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부천 북클럽]



인류의 진화와 인간의 성장

박영식, <창조의 신학>(동연, 2018)


최경환



12월 11일 2018년 과신대 부천 북클럽 마지막 모임을 가졌습니다. 부천 북클럽은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모이는데, 대부분 서울신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마 가장 젊은 북클럽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2018년 마지막 모임이라 1시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앞 분식집 '응급실'에서 굉장히 고급스러운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내년에는 어떤 책으로 어떤 내용을 다룰지 기대가 됩니다. 새롭게 북클럽지기로 섬겨주는 박정탁군에게도 감사드리고, 모임을 이끌어주신 박영식 교수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모임에 나온 이야기를 간략하게 적어 봤습니다.


1. 그동안 조직신학에서는 ‘섭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는데, 사실 교회의 전통 속에서는 그보다 ‘계속적인 창조’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 이미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자들이 사용한 용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보존하신다. 협동하신다.’ 이런 개념들이 있었다. 항상 피조물들과 함께 연동해서 일하신다는 개념이다.


2. 인간 외에 다른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는가? 반대로 질문해 보자. 인간에게는 과연 영혼이라는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인간의 영혼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이 있는가? 생각하는 기능? 이렇게 되면 서양에서는 이를 신적인 기능이라고 봤다.


3. 인류의 진화를 한 인간의 탄생과 성장의 과정으로 설명해 보자. 이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세포분열을 하고 성장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어머니가 뱃속에서 아이를 품고 있듯이. 그 아이가 성장해서 나중에 '나는 누구인지, 아버지는 누구인지' 묻게 되는데, 그런 질문을 하는 순간을 우리는 정확하게 언제인지 모른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그런 추상적인 질문을 하게 되고 우리는 그 순간을 영혼의 발생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4.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창조와 자연악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했다. 하나님이 만든 창조 세계에 왜 쓰나미와 지진이 일어나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자유의 대가로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 있다. 원인과 근거를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근거이지만 이 세상의 악의 원인은 아니다. 마치 부부가 서로 사랑해서 낳은 아이가 나중에 병에 걸렸다고 해서, 그 부모에게 병의 원인을 돌릴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병의 근거는 될 수 있다. 자연악은 피조 세계의 자율성과 자유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전혀 모른 척 하지 않는다. 함께 아파하고 그 고통에 동참한다. 하나님의 창조와 자연악의 관계도 이와 같다.


문의 scitheo.office@gmail.com / 070-4320-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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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십자가와 와인 한 잔

김근주, <복음의 공공성> (비아토르, 2017)


강사은


지난 1년간 교회 설교를 통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쩨다카'와 '미슈파트', 

즉 '공의와 정의'를 김근주 교수님의 '복음의 공공성'을 

통해 보게 됩니다. 

'왕'으로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자(벧전 2:9)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이것은 

"구약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틀인 

재판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지 않게 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한 마디로 권력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이방인, 고아, 과부 같은 힘없는 

이들을 보호하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라고 말이죠.



창세기는 처음부터 

신학적 의도가 담긴 책이지 

우주와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사람과 동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는 글에서는 구약학자의 힘이 느껴집니다. 

굳이 과학과 연결시키지 않아도 

성서로 하여금 성서가 되게 하는 힘 말이죠.

2018년 마지막 모임의 아쉬움을 

한 잔의 와인에 담아 정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와인잔을 들고 기념 촬영부터 해요" / 찰칵!

"아! 이왕이면 십자가가 보이는 배경으로 찍을까요?" / 찰칵!

"셀카 모드로도 찍죠. 요즘 그렇게들 하던데..." / 찰칵!

"초도 불어야 겠네요~" / 후~

2018년에 함께 하지 못하셨더라도 걱정 마시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1월을 주신다네요. 오우 예~ ^^


문의 scitheo.office@gmail.com / 070-4320-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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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수원남부 북클럽]




'커피파'와 '라면파'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IVP, 2014)


강사은


요즘 유행하는 ‘찍먹파’와 ‘부먹파’ 논쟁을 아시는지요?


본래 탕수육은 규정상 부어 먹는 요리라고 되어 있으나 배달문화와 겹치면서 눅눅해짐을 방지하기 위해 따로 포장하게 된 것이 이 논란의 발단이라고 합니다. 배달 과정에서 면이 불게 되는 것이 싫어서 왠만해서는 배달시키지 않는 저에게 둘 모두 일리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탕수육을 둘러싼 이 철학적 논쟁에 못지 않는 ‘커피파’와 ‘라면파’ 이야기가 무크따에도 있습니다. 주전자에 담긴 물이 끓고 있는 것을 보면서 두가지 관점의 설명이 가능한데요.


첫번째는 '과학적 설명으로 열이 가해져서 물 분자가 활발히 활동하기 때문에 물이 끓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엄마가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물을 끓이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문제는 이 두가지 관점의 설명을 굳이 결합시키려고 할 때 생깁니다. 바로 "물의 온도가 100도가 된다는 것은 곧 엄마가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연결시켜서 진리라고 믿어 버리는 것이죠.


여기에서 '커피파'와 '라면파'의 논쟁도 나오겠습니다. 사실은 엄마가 커피가 아니라 라면을 먹고 싶어서 끓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라면파'가 등장하는 것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교파의 차이는 아마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물의 끓는 점이 100도가 아니라 120도인 것으로 과학의 내용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과학적 방법 관점에서 120도로 변경되는 것은 그다지 문제되지 않겠습니다. 과학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하지만, 커피를 먹기 위한 것이냐 라면을 먹기 위한 것이냐에 대한 논쟁은 변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과 강하게 연결시켰던 것으로 인해 그 믿음 체계에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노래 가사에는 소금에 절여진 고등어를 발견한 소녀(소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가사를 보면서 저는 궁금했습니다. '저 고등어는 과연 아침 반찬으로 올라갔을까?' 그 소녀(소년)의 이성적이고 경험적인 바램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제 마음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면 좋겠습니다.


오늘 수원 남부 북클럽 모임에는 중학생과 초등 5학년 학생이 당당한 일원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냥 따라온 것이 아니라 책 내용과 발제 내용을 이해하고 토론하고 질문하는 데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무크따를 이해하는 최소 연령으로 초등학생이 확인된 날이고 북클럽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을 확~ 낮춰준 날이기도 합니다. 우종학 교수님~ 무크따는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명서입니다. ^^


수원 남부 북크럽의 다음 모임은 아래와 같고 장소와 간식까지 준비해 주신 김진세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모임 일정>

일시 : 2019년 1월 19일(셋째주 토요일) 오전 10:30분

장소 : 성공회 제자교회(http://www.agnes.or.kr)

독서분량 : 무크따(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9장~끝.

문의scitheo.office@gmail.com / 070-4320-2123


* 커피파와 라면파에 대한 이야기는 무크따 pp.120~121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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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과신대는 정말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새로운 사무 공간을 얻었고

새로운 회원님들과 자문위원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한해를 돌아보면 감사한 일들 뿐입니다.


그.래.서. 준비한 과신대 회원의 밤 





먼저 사무국에서 준비한 간단한 식사로 시작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처음 보는 분들도 많았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행사를 위해 특별히 섭외한

심왕찬 선생님과 김수지 선생님

멋인 연주와 노래로

눈과 귀가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셨습니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퀸의 Love of My Life 짱!! 




이어서 한해동안 과신대를 위해서

여러 모양으로 섬겨주신 3분의 정회원에게

감사의 선물을 드렸습니다. 


과신대 행사 후기를 열심히 써 주신 이혜련 회원님

수강자 등록과 접수를 도와준 손민아 회원님

과시대 기자단으로 열일하신 심기주 회원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이어서 선물 추첨 시간도 있었습니다.

김고운 간사님의 탁월한 선물 선택으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행성 마우스 패드

우주 마카롱

달 무드등


어디서 이런 선물을 고른 거죠? 




최경환 실장님의 과신대 사역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과신대가 그동안 걸어온 길도 짧지 않았지만

앞으로의 사역이 더 기대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최 실장님은 이번 기회로 

과신대 공식 MC로 입지를 굳히시길 바랍니다. 



행사가 끝나고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회원의 밤이 너무 좋았다는 증거겠죠?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내년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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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바위, 시간> 출간 기념 포럼



기원을 찾아서: 지구 연대의 성경, 과학, 역사적 이슈


지구의 기원에 관한 성경과 과학의 표현은 모순되는 것일까요? 역사 속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지질학의 증거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창조와 진화의 논의를 총체적으로 톺아보는 책 <성경, 바위, 시간> 출간 기념 포럼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19년 1월 15일 화요일 저녁 7시

장소홍대 프리스타일 스페이스홀 (마포구 서교동 352-22 지하1층, 홍대입구역 도보 5분)


수강료 무료

* 포럼에 참여하는 모든 과신대 정회원들에게 <성경, 바위, 시간>을 무료로 드립니다.


패널 소개

박희주 교수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송인규 소장 (한국교회탐구센터)

우종학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진행순서


7:00-7:10 관련 영상 감상

7:10-8:10 패널 토론 및 강의 (사회: 최경환 과신대 기획실장)

  1.역사적 이슈 - 박희주 교수

  2.성경적 이슈 - 송인규 교수

  3.과학적 이슈 - 우종학 교수

8:10-8:25 휴식 (북테이블)

8:25-8:40 심화토론 및 현재의 의미

8:40-9:10 질의응답


주최: 과학과신학의대화, 한국교회탐구센터

후원: IVP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학의 도전과 기독교 교육(I)[각주:1]


김정형 교수[각주:2]



과학 시대의 도전


오늘날 우리는 21세기 과학 시대를 살고 있다. 21세기 과학 시대는 17-18세기 과학 혁명 시대에 큰 빚을 지고 있지만 과거와는 많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과학 혁명의 시대는 근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근대 이전의 세계관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기였다면, 오늘날 과학 시대는 과학적 세계관이 사회문화 전반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기이다. 과학 혁명의 시대에는 여전히 전통적 세계관과 과학적 세계관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면, 과학 시대에는 전통적 세계관이 아직까지 완전하게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 세계관과 경쟁할 만큼의 영향력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오늘날 우리의 삶은 스마트폰을 상징으로 하는 과학기술이 가져온 문명의 이기를 빼놓고는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21세기 과학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한편, 과학 시대는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모든 현대인들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다. 과학 시대의 도전은 크게 세계관, 인간관, 무신론의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1) 변화하는 세계관. 과학 혁명 이후 지난 수백 년 간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세계관의 변화는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최근에는 구글의 빌 게이츠 재단이 지원하는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가 최근까지의 과학의 발전을 집대성하여 그린 하나의 큰 그림(세계관)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https://school.bighistoryproject.com/bhplive). 적어도 상당수의 다음세대가 빅 히스토리를 ‘표준적인’ 세계관으로 배우며 성장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세계관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세계관의 변화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패러다임 전환처럼) 우리가 가진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과는 직접적으로 큰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학적 세계관의 내용 중 일부는 전통적 기독교 세계관과 충돌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반대로 과학적 세계관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이 세계관의 문제로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빛을 던져줄 수 있는 기회도 있다.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세계관의 변화라는 현실 앞에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2) 변화하는 인간관. 과학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두 번째 도전은 인간관의 문제와 관계된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 밝혀진 바,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 인간이 다른 모든 생물들과 같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기원했다는 사실 등은 인간의 자기 이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나 오늘날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인간이 기계와 공존하는 시대를 넘어 인간 문명이 기계 문명에 의해 대체되는 어두운 미래를 전망하게 할 때도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간관의 변화는 앞서 언급한 세계관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현대인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질문을 두고 씨름하고 있는 현대인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하며 그들을 섬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간관, 가치관의 변화 가운데 일부는 전통적인 기독교 인간관에 큰 도전을 안긴다. 예를 들어, 인간의 기원과 본성에 관한 최근 과학 이론들은 인간의 특별 창조, 아담과 하와 및 타락의 역사성, 원죄의 유전, 영혼과 육체의 관계, 기독교의 고유성과 절대성,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의 이슈들에 있어 전통적인 견해를 재고하게 만들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가치관이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3) 과학적 무신론. 마지막으로, 과학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세 번째 도전은 세속주의 혹은 무신론의 도전이다. 과학의 발전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요청하지 않고도 우주와 생명과 인간의 역사가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고, 기술의 발전은 초월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이 땅의 역사를 결정하는 주권자라는 인상을 준다. 말하자면,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우주와 생명과 인간의 역사 속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새로운 무신론자들”으로 알려진 이들은 현대 사회에서 과학 기술이 누리고 있는 권위에 호소하여 자신들의 세속주의적, 유물론적, 무신론적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논리에는 과학의 ‘방법론적 자연주의’와 무신론의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를 혼동하는 큰 맹점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에 적대적인 한국의 사회문화 속에서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우려할 사항이다. 과학적 무신론의 득세는 한편으로 오늘날 과학이 누리는 권위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과학적 무신론에는 거부감을 갖지만 현대 과학 기술이 누리는 권위에는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학의 권위에 기댄 무신론자들, 유물론자들, 세속주의자들의 주장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물리적인 세계를 넘어선 초월적인 세계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믿음, 나아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자” 곧 사랑과 능력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과학 신앙을 품은 신앙 교육


먼저 기억할 것은 한국 교회 안에서 신앙 교육을 담당하는 교역자나 교사들 중에 현대 과학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과학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교회 안이나 밖에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 자체는 신앙 교육과 관련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적지 않은 교회 지도자들이 현대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신앙에 걸림돌이 되거나 신앙을 위협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과학에 무관심하거나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한국 교회 내 신앙 교육은 청소년들이 학교나 미디어를 통해서 배우는 과학 이론을 전혀 언급하지 않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언급하면서, 대체로 과학 교육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하지만 진화론을 포함하여 과학적으로 확고한 입지를 갖고 있는 현대 과학 이론을 맹목적으로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신앙 교육은 불가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과학 교육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아울러 과학 교육과 신앙 교육이 함께 갈 수 없다는 암묵적인 전제는 과학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짐이 된다. 전반적으로 한국 교회가 과학 교육에 대해 가진 부정적 인식과 태도는 신앙을 가진 다음세대 아이들이 과학 교육을 중심으로 한 학교 교육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거나 반대로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중요한 동인이 된다. 다음세대 아이들이 현대 과학 이론뿐 아니라 현대 과학의 괄목할 만한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적 사고방식마저도 거부하고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다면, 그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은 심각하게 왜곡되고 말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과 상식에 근거한 합리적인 소통에 장애가 발생함으로 인해서 장차 교회 밖 공공 영역에서 리더십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결정적인 한계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 교육 안에 과학 교육을 품을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예로, 미국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일군의 기독교 성직자들이 창조과학과 지적설계 운동에 반대하여 진화 이론을 최상의 과학으로 인정하는 ‘성직자 서한 프로젝트’(The Clergy Letter Project)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 기독교 성직자들의 편지 내용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는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논쟁과 갈등의 영역들이 존재한다. 사실상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신앙과 실천의 문제에 있어 권위 있는 문서로 받아들이지만, 그 중에 상당한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문자적으로 읽지는 않는다. 창조,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등 성경에 기록된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창조주와 창조세계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관한 무시간적인 진리를 전달하고 있다. 종교적 진리는 과학적 진리와 그 성격이 다르다. 종교적 진리의 목적은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데 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있다. 여기에 서명한 우리들은 다양한 전통에 속한 기독교 성직자들로서 성경의 무시간적 진리와 근대과학의 발견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진화 이론이 엄격한 검증을 거친 기초적인 과학적 진리로서 그 위에 인간의 많은 지식과 업적이 기초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진리를 거부하거나 이것을 단순히 “다양한 이론들 가운데 하나의 이론”으로 취급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과학적 무지를 받아들이고 그러한 무지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은사들 가운데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또한 포함되며 따라서 이러한 은사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믿는다.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이 하나님이 주신 이성능력의 충분한 활용을 배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한하는 교만한 행위에 해당한다. 우리는 학교 이사진들이 진화 이론을 인간 지식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가르치는 일을 지지함으로써 과학 교과과정의 순수성을 보전하길 요청한다. 우리는 과학은 과학으로, 종교는 종교로, 서로 구별되지만 동시에 서로를 보완하는 진리 형태로 남기를 원한다.




과학 혁명 이후 현대 과학의 발전이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충돌하고, 전통적 세계관의 붕괴를 초래하고, 무신론이 등장하는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현대 과학이 가져온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가 과연 기독교 신앙의 핵심 내용 곧 기독교의 핵심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오히려 현대 과학이 절제된 방법으로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지식을 가져다줌으로써 기존의 잘못되고 편협한 생각을 교정하고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교회가 기독교의 핵심 진리와는 무관한 고대의 세계관을 고수하기 위해서 현대 과학의 발전에 맞서는 바람에 오히려 과학적 무신론이 득세할 근거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이제서라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과학 교육을 긍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과학적 무신론의 존재 근거를 뿌리부터 제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요컨대,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 교육은 과학 시대의 상식을 가르치는 과학 교육을 적극적으로 품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교회와 믿음의 가정에서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와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우주와 생명과 인간의 빅 히스토리를 함께 가르치는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신앙 교육 현장에서는 낯선 풍경이지만, 신앙 교육이 과학 교육을 품고 있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이와 같은 연출은 그 자체만으로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현대 과학이 신앙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해준다. 문자주의적 해석을 고집하는 일부 창조론자들의 우려와 달리, 신앙 교육의 현장에서 과학 교육을 병행하는 이 같은 시도는 과학의 언어와 달리 성경의 언어를 포함한 종교 언어가 시적, 은유적, 문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1. 1. 이 글은 김정형 교수가 '문화선교연구원'에 기고한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cricum.org/1391?category=643369) [본문으로]
  2. 2. 예수님을 사랑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평화의 나라를 소망하고, 교회의 미래를 고민하며,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신학자. 우주의 종말에 관한 신학과 과학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 작성, <분단 한국을 위한 평화의 신학>의 저자,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조교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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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서평] 그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다양한 서평을 써온 김영웅 박사님의 글을 연재합니다. 과학자가 읽은 신학책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공적이다.

복음의 공공성 | 김근주 | 비아토르 | 2017


김영웅[각주:1]


서론에서부터 김근주 교수는 만약 기독교인들이 정치와 구별하여 개인의 영적 문제에 치중하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견해라고 명료하게 밝힌다. 특히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마치 영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과 다름 없는 한국 교회의 분위기는 이를 잘 뒷받침하는 듯하다.


정치 뿐만이 아니다.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만을 마치 복음의 전부인 듯 부각시켜, 다른 것들은 모두 영적이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만들어 그 동안 많은 교회는 복음을 사적인 영역에 가두었고, 교인들에게는 바울의 칭의 개념만을 강조하여 개인구원론을 복음의 전부인 것마냥 가르쳐왔다. 그러나 바울의 칭의 개념은 바울이 읽고 묵상하며 깨달은 성경 말씀이 배경이 되었고, 그 성경은 신약이 아닌 구약이었다는 점을 우린 간과해선 안 된다.


또한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다루면서 하나님나라를 전하는 책이다. 예수님이 어릴 적 공부하셨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으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과 하신 논쟁의 근거 역시 신약이 아닌 구약이었다. 예수님은 모든 구약이 말하는 약속의 성취셨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나라의 본체셨다. 그러므로 신약의 예수님을 다룬 사복음서나 바울이 쓴 서신들 모두 구약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을 이해하지 않은 채 복음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김근주 교수는 토로한다. 이 책의 부제가 '구약으로 읽는 복음의 본질'이라는 것이 명징하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책이 던지고 있는, 표지에도 적힌 큰 질문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 신앙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제한되는가?" 복음의 공공성은 복음의 또 다른 부분 정도가 아니라, 복음의 핵심이며 본질이라는 사실을 이 책 '복음의 공공성'은 말하고 있다.



평안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불의가 판을 치며,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사회와 국가에서 나 혼자 평안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기란 불가능하다. 복음은 결코 개인적인 마음의 평안함만을 가지도록 요구하거나, 윤리적이고 경건한 마음가짐만 강조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한마디로 복음의 목적은 개인의 구원이나 해탈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예수의 탄생과 죽음이 로마와 유대인들의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듯이, 복음은 정치적으로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구조적인 악과 사탄의 체제에 예수의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하며, 그곳에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복음의 시작과 목적과 방향, 모두가 공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이다.


이 시대에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나라의 도래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닌 온 나라와 열방들, 그리고 창조 세계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앞서 경험하는 것이다. 즉 복음의 공공성은 창조 질서와 직접 연결이 되어있는 복음의 본질 중 하나이며, 이는 곧 구약의 복음이 지속해서 말하는 바와 일치한다. 저자는, 교회를 통하여 우리들이 구약을 무시한 채 신약만을 복음의 전부로 배우거나 이해해왔기에 비역사적인 개인 교훈집이나 경건 도서로 전락해 버린 것이라며 울분을 토한다.


또한 복음의 공공성은, 하나님의 통치가 인간을 통해 발현되는 증거인,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과도 곧장 연결된다. 남에게로 향하는 삶,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이웃 사랑, 나를 넘어서 열방을 위해 쓰임 받는 삶, 하나님을 닮는 거룩한 삶,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이 바로 복음의 공공성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사적인 복음만을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번영 신학보다도 더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원죄의 흔적이 만들어낸 거짓 묻은 복음일지도 모른다. 톰 라이트가 말한 빈 망토와도 같은 복음의 변질과 왜곡, 바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다.


보수, 진보를 떠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새겨 듣는 말씀인 마태복음 6장 33절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에서의 '의'가 곧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셨고 아브라함을 불러 명령하셨던 정의와 공의를 현실 세계를 살면서 구하는 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린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는 삶이 사적인 복음보다는 공적인 복음에 무게중심을 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더 이상 이 구절이 개인의 윤리와 경건을 요구하는 말씀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근주 교수는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말의 의미 자체가 단수가 아닌 복수,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이라는 근거를 들며, 우리 신앙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길 추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공적일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출발부터가 공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죄와 타락이 기술된 창세기 3장에서도 김근주 교수는 복음의 공공성을 찾는다. 뱀의 유혹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기애를 충동질하여 함께 해야 할 사람들과 창조물들과의 관계를 파괴했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공동체의 삶, 즉 공적인 삶을 무너뜨린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을 선악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자기 유익에 따라 선악을 마음대로 판단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사리사욕이 선악의 기준이 되어버렸으며, 이는 곧 공적 삶의 파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공적 삶을 지향했고, 인간의 죄는 그 공적 삶을 파괴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약에서 말하는 사탄의 실체와 그의 목적과 패턴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창세기를 훑어가며 공적인 복음의 속성을 들춰낸다. 하나님의 선교, 복음의 시작인 아브라함의 선택과 부르심은 아브라함 가문만이 아닌 열방이 복을 받기 위함임을 볼 때도 우린 복음의 시작부터가 사적인 유익의 충족이 아닌 공적인 속성을 띠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창조-타락-새창조의 맥락이 모두 복음의 공공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쩌면 복음의 반대말은 사리사욕일지도 모르겠다.


아브라함 뿐만이 아닌 창세기 후반부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 속에서도,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을 가르치는 레위기 19장에서도, 구조적인 조정으로써 가난의 대물림을 없애며 온갖 질곡와 멍에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선포를 의미하는 희년법이 설명되는 레위기 25장에서도,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와 그일라 전투에서도, 우상숭배가 보여졌던 구약 여러 본문에서도, 그리고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이스라엘의 왕정시대가 기록된 역사서에서도, 마지막으로 이사야를 중심으로 여러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회개를 선포했던 여러 예언서에서도, 김근주 교수는 공적인 복음의 본질을 낱낱이 파헤쳐 우리에게 조근조근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공적인 속성을 가지는 복음이 신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배경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렇게 저자의 구약을 죽 훑어가며 들춰내는 팩트 체크를 통해 우린 복음의 공공성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되고, 그 동안 사리사욕을 위해 복음을 내면화하기에 급급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준다.



책을 읽어오며 수 차례, 아니 수십 차례 저자의 숨막히는 구약 해설을 통해 압도당한 독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에 이르러, 공적 복음의 본질이 '이웃 사랑'으로 압축된다는 사실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그랬듯 말이다.


하나님나라가 어떤 곳인지 이 책을 읽고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가 된다. 이웃 사랑이라는 의미가 이젠 다르게 다가온다. 다분히 막연했던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선명해졌다. 죄와 사탄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상숭배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여호와의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좀 더 명확해졌다. 그 동안 이 책 저 책 읽어오며 산재되어있던 지식의 파편들이 복음의 공공성이란 개념에 의해 하나로 모아지는 느낌이다. 김근주 교수의 이 책 '복음의 공공성'을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책을 통하여 숨겨졌고 잊혀졌던 복음의 본질을 뒤늦게나마 발견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나라 공동체가 곳곳에서 회복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1. 분자생물학과 마우스 유전학을 기반으로 혈액암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미국 City of Hope에서 Staff Scientist로 일하고, 과신대 파사데나 북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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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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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성경해석
4강.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을까? / 5강.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6강. 무신론의 도전 / 7강. 과학주의 무신론 / 8강.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 9강. 기적적 창조와 자연적 창조


4부. 창조론의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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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방식 : 수강신청을 한 분들에게 영상으로 강의를 수강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1주일 동안 12개의 강의 영상(약 15분씩)을 시청한 후 간단한 테스트 문제를 제출하면 됩니다. 이후에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를 읽고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면 수료가 됩니다.


■ 수료자격 : 테스트 답안 및 서평 제출 (<기초과정 I>을 수료하면 <기초과정 II>에 수강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 과제 

1) 강의 영상을 모두 시청한 후 온라인으로 출제되는 간단한 테스트 문제에 답변을 작성해 제출

2)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 독후감 제출 (분량 A4 1매 내외, 보내실 곳: scitheo.office@gmail.com)


■ 수강신청 기간 : 2018년 12월 19일(수)~2019년 1월 4일(금) 밤 12시까지                     

■ 영상수업 기간 : 2019년 1월 7일(월) 낮 12시~1월 13일(일) 밤 12시까지

■ 과제제출 기간

1) 테스트 문제 제출 : 2019년 1월 14일(월) 밤 12시까지

2) <무크따> 독후감 제출 : 2019년 1월 20일(일) 밤 12시까지


■ 수강료 : 3만원 (과신대 정회원, 대학생, 신학생은 1만 5천원, 중복할인 불가)

■ 신청 : 온라인 신청 → 송금 → 신청완료

■ 계좌 :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문의 : scitheo.office@gmail.com / 070-4320-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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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원 가입을 원하실 경우 입회신청서와 후원약정서를 제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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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19호

과신대 칼럼
" 스킨십, 소통, 그리스도 "
김영웅
미국 City of Hope의 Staff Scientist / 파사데나 북클럽 회원


인간은 유한한 육신에 갇혀 있기 때문에, 우린 자칫 인간의 육신을 생각할 때면 제한받고 통제받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만을 강조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난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를 제한과 통제보다는 오히려 자유함에서 찾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수 있고, 그 만짐으로 인해 사랑을 느끼고 비로소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육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이는 곧 자유함이기 때문이다. 창조된 우리의 육체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어쩌면 천사가 흠모하는 인간의 본질은, 그들은 가지지 못했으나 인간만이 가질 수 있었던, 바로 우리 육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더보기)

그동안 종교와 과학의 대화는 주로 서구 신학을 기반으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서구적인 맥락에서는 신학과 과학이 분리가 안 됩니다. 둘 다 서구적인 학문입니다.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도 결국 과학적인 사고입니다. 하지만 저는 진정한 종교와 과학의 대화는 초자연과 자연이라는 이원론을 극복한 동양적 사고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둘의 간극을 극복한 것이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도교와 유교였고, 이 두 전통은 자연 안에 이미 초월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월적 내재를 말하고 있죠. 서구 신학에서는 이 둘이 같이 가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동양신학, 특히 한국신학적인 입장에서 서양신학이 가지 못하는 새로운 모형을 이야기했습니다. 


(더보기)

과신대와 함께하는 분들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 과신대 사람들 "   


(15)

김흡영 교수

강남대학교 명예교수

 

 

[북클럽 소식 - Book Club]

[과신대 Book Story - 신간 & 서평 소개]
박영식 <창조의 신학> (동연, 2018)

서평 | 어진성 (인천대학교 화학과)

 

뇌과학자 정재승 씨가 쓴 열두 발자국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어느 유투버가 소개하면서 정재승 씨에 대해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과학이 재미있다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통하여서 지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과학 학부생이고, 신학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교회 청년으로서 <창조의 신학>에 대한 평을 감히 내리자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은 신학자와 과학자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돌아보고, 공동체의 삶을 돌아보고, 한국 교회의 삶을 돌아보라는 지혜가 담긴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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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이야기 - Story]
[12회 콜로퀴움 후기]

솔직한 과신대 콜로퀴움 후속모임(뒷담화?!)

당장 오늘 모였던 사람들도 모두 개신교인이었지만 창조의 방법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렸다. 여기 이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수렴되는 부분은 결국 문제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얼마나 초점을 맞추느냐였다. 하나님의 초월성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사실 이 세계의 현상에 대해 자체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학문인데 그 설명 기제에 우리가 과학적 탐구를 수행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것을 넣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가 하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내재성에만 너무 집중하면 반대로 이 땅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도, 하지만 주로 자연적인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보기)

2018 과신대 회원의 밤

2018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하고 축복하는 자리에 정회원 여러분들을 초청합니다.
...
온라인으로만 만나는 분들이 함께 얼굴보고 먹고 나누고 축복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무엇을 해왔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소소하게 나누면 좋겠습니다. 특별 순서도 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모두에게 따듯하고 포근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오셔서 함께 하는 기회가 되길 빕니다.

과신대 대표 우종학 드림
(더보기)

과신대와 뜻을 함께 할 협력교회를 모집합니다. 

과신대는 과학주의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변증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위해 건강한 창조신학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과신대의 비전과 사역을 지지한다면 과신대와 함께하는 교회로 동참해 주세요. 

과신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기독교 교육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보급하기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2018 과신대 회원의 밤>
2018.12.8 (토) 오후 6:30
NPOpia (낙원상가 5층)


<2019 과신대 청소년 캠프>
2019년 1월 26일 토요일, 청소년들을 위한
과신대 캠프가 찾아옵니다.
(자세한 사항은 추후 공지 예정입니다.)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석 교수 | 성공회대학교 총장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박근한 교수 | 유타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일준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박화경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신은철 교수 |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윤철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상희 교수 |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과
  이정모 관장 | 서울시립과학관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허  균 교수 |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
  현요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장현일 | 총무/재무이사
  김남호 | 연구/기획이사
  강사은 | 홍보/미디어이사
  심왕찬 | 홍보/미디어이사
  곽은이 | 교육/출판이사
  김재상 | 교육/출판이사
  백우인 | 교육/출판이사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최경환 | 기획실장
  김고운 | 행정간사
  이진호 | 행정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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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국립중앙도서관 근처 카페에서 김흡영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김흡영 교수님은 강남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종교 간의 대화,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신 국내 1세대 과학신학자입니다. 꾸준히 해외 저널과 저서에 글을 기고하시고 최근에는 트랜스휴머니즘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신다고 합니다.  


인터뷰어 | 최경환 실장

인터뷰이 | 김흡영 교수

사진/글 | 최경환 실장



1. 교수님은 언제부터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요?
  
본래 저는 서울대학교 공대를 나왔고, 과학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되고 싶었죠. 나중에는 우주에 못 가지만, 영적인 우주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신학을 공부하게 됐고,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 가서 과학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학교에 The Center for Theology and the Natural Sciences라는 연구소가 있는데, 그곳에서 Robert John Russell과 Ted Peters을 만났습니다. 이분들이 저의 스승이자 친구입니다. 이분들과 함께 저는 아시아 지역을 맡아서 한국에서는 4개 대학(장신대, 한신대, 서울여대, 강남대)에 ‘종교와 과학’ 정규 과목을 개설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동안 종교와 과학의 대화는 주로 서구 신학을 기반으로 연구가 진행됐습니다. 서구적인 맥락에서는 신학과 과학이 분리가 안 됩니다. 둘 다 서구적인 학문입니다.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도 결국 과학적인 사고입니다. 하지만 저는 진정한 종교와 과학의 대화는 초자연과 자연이라는 이원론을 극복한 동양적 사고에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둘의 간극을 극복한 것이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도교와 유교였고, 이 두 전통은 자연 안에 이미 초월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월적 내재를 말하고 있죠. 서구 신학에서는 이 둘이 같이 가기 어렵죠. 그래서 저는 동양신학, 특히 한국신학적인 입장에서 서양신학이 가지 못하는 새로운 모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서구의 학자들이 종교와 과학의 대화나 생태신학에 대한 논의가 나오면 지속적으로 저한테 원고를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꾸준하게 1년에 2-3개씩 글 요청이 들어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신학과 과학이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요? 평소 교수님의 생각을 말씀해 주세요.
  
신학이라는 것은 전체적인 것입니다. 비기독교적인 토양 속에서 혹은 기독교적인 토양 속에서 과거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또 현재의 신학, 그리고 미래의 문제를 모두 연결해서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신학은 과거를 잘 배우지도 않고, 미래를 이끌어 가는 과학도 잘 배우질 않습니다. 서양의 신학만을 번역하고 공부하기 바쁘죠. 
  
무엇보다 대화가 중요합니다. 대화의 기본은 자기 입장을 고집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대화가 안 됩니다. 서로 열린 입장에서 담을 허물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대화에 들어가면, 전도를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듣는 자세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심지어 무신론자나 과학주의자들과도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서문자주의나 교리주의로는 대화가 힘들겠죠.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누구도 다 알지 못합니다. 내가 아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는 믿음이 중요하죠. 나를 하나님께 드리고 나를 열어놓고, 이웃을 품는 자세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정죄하는 자세로 대화를 하면 안 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가슴에 품고, 상대방의 입장을 들으면서, 서로 소통을 하는 것이 대화의 방법입니다. 나의 신학을 과학과 대화하면서 폭넓게 지평을 넓히는 겁니다. 과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신학적인 지평을 넓히는 것이죠. 
  
그런데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2차적인 단계가 있습니다. 이런 대화를 하고 나서 자신만의 새로운 신학을 구성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는 어느 정도 규범적인 틀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단지 교회라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사용될 신학입니다. 교회 밖에서 사용할 용도가 아닙니다. 교회 밖에서 이걸 주장하면 대화가 안 됩니다. 설교 밖에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치열하게 새로운 신학을 위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3. 그렇다면 어떤 내용으로 대화를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중요한 주제는 트랜스휴머니즘이나 인공지능에 관한 것입니다. 이제는 과학의 시대, 특별히 기술의 시대입니다. 생명과학과 유전자 편집, 인공지능의 발달은 지금 실험실에서 이뤄지고 있고, 현재 우리의 삶을 이끌고 있습니다. 당장 우리들도 핸드폰에 끌려가고 있잖아요. 과학은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니 창조와 진화 논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쩌면 당장 급한 것은 인공지능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따져봐야 합니다. 트랜스휴머니즘이 나타나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어떻게 되는지 고민해 봐야죠. 그러니 우리는 현대의 과학자들과 공학자들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근대주의가 인간중심주의로 흘러가니깐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실 트랜스휴머니즘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호모 사피엔스 다음이 트랜스휴머니즘입니다.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서 과학을 알아야 합니다. 한 손엔 성경, 한 손엔 신문이 아니라, 한 손엔 성경, 한 손엔 과학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 과학자들을 훈련시키고, 실험실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지금 벌써 사이버 교회가 나오고, 인공지능이 설교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도 준비를 해야죠. 
 


4. 새로운 과학의 발전과 도전 앞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요? 

 
기독교는 항상 새로운 도전 앞에서 정화가 됐습니다. 이제 가짜 설교, 가짜 목사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영적인 교류를 통해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진짜 목사가 나와야 합니다. 진짜 목사, 진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죠. 인공지능은 신학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문제입니다. 
  
미래의 트랜스휴머니즘은 기독교에 하나의 도전을 줍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진짜냐? 기독교가 말하는 참 인간은 무엇이냐? 신론에도 도전을 줍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인공지능이 다 하는걸요. 그렇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무엇인가? 그래서 저는 십자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넘어서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종말론에도 충격을 주죠. 그동안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는 나라를 소망했는데, 이제 과학이 그것을 해 주겠다고 하잖아요. 그럼 기독교는 뭐가 다른 거죠? 그러니 신학이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기존의 틀로는 안 됩니다.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칼 바르트는 신문을 보고 기도를 한 신학자입니다. 어쩌면 나치에 저항할 수 있었던 힘이 기도에서 나온 겁니다. 이제는 최첨단의 과학 소식을 접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들은 겸손하게 공부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미 은퇴를 했습니다. 이제 후배들이 이어받아야죠. 새로운 주제들이 계속 쏟아지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과신대는 열정이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열심히 이 분야에 공헌을 해 주길 바랍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