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라도 기꺼이 새롭게 숙고하기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 (존 H. 월튼, 김광남 역, 새물결플러스)


서평 | 백우인 (과신대 교육/출판이사)



시대의 변화는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변하기도 하고 엄청난 해일이 돌을 산산조각 내는 대격변이기도 하다. 생명과학의 기술이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인간의 사유가 쉽게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논쟁들 가운데 하나는 성서와 과학과 인간의 기원과의 관계가 아닐까?


월튼은 성서 자체는 변하지 않을 지라도 오늘날 성서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훨씬 더 역동적이며 그로 인해 나타나는 신학이 계속적인 재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성서 해석자이자 신학자로서 신학적 전통이 중요하지만 해석과 해석의 도구로 삼고 있는 해석학조차 시대를 따라 변해왔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통찰과 정보는 어느 때라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은 150년 동안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진화론은 발전의 시작이었고, 유전학의 발전은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비교함으로서 인류의 공통 조상을 찾고, 21세기 초 인간 유전체의 정보를 읽어내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생명과학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진보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직접 유전체를 합성하여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포스트게놈 시대’를 살고 있다.


인류의 진화 역사는 어떨까? 수 백 만년 동안 계속 되어온 인류의 진화 역사에는 커다란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은 직선이 아니라 꼬불꼬불한 발자취를 보여준다. 진화의 역사의 방향에 정답은 없다. 이상희 박사는인류의 기원에서 “진화에 유익한 형질, 적응에 유리한 형질은 우연의 작품이다. 우연히 이루어진 환경의 변화 속에서 마침 우연히 생겨난 형질이 유익했고 유익한 형질을 가지고 있는 개체가 더 많은 자손을 남겼을 뿐이다. 어느 한 때 유익하다고 영원히 유익하지 않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때 적합한 선택을 해서 앞으로 나아갔던 것뿐이다.” 라고 말한다. 


월튼의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는 인간 기원 문제로 고민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인지부조화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그는 인간의 기원에 관한 현재의 합의에 의해 제기되는 위협은 과장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의 원칙에 의거한 과학의 합의가 의심스러울 경우 이를 맹목적으로 수용해서도 안 되지만 과학의 결론들이 성서의 믿음에 어떤 위협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이해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고대 문서로서 또한 경전으로서의 성서에 대한 면밀한 읽기를 수행하면서 창세기에 초점을 맞추지만 실제로는 경전 전체를 고려한다. 성서에 대한 충실한 읽기를 통해 이런 읽기들이 과거의 몇 가지 전통적 읽기와 얼마 간 다를 수 있지만 그 다름 또한  본문 안에서 지지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최근의 과학적 발견 중 어떤 것은 우리가 고대 근동이라는 상황 속에서 발견하는 것과도 양립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컨대, '성서와 과학이 인간의 기원에 관해 상호 배타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현재의 과학적 합의는 인간이 다른 종들과 공통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물질적(계통 발생적) 연속성이라는 증거에 기초한 주장으로 성서 본문에 대한 면밀한 읽기와 신학적 연구는 그것들이 이런 물질적 연속성과 공통 조상을 감안하고 있음을 지적해왔다고 말한다. 창세기를 고대 근동의 문헌으로 신중하게 읽는 일은 공통혈통과 본질적으로 충돌하지 않는 역사 또는 인간 게놈을 통해 관찰 할 수 있는 역사로부터 얻어지고 또한 그것으로부터 추론되는 주석적 결론과 신학적 확언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월튼은 성서의 내용을 그 문화적 상황이나 현대의 과학과 일치시키도록 강요해서는 안 되며, 고대 세계의 문헌으로부터 나온 정보나 과학적 탐구를 통해 얻은 통찰이 우리로 하여금 성서로 돌아가 우리의 해석을 재고하도록 적절하게 자극할 수도 있음을 주장한다.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는 성서본문은 전통으로부터 나름의 자율성을 지녀야하고 언제라도 기꺼이 성서 본문으로 돌아가 이를 새롭게 숙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서의 권위에 관한 견고한 확신과 성서의 해석 위에 세워진 전통을 바탕으로 작업하지만 신학적 틀 내부에서는 성서본문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월튼은 이 책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 에서 창세기 서두를 읽을 때 두 가지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첫째, 창세기를 현대 과학의 기준으로, 즉 과학책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둘째, 창세기는 고대 근동의 세계관에 공통 바탕을 둔 고대의 문서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 두 가지 기초적인 사항을 외면하고 창세기를 읽은 결과, 고대 근동 문화와 세계관의 기반 위에 쓰인 성서의 이야기를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문자적으로 오독하는 우를 범한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소위 젊은 지구 창조론으로 대표되는 창조과학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창세기는 고대 문서이다. 성서의 권위는 불가피하게 저자의 의도와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창세기를 읽을 때 고대문서를 읽는 것이며 따라서 고대 세계에서 적절했던 가정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시작해야한다. 고대인들이 어떻게 사고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소통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월튼에 따르면, 창세기 1장이 말하는 기원 이야기는 물질적 우주보다 질서, 기능, 역할 등과 연관되어 있다. 창세기 2장은 에덴동산으로 알려진 성소라는 지구의 중심의 설립에 대해 이야기 한다. 아담과 하와는 성소를 섬기는 제사장이며  모든 인간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리에 세워 질서의 중심이 되려는 죄를 짓는다. 말하자면, 창세기 3장은 최초의 죄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질서가 잡히는 과정 중에 있는 세상 속으로(죄에 의해 초래된) 비질서가 잠식해 들어오는 일에 관한 이야기,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창세기 1장부터 3장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아 선발된 문자적 의미에서 최초의 인류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운명을 테스트할 대표자로서 선발된 원형적 존재이며, 또 아담이 원형적 존재일 때만 구약 이스라엘과 신약의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원형적 존재로서 온 세상의 운명을 짊어진 존재라는 사실이 확증된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