 하는 과학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설명’이 가능한 과학을 추구한다. 이것이 비판적 실재에 대한 수용이며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이다. 이번 6월 모임을 통해서 각자가 비판적 실재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떠할까 생각했다. 나와 의견이 다를지라도, 상대방의 또 다른 설명을 덧붙여가며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북클럽 > 전주 북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클럽 이야기 (18-6)  (0) 2018.06.29
북클럽 이야기 (18-5)  (0) 2018.06.04
북클럽 이야기 (18-4)  (0) 2018.05.03
북클럽 이야기 (18-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8-1)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7-12)  (0) 2018.03.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강사은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빈틈의 신’ vs. ‘빈틈의 진화’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9장 발제를 준비하며)


아래 3개의 언어를 혹시 이해하시겠는지요?

विज्ञान और धर्मशास्त्र के बीच एक बातचीत
שיחה בין מדע לתיאולוגיה
Συζήτηση μεταξύ επιστήμης και θεολογίας

몰라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Google이 있으니까요. ^^ (굳이 번역기를 돌리지 않아도 이 글 아래에서 알려드릴테니 찾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저자 ‘존 레녹스’는 굳이 구분하자면 지적설계론자인 것 같습니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총기를 잃지 말아야겠다는, 약간은 불편한 생각으로 읽고 있습니다. 그 총기가 다 닳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에서 배울 만한 점도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요. 특히 무신론주의에 대해서 논증하는 태도나 방법에 대해서는 배울 것이 있다 싶습니다. 비록 ‘이건 아닌데’ 싶은 경우도 있지만 말이죠. 그리고 최근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설교하신 모 목사님이 이 책의 추천글을 썼다는 것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무척 새삼스럽습니다.


생명의 기원과 관련해, 지적 설계론자는 ‘빈틈의 신’을 내세운다는 비판을 받고 존 레녹스는 이 책 9장에서 ‘빈틈의 진화’(또는 ‘빈틈의 다윈’)으로 그 비판을 미러링합니다. ‘과학과 신학’이라는 양날의 검을 들고 어느 부분은 과학의 날로 또 어느 부분은 신학의 날로, 혹은 두 날로 동시에 재단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는데요.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문구를 발견하면 “어? 이거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싶다가도 ‘과학’과 ‘신학’이라는 두 날을 적절히 사용해 보면 평정심을 다시 유지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한편으론 내공이 많이 부족하니 날을 좀더 갈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 앞서 3개의 언어로 적어본 ‘과학과 신학의 대화’ 문구에 대해서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존 레녹스는 이 3개의 언어를 번역기 혹은 언어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이해 가능한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구문론적 정보’를 획득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여러 단어의 가능한 조합으로부터 이 글을 읽고 있는 분께 언어로 읽히는 과정이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힌두어 ‘विज्ञान और धर्मशास्त्र के बीच एक बातचीत’를 한글 ‘과학과 신학의 대화’로 번역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구문론적 정보’를 획득했다고 해서 ‘의미론적 정보’를 얻었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이다’ 혹은 ‘우주의 중심이 인간이다’는 말은 종교적 의미로는 은혜로울 수도 있겠지만 과학의 의미로 보면 말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과학으로 볼 때 말이 되지 않는 것을 굳이 종교에서 차용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겠습니다. 인간 마음 속의 종교적 깨달음이 한 창조주가 지으신 우주의 이치와도 상통하는 것이 신비롭게도 맞을테니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종교의 ‘우주의 중심이 인간이다’는 (종교적) 표현에 대해서 관용하는 자세가 있는 것 같지만 종교가 최근의 발언처럼 종교적 표현을 문자 그대로 과학적 사실이라고 우기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요.


어떤 ‘과학’의 날과 ‘신학’의 날을 들고 계신지요?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의미론적 정보를 획득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저희 ‘과신대 분당/판교 북클럽’으로 오셔서 함께 대화하면 좋겠습니다.

'북클럽 > 분당판교 북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클럽 이야기 (18-6)  (0) 2018.06.29
북클럽 이야기 (18-5)  (0) 2018.05.28
북클럽 이야기 (18-4)  (0) 2018.05.02
북클럽 이야기 (18-3)  (0) 2018.03.16
북클럽 이야기 (18-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8-1)  (0) 2018.03.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이종탄 (전주 북클럽 회원)


-


지난 화요일, 세 번째로 과신대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3개월만의 만남에 첫 발제를 맡은 터라 긴장되었지만 미리 준비된 컵라면과 김밥 앞에서 긴장감은 공복감에 묻혔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북스터디를 하며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지난 두 번의 모임에서도 느꼈지만 '대화'의 기능과 힘은 매우 폭이 넓습니다. 사실 처음 과신대 모임에 참석했을 때에는 과학과 신학 간 진솔한 대화가 가능할지에 대해 미심쩍었습니다. 일단 과신대에 대해 알지 못했고 오늘날 과학과 신학의 간극이 매우 커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예로 진화론과 창조과학의 대립이 있으며, 현대 학문과 소통하는 대신 '세상'의 것으로 취급하며 무관심한 교회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에 결국 자기 목소리만 내는 데 신경 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에 참석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임을 소개하신 김재상 교수님에 대한 신뢰도 있었지만 과학 또는 신학을, 혹은 둘 다 공부하는 이들의 의견을 들으며 내 지평을 확장하고, 그것이 한 가지에만 매여 있는 것보다 정직하게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의 바람은 예상보다 더욱 많이 충족되었으며 앞으로도 좋은 시간을 갖게 되리라는 기대가 가득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지난 과신대 모임에서 얻은 유익은 크게 3가지입니다. 하나는 '과학 지식에 대한 관심과 이해'입니다. 과신대는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전공했고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제게 우주와 진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고, 티끌만큼이나마 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하나는 '모임원들과의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여러 종류의 모임이 있지만 상당수는 개인이나 집단의 특정 이익을 위해 모입니다. 그렇기에 계산이 들어가고 자칫하면 모임이 딱딱해지기도 합니다. 과신대가 '대화'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얻는 효과도 있겠지만 모임원들 모두가 학문에 대한 의견 뿐만 아니라 소소한 대화를 할 때에도 꾸밈없이 진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시간은 또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리 탐구에 대한 열망과 반성의 기회 제공'입니다. 과학 전공자와 신학 전공자들 사이에서 전문적이고도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았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의 시각이 얼마나 좁고 얕았는지 깨달았습니다. 구덩이를 팔 때 처음에는 땅을 넓게 파다가 점점 한 점을 향해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의 저는 처음 팔 때부터 한 점에만 집중했다면, 과신대를 통해 주변을 파고 있습니다. 한 삽 한 삽 퍼 나르는 흙들이, 각각 고유한 색깔과 향을 갖고 있음에 신기하고 더욱 파고 싶어집니다.


이번 모임부터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시작했습니다. 끝을 측량할 수 없는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활짝 열린 사고와 마음을 갖고 진리를 탐구하는 여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벌써 다음 모임이 기다려집니다.  

'북클럽 > 전주 북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클럽 이야기 (18-6)  (0) 2018.06.29
북클럽 이야기 (18-5)  (0) 2018.06.04
북클럽 이야기 (18-4)  (0) 2018.05.03
북클럽 이야기 (18-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8-1)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7-12)  (0) 2018.03.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김진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이번 독서 모임의 주제는 “존 레녹스의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5장까지였고, 사정상 못 오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총 네 명이 모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 책을 읽어 오지는 못 했지만, 목차를 보고서 관심 있는 주제여서 시간 내서 온 모임이었는데요, 발제문을 써오신 발제자의 느낀 점을 들어보고 발제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책 저자 존 레녹스의 문체를 대강 느낄 수 있는 재미난 경험이었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프롤로그 부분에서 지적 설계라는 창조를 설명하는 한 방식에 대해서 볼 수 있었고, 1장에서는 신앙에는 증거가 있는지에 대해서 “신앙에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무신론이 옳다”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을 봄으로서 과학적 사고에 신앙이 어느 정도 개입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외에 2장에서는 과학적 설명은 현상의 작동 메커니즘 만을 설명하는 데에 비해, 신을 믿는 것은 그 현상을 작동시킨 이는 누구인지에 대한 가설을 제공한다는 점, 4장에서는 법칙의 주체가 누군지를 말하는 우주의 미세조정 개념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독서 모임의 발제문을 보고 들음으로써 책이 어떤 느낌으로 쓰여 있는지,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를 볼 수 있어서 나중에 시간 내서 이 책을 읽어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클럽 > 분당판교 북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클럽 이야기 (18-6)  (0) 2018.06.29
북클럽 이야기 (18-5)  (0) 2018.05.28
북클럽 이야기 (18-4)  (0) 2018.05.02
북클럽 이야기 (18-3)  (0) 2018.03.16
북클럽 이야기 (18-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8-1)  (0) 2018.03.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남부 북클럽 모임 후기 (알리스터 맥그래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책으로 북클럽을 진행 하였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참석인원이 줄어서 8명이서 조촐한 책모임을 했습니다. 


책은 맥그래스가 과학과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던 개인적인 경험들과 그 가운데서 깨달았던 것들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고백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공존하고 대화해왔던 것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적절히 나열하며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라는 신화를 깨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좀더 풍성하고 실재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이 다중적인 이야기라고 합니다. 종교라는 서사와 과학이라는 서사는 서로 상보적으로 실재를 조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지도라는 비유를 통해 실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의 지도가 아닌 다중적인 지도가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실재의 깊이와 상세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실제는 다중적인 층위가 있기 때문에 일부만을 가지고 전체라고 주장하는 환원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과학과 종교가 실재를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비슷한 점을 말하며 각각의 이론은 완전하게 증명될 수 없다는 것과 각각에는 어느 정도의 믿음이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론 자체를 증명할 수 없어도 통합하고 설명하는 능력에 근거해 그 이론을 채택하는 것이 지적으로 적법하다는 루이스의 발언은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서 어떤 이론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북클럽 > 서울남부 북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클럽 이야기 (18-6)  (0) 2018.07.06
북클럽 이야기 (18-4)  (0) 2018.05.04
북클럽 이야기 (18-3)  (0) 2018.04.02
북클럽 이야기 (18-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7-1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7-11)  (0) 2018.03.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재상 (전주 북클럽 회원)


-


한일장신대 근처 카페에서 전주 과신대 4월 모임을 가졌습니다. 몇 개월 동안 읽어온 『오리진』 마지막 모임이었는데, 11장에 나오는 중요 키워드를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화생물학과 포스트휴먼이라는 맥락에서 하나님 형상, 영혼, 원죄, 영생은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 의견을 나누면서, 기존의 신학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다들 동의하였습니다. 하나님형상과 영혼을 기존처럼 하나의 실체로 본다기보다는 이제 ‘관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화생물학 맥락에서 본다면 하나님 형상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여러 생물체와의 관계를 강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상호의존의 양상을 지니게 됩니다. 포스트휴먼 맥락에서 영혼과 영생의 의미에 대한 토론도 이어갔습니다. 정신(영혼)과 물질은 인식론적으로는 구분이 되나 형이상학적으로는 구분이 모호하기에 기존 신학의 이분적 인간 구성은 적절한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모임에서는 라운드테이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은 분기별로 진행되며, 과학기술관련 이슈와 교회활동과 관련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토크 타임입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과학기술위험에 대한 교회의 공적 활동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과학기술위험을 방지하여 안전도를 높이고자 과학사회학은 어떤 제안을 하고 있는지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이 제안들이 교회의 공적 활동에 어떤 의미와 방법들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나누었습니다.

'북클럽 > 전주 북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클럽 이야기 (18-6)  (0) 2018.06.29
북클럽 이야기 (18-5)  (0) 2018.06.04
북클럽 이야기 (18-4)  (0) 2018.05.03
북클럽 이야기 (18-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8-1)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7-12)  (0) 2018.03.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석기병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과신대 분당/판교 북클럽은 4월9일(월) “아론의 송아지” 저자 임택규님을 모시고 뜻깊은 토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토론에 앞서 각자 분담해 요약한 내용을 온라인으로 공유했던 바, 토론은 책에 대한 내용소개보다는 과학과 신앙에 대한 저자와의 열린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토론의 자리에는 저자 외에 강사은님, 김란희님, 정훈재님, 김자현님, 김진희님, 조충연님이 오셨고, 논술가 조중식님은 갑작스런 수업시간 변동에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병원연구소에서 박테리아를 연구하시고 주일학교에서 중고등부교사를 맡고계시는 백진양님이 처음 오신 것입니다. 백진양님은 교회에서 과학동아리를 준비하고 계신데, 창조에 대한 관심으로 우교수님 책을 읽던중 북클럽에 합류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론의 송아지에 오타를 발견하셨다는데 꼼꼼하신 활동이 기대가 됩니다. (작가님께 오타 어딘지 알려주세요^^) 그리고 임택규님 오신다는 소식에 온누리 교회에 다니시는 네트웍 엔지니어 황재혁님도 멀리서 참석하셨습니다.


모임이 저녁 7시 반인지라 예전에는 준비된 빵을 토론 후 귀가전에 급히 먹었는데, 배려 깊으신 강사은님께서 이번에는 다과로 준비하셔서 저는 먹으면서 토론하기에 좋았습니다. 아마도 다음부터는 간식이 과자로 계속 공급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합니다.


임택규 작가님은, 미국 온누리교회(All Nations Church)에서 아이들에게 과학 특강을 준비하던 중 창조과학의 현실에 놀라 연구를 시작하였고, 9년에 걸쳐 이 책을 집필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창조과학을 조사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금번 과신대 콜로퀴움에 패널로 나오실 이택환목사님, 당시 CA에 연구원으로 계셨던 우종학교수님을 알게 되었는데, 아론의 송아지를 쓰는데는 우교수님이 권유("총대를 같이 메자")도 한 몫을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책의 영향력이 적어서 창조과학측에서 연락도 없고, 이재만 선교사도, 같은 동네 살지만, 자신에게 신경도 안쓰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도 2016년 12월30일 1,500부 발행후 2주만에 2쇄를 발행한 것은 책의 인기가 증명된한 것 아닐까요.


작가님은 미국에도 이 책과 같이 조목조목 창조과학의 오류를 집대성한 책은 없는 것으로 아신다 했습니다. 미국도 기독교 근본주의적 풍토에 한국과 똑같이 창조과학이 범람하고, 그런 기독교 영향으로 진화론에 부정적인 사회라 최근 지적설계론을 둘러싼 도버재판 사례와 같이 창조과학을 교육제도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이런 책의 도입이 시급한거 아니냐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다만, 英譯하게 된다면, 아.송.에 담긴 작가님의 집요하면서 cynical하고 chic한 맛을 제대로 담아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00여편의 독서를 통해 깨달은 창조과학의 다양한 오류를 엔지니어 특유의 디테일한 칼질과 격정적 문투(우매함은 악보다 휠씬 위험하다-본회퍼)로 소개하고, 다소 모욕적일 수 있는 제목(아론의 송아지)도 붙였지만. 그나마 이것도 새물결플러스에서 편집으로 순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는 책이 수식이 많아 어렵고 이과적/엔지니어간 논리대결 같은 느낌이 들고, 또 누구는 이것이 오히려 적절한(강성,직설적) 비유로 핵사이다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책 한권 쯤은 꼭 있어야겠다는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느낌적으로 우교수님과 비교하자면 우교수님은 선비, 임작가님은 팩트체커(숫자로 신뢰), 무크따는 갑옷, 아론은 창같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제는 과학과 신앙에 대한 토의내용을 조금 적어보겠습니다.


창조과학자들은 인간의 기원 뿐 아니라 실제로 물 위를 걷는 기적, 만나 기적, 가나 혼인잔치 포도주 기적, 선상에서 육지를 향한 설교의 과학성, 출생 후 8일 할례의 적합성 등 다방면으로 성경에 역사적, 과학적 해석 접붙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변증하겠다는 그 의도는 비록 선할지라도, 도그마적으로 목적(세계관)을 앞세워 사실(데이터)을 왜곡하는 등 잘못된 방법에다가 지적 성실성도 없어, 결국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기적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타임지 기사를 왜곡해 인용하고, 항의받으니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니, 틀렸다면 무시하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말인가, 신문방송은 전부 가짜라면서 맹목적으로 조작된 뉴스만 카톡으로 열심히 퍼나르는 무리들과 다른게 무언가. 

非과학적(사이비과학적, 유사과학적) 사고는 창조과학 外에도 많다. 아폴로 달착륙 음모론이나 GMO 유해론(!) 등. 이런 주장을 과학이라 하지 않는 이유는, 인용된 이론이나 배경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연을 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신앙은 과연 상보적 관계일까? 독립적 관계일까?
과학이 신앙에 영향을 주거나, 신앙이 과학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신앙은 개인의 몫인가?
유신진화론자라면 착한 과학의 대안으로 바른 과학, 기독교 과학을 세워야 할까?
신을 과학의 범주로 끌어들이면 과학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가 된다.
무신론자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창조과학도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과학과 신앙은 독립적이나, 상보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사 과학의 헛점을 집고 대안을 탐구)

이 외에도, 창조는 이신론인가, 계획된 진화인가, 우연을 통한 인도된 진화인가?
(유신진화론은 창조 방법의 물음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노아의 방주는 신화인가, 실화인가, 아담과 하와는 어떤 존재인가 등


향후 북클럽을 통해 습득해야 할 것이 많음을 느끼며 토론을 마감하였습니다.


-


임택규 작가님이 추천하신 창조과학과 유신진화론 사이 논쟁 (빌 나이 vs 켄 햄)
https://youtu.be/AMlseAmPBcw


'북클럽 > 분당판교 북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클럽 이야기 (18-6)  (0) 2018.06.29
북클럽 이야기 (18-5)  (0) 2018.05.28
북클럽 이야기 (18-4)  (0) 2018.05.02
북클럽 이야기 (18-3)  (0) 2018.03.16
북클럽 이야기 (18-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8-1)  (0) 2018.03.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3월 27일 화요일 과신대 서울남부 독서모임 후기 | 이정후(서울남부 북클럽 회원)


-


  3월 남부독서모임에서는 총 9명의 회원이 참석하여 말콤 지브스의 저서 <마음, 뇌, 영혼, 신> 중 14장부터 19장까지의 다양한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었다. 14장에서 16장까지의 주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신경심리학이 심리치료와 상담에 도움이 되는가?’, ‘종교는 21세기의 민중의 아편인가?’는 한은애 회원이 발제를 맡았고, 17장부터 19장까지 ‘영성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과학의 설명으로 종교를 부정할 수 있는가?’그리고 ‘이제 그 다음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부분은 이정후 회원이 발제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방법은 음성이나 환상을 경험하는 극적인 인도와 지성, 감정의 통합된 활용, 성경의 강한 촉구 그리고 사회신경과학의 연구결과를 참조하는 것이 있다. 이때 환청과 환시는 정신병리학적 관점에서는 분명 정신 병리적 신호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적 체험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귀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신앙이 21세기 민중의 아편인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매우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저자는 종교적 신앙을 위약효과라는 측면으로 설명하였는데, 회원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비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인 인물이 종교적 공동체의 리더가 되었을 때 그 공동체는 물론이고 사회에까지 미치는 폐해에 대해 역사적이며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과학의 설명으로 종교를 부정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다룰 때에는 환원주의적 논증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데 회원들의 의견이 일치하였고 다양한 신학자들의 의견을 통해 신앙인들이 갖게 되는 ‘의심’이 정죄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필요한 과정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특히 이 부분은 애톨 딕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경외심을 가장한 편집증’ 증상을 보이는 문자주의자들 혹은 근본적인 교리를 신봉하는 이들이 되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이외에 회원들이 흥미롭게 논의한 것은 과연 종교를 진화론적 발달로 인한 자연적인 결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 나아가 그것을 증거로 종교를 부정하는 설명이 가능한가의 문제였는데 저자의 이런 성급한 전제는 사실상 모순이 내재되어있으며, 어떤 신념에 대한 다양한 측면의 통찰이 시도된다고 해서 그 신념의 참과 거짓을 알 수는 없다는 논의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증거에 근거하고 정확한 지식에서 나오는 논평과 분석, 비판이며,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주시는 지식과 그 분이 주신 지성을 통해 우주를 이해하는 지식 사이에 궁극적인 충돌은 없으며, 오히려 다양한 통찰과 지식을 통해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결론으로 모임 마무리...


  3월 모임에는 많은 회원들이 불참을 해서 아쉬웠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읽고 토의할 4월 모임은 더욱 재미있고 알찬 시간이 되길 바란다. 


(4월 모임)

일시: 4월 24일 화. 7시. 서울대 입구역 더 처치교회.

도서: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북클럽 > 서울남부 북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클럽 이야기 (18-6)  (0) 2018.07.06
북클럽 이야기 (18-4)  (0) 2018.05.04
북클럽 이야기 (18-3)  (0) 2018.04.02
북클럽 이야기 (18-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7-1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7-11)  (0) 2018.03.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김란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과신대 분당판교 북클럽 2회 모임 / 장소를 제공해 주신 성공회 분당교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무크따>로 모였습니다. 사색 깊은 철학자와 깔끔한 엔지니어분들과 반백의 신사분들과 비상한 논리의 청년과 여전히 탐구심 가득한 중년의 여성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들의 공통분모는 ‘과학적 명제’와 ‘신학적 명제’의 부딪침에서 우리가 아는 하나님이 한 분이신 그 하나님이 맞는 분이신지, 세상은 그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설명과 이해 가운데 잘못된 것은 없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일찍 오셔서 멋지게 다과를 세팅해주신 팀장(?) 강사은 선생님 감사합니다. 귀여운 진희 청년이 발제한 1, 2장에서는 ‘진화주의’라는 단어가 갖는 개념의 정확성과 ‘자칭 무신론자’로 소개된 맥락의 의미가 흥미롭게 토론되었고, 교양 풍부하신 멋쟁이 신사 김자현 선생님이 하신 3~4장에서는 ‘틈새의 신’과 ‘자연신학’의 개념과 페일리와 도킨스’의 논쟁을 살피면서 분석적 유신론이니 유비추리의 적실성 등의 개념들이 설파되었습니다.


섬세한 엔지니어 풍모가 은근하게 풍기는 석기병 선생님의 5장 발제에서는 과학과 성경의 영역인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의 언어의 다름과 그 다름에 따라 옳게 이해한다는 것인 무엇인가의 탐구가 있었고, 중년의 여인 김란희가 한 6~7장에서는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서 세 가지 입장은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것인가? 과학과 신학이라는 카테고리는 대등하게 범주화할 수 있는 것인가? 시비와 논쟁이 교차했고, 오늘 결석하셨지만 발제 원고는 충실하게 작성해주신 예술가 조충연 선생님의 8장에서는 열역한 제2법칙으로 진화론을 반증한 것에 재밌어하고, 대폭발우주론이나 생물진화론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기에 매우 그럴 듯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안고 있는 것에 동의하면서, 철학자이자 변증가의 향기가 폴폴 나는 조중식 선생님의 9장에서는 지적설계론의 오류를 살펴보고, 오늘 처음 조우한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를 이미 1만 번 쯤 하신 듯한 치밀한 논변가 엔지니어이신 정훈재 선생님의 10장에서는 아담의 대표성, 원죄의 정체성, 자유의지의 유무를 사실적 가설과 ‘반사실적 가설’로도 살피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면면의 죄성의 기원에 대해 진지한 토론과 고뇌의 시간도 가져보고, 마지막 분당판교에 기독교 지성의 오아시스를 파주신, 사막의 그 샘처럼 깊은 눈을 갖으신, 외유내강의 아름다운 미모의 우리의 팀장 강사은 선생님의 11장을 통해서는 우주의 역사와 정체를 보는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이나 창조과학자들의 극단성, 진화, 진화이론, 진화주의에 대한 정확한 이해 등을 살펴보았습니다. 


진지함과 정직함, 그리고 열정과 겸손이 넘실대는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잔인한 계절’ 4월에는 ‘아론의 송아지’로 만나뵙겠습니다. 분분이 날리는 철학적 용어는 조중식 선생님의 멋진 언변 탓입니다~. 이상 막 분당판교 2회 모임 소감입니다!!

'북클럽 > 분당판교 북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클럽 이야기 (18-6)  (0) 2018.06.29
북클럽 이야기 (18-5)  (0) 2018.05.28
북클럽 이야기 (18-4)  (0) 2018.05.02
북클럽 이야기 (18-3)  (0) 2018.03.16
북클럽 이야기 (18-2)  (0) 2018.03.09
북클럽 이야기 (18-1)  (0) 2018.03.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