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칼럼

나는 뇌가 아니다


김남호 박사

(울산대학교 철학과 / 과신대 연구이사 / 철학자가 된 셜록 홈즈』의 저자)


 


 

마흔도 채 되지 않는 독일 본 대학의 젊은 철학교수 마쿠스 가브리엘의 신작 <나는 뇌가 아니다>를 읽고 있다. 내가 본 대학 박사과정에 있을 때 가브리엘 교수를 학술회장에서 보곤 했다. 늘 치열한 논쟁이 일어나는 학술회장에서 그는 영감어린 물음들을 던지곤 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학술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인정 받은 보기 드문 철학자로 주목 받고 있다. 학술적으로 그가 앞으로 어떤 업적을 남길지 나도 궁금하다. 책을 읽고 있자니 그 특유의 속사포같은 말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뇌가 아니다>는 가브리엘 교수의 심리철학 입문서이다. 그러나 입문서라기 보다는 '나는 나의 뇌이다'라고 주장하는 신경중심주의 혹은 환원주의를 맹공격하고 정신의 실재성을 옹호하려는 철학 변론서에 가깝다. 그는 신경과학이 머지않아 인간의 정신을 물질로 모조리 설명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선동이 아닌 논증으로 보여준다. 특히 신경중심주의, 자연주의, 환원주의의 특성과 출현을 철학사적으로 파헤치는 가브리엘의 날카로움은 그의 높은 철학적 역량을 그대로 보여준다.



철학 입문서나 철학 입문 강의는 학계에서 학술적인 검증을 받은 전문 학자가 맡아야 한다. 그 이유는 적어도 (1) '철학적 기본기' (2) '깊이' 때문이다. 모든 운동,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철학에도 기본기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많은 개념들, 입장들이 있다. 심지어 개념 하나하나에도 개념의 역사, 즉 개념사가 있다. 이 개념사를 잘 알아야 한 개념을 잘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깊이'는 철학의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입장들에 대한 올바르고 섬세한 이해를 뜻한다. 비전문가 중에 특정 철학자의 해석을 통해서 곧바로 철학에 입문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해석 이전에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영역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독일 대학에서 학부 1, 2학년 정도에서는 철학 기본기가 중요하지 않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그것이 강조된다. 그 이외에 (3) '자신만의 입장 혹은 시각'이 추가될 수 있다. 철학 입문서에 굳이 (3)이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변론서 성격이 강한 입문서(가령, 러셀의 철학입문서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물론 (3)(1)(2)를 탄탄하게 갖춰야만 도달할 수 있다.


가브리엘 교수의 <나는 뇌가 아니다>는 이 세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그는 화려한 글발로 대중을 선동하는 그런 대중 저술가가 아니다. 2천년 철학의 역사를 궤뚫는 통찰, 개념 하나하나에 대한 정확하고 깊은 이해, 설득력 높은 근거제시, 논리력 등을 기본적으로 갖춘 상태에서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는 보기 드문 학자이다. (이런 점은 까다로운 개념들을 먼저 규정하거나 학술서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는 작업, 철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적시적소에 비판적으로 끌어들이는 솜씨 등을 통해 드러난다)



한국 사회에 철학은 아직 낯설다. 그러나 그만큼 철학이 필요한 사회이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과학만 발전하면 철학자들이 묻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착각이다. 가령, 생물학자들이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에 대해 알아낸 사실들을 병렬적으로 늘어 놓는다고 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내 놓을 수 없다. 이는 마치 사건들을 늘어 놓는다고 해서 그로부터 역사관이 나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인간의 뇌에 대해 지금까지 알아냈고, 앞으로 알아낼 모든 확인된 사실들을 단지 늘어 놓는다고 해서 곧 우리 존재에 대한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 제공해주는 실험을 통해 확인된 사실들을 너머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형이상학, 논리학 등과 같은 철학 분과의 도움이 필요하다. 칸트, 니체, 하이데거와 같은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자들이 활동했음에도, 위의 사실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지금까지 크게 변함이 없다는 점을 20세기 심리철학의 발전이 잘 보여주고 있다.


거의 모든 크리스천들은 정신이 물질로 모조리 설명된다는 환원주의를 거부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의 뇌가 아니며, 서로 교제 나누는 대상은, 구원 받는 대상은 뇌가 아니며, 예수가 살려낸 대상은 나사로이지 나사로의 뇌가 아니며, 예수를 배반한 대상은 가롯 유다이지 그의 뇌가 아니다. 그러나 이 상식적인 믿음에 객관적인 근거가 요구된다. 바로 철학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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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인천/부천 북클럽]




10월 16일(화)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인천/부천 과신대 북클럽 모임을 가졌습니다. 

지난 달에 이어서

이번에도 박영식 교수님의

<창조의 신학>으로 진행했습니다. 


각자 2장, 4장, 6장을 읽어오고

질문을 3개씩 만들어 오도록 했는데,

정작 2장에 대한 토론이 길어져서

4장, 6장은 시작도 못했습니다. 



북클럽에 참석하신 분들이

모두 책을 열심히 읽어와서 그런지

질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과

죽음 이후의 몸의 부활에 대한

토론이 활발했습니다. 


기존에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들었던 내용도 아니고

상당히 낯설고 새로운 내용이라 그런지

모두들 충격을 받은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박영식 교수님께서

학생들의 질문을 잘 경청해 주시고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셔서

은혜롭게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



매주 교수님께서 각각 종류대로

맛있는 간식도 준비해 주시고

학생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앞으로의 모임도 기대가 됩니다. 


다음달 모임은 서울신대 신학과 학생회와

과신대가 콜라보로 진행하는

과신톡으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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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와 과학자의 유쾌한 대화로 풀어가는 과신톡]

http://scitheo.tistory.com/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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