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칼럼

인스턴트 유감?


권영준 교수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과신대 자문위원)




한 학기 수업을 하다보면 여러 번의 마무리가 필요하다. 우선 정규 강의를 모두 마치는 종강 시간이 있다. 그렇지만 종강이 끝은 아니다. 기말고사의 출제와 채점, 그리고 평가가 남아 있다. 그 다음엔 성적 평가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과정이 있다. 물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교수들은 성적 합산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 외에는 절대로 평가 결과에 대한 변경은 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 끝은 아니다. 학생들이 작성한 강의평가 결과를 확인하고 나서야 그 수업은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대학에 임용되어 20년이 훌쩍 지나간 지금도 매 학기 강의평가 내용을 확인하는 시간은 늘 설레고 즐거운 경험이다. 특히 서술식 평가문항들은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느낌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큰 도움이 된다. 그중에도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표현들은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몇 년 전 잠시 맡았던, 이공계 학생을 제외한 전교생 대상 어느 교양과목의 평가문 중 “현대물리학의 기적적이고 감동적인 narrative를 살릴 수 있는 강의는 무엇일지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라는 내용은 분명 내 강의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니 내가 좀 더 노력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기적적이고 감동적인 narrative’에 대해 공감해 주는 수강생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따뜻해 진다. 지난 학기에 나온 “한 학기 수업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라는 평가문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같다. 


나는 이력서에 취미를 적어야 하는 경우 ‘합창’이라고 적곤 한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 성가대원으로 참여하였고 미국에 거주하던 시절 학교 및 마을 합창단에 참여하다 보니 여러 좋은 지휘자님들을 통해 음악에 대해서, 합창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중 어느 지휘자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음악의 조건은 지금도 무척 공감이 된다. 답을 직설적으로 주는 음악이 아니고 한 곡 전체를 통해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수업에서도 조금 긴 호흡으로 함께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진행하길 원하고 그렇게 되도록 준비한다. 


강의평가 내용 중 특별히 나를 당혹케 하는 평가문은 ‘강의의 요점을 좀 더 명확히 정리해 주면 좋겠다’라는 내용의 평가들이다. 이 평가를 작성한 학생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면 그 친구를 만나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보고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이 평가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내가 긴 호흡으로 전달하려 한 그 결론의 제시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긴 호흡을 떠받치는 논리의 전개가 취약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나의 동료 교수 중 한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분은 의외의 답을 주셨다. '아마도 고교시절까지 입시위주의 교육을 받다 보니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들의) 정답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제시해 주어야 만족스런 평가가 나올 것이라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효율성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입시 준비를 위한 교육에서는 긴 호흡의 이야기 전개를 함께 즐길만한 여유는 없다. 그저 가능한 짧은 시간에 가능한 많은 문제의 정답을 맞출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 주기만을 바란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결혼생활 사반세기가 지나도록 자녀가 없다. 그래서 우리 나라 중고생들이 어떤 종류의 교육과 평가를 받는 지에 관해 사실 아는 것이 거의 없기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 늘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교사가 모든 것을 소화하기 좋게 다듬고 정리해서 제공해 주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게다가 효율성의 논리 아래 책에 있는 ‘정답’ 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게 하는 그런 인스턴트식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예전에 과신대의 어느 모임에서 인스턴트 음식과 어머니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마련하신 음식과의 차이를 비유로 들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공부도 이와같은 것이 아닐까. 아주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해서 한가지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공부하고 마침내 지금까지 아무도 찾지 못한 새로운 진리의 한 부분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중한 배움이고 깨달음이 될 것이다.  



어느새 올해도 10월이 되었다. 언제나처럼 10월초에는 각종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된다.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본인이 흥미를 느끼는 한가지 주제에 깊이 들어가 연구하다보니 나온 중요한 업적으로 인정받는 결과물들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벨상 소개 기사 옆에는 ‘우리 나라에서는 왜 아직도 과학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가’하는 기사들이 따라 나오곤 한다. 글쎄다. 효율과 경쟁의 깃발 아래 인스턴트식 맞춤형 공부, 맞춤형 연구의 틀을 벗어나 연구자 개개인의 학문적 관심과 흥미에 따라 깊이있는 긴 호흡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이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가 무엇보다 우선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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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7 / 20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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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