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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12호

- 과신대 칼럼 -

 " 정말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김근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학 교수 / 과신대 자문위원)

 

 

십자가를 예고하는 주님을 한 켠으로 데려간 베드로가 주님을 꾸짖었을 때(막 8:32), 주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네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8:33) 다시 꾸짖으셨다.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강력한 꾸짖으심은 “사탄”이라는 표현으로 집약된다. 여기서 “사탄”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영적인 어떤 존재’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없다. 사탄이 의미하는 것은 베드로의 가치관, 베드로의 세계관이다. 그리스도라면 그런 끔찍한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영광스럽게 임하고 모든 원수들을 박멸하는 승리의 주, 영광의 주라야 한다는 가치관, 그것이 베드로의 생각이고, 그것을 향해 주님은 사탄이라 단번에 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사탄”은 가치관이며,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서의 사탄의 존재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 반면, 신약 요한계시록의 경우 사탄과의 싸움이 이 세상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궁극적 싸움이다. 이를 보면, 사탄의 존재 자체는 구약과 신약의 시대마다 달리 표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구약과 신약에 공통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부르시는 삶과 그를 떠나 영광과 승리, 번영을 추구하며 욕망을 극대화하려는 삶의 대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탄이라는 영적 존재의 여부를 믿는가 안 믿는가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가라고 할 수 있다. 사탄과 같은 외부의 대적 세력에 대한 믿음 여부는 그 시대의 인식과 정보, 과학과 문화의 진전과 결부되어 있다.

문화와 과학은 시대마다 바뀐다. 영원한 복음은 시대마다 바뀌는 문화와 과학을 통해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킬 것은, 신구약 성경의 배경이 되던 고대 시대의 우주관, 사회 문화의 형태, 가정의 모습, 결혼 제도,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해 같은 내용이지 않을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우리가 굳게 간직하고 지켜야 할 복음의 핵심적인 가치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하시어 그 아들을 주신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임이 분명하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미 7:12),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롬 13:8-10; 갈 5:14)는 가르침은 이 점을 명확히 표현한다.

그러나 한때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여 지동설로 대표되는 과학을 거부하고 맞섰으며, 한때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여 노예제도를 지지하며 여성의 참정권을 반대하였다. 성경에서 활용된 그 시대의 배경을 지켜야 할 영원한 가치로 착각한 데에서 비롯된 교회의 오류라 할 수 있다. 지동설을 입증한 과학의 연구 성과와 노예 제도 폐지, 여성 참정권 확대라는 사회 문화의 진보는 이제까지 교회의 해석이 잘못 되었음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사례는 무수하다. 정말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놓쳐 버렸을 때, 교회가 세상의 빛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이 교회의 빛이 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여 동성애를 반대하는 일에 앞장선다. 아마도 이 상황 역시 성경이나 신학으로 해결된다기보다, 동성애에 대한 의학 분야 연구 성과와 사회 문화의 변화를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천동설, 가부장제, 노예 제도, 여성 참정권 반대 등과 같은, 교회가 성경에 근거하여 지지한 비진리 목록은 앞으로도 더욱 쌓여만 갈 것 같다.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놓쳐 버린 교회,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잃어 버린 교회, 그러면서 과학에 대한 신앙의 우위, 세속 문화에 대한 기독교 문화의 우위와 같은 구호를 내세우는 교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속한 한국 기독교의 현실이지 않은가.

[과신대 이야기]
[제 7회 콜로퀴움]

강연자인 윤철민 목사는 자신의 저서인 『창조과학과 세대주의』의 내용을 중심으로 강의 내용을 전달하였다. 그동안 창조과학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과학’이라는 측면에서는 허구성이 밝혀졌지만, ‘신학’적인 면에서는 연구된 내용이 전혀 없었기에 그는 개혁주의적 관점으로 이러한 연구를 시작하였다고 이야기했다.  (더보기)
[2018 베리타스포럼 고려대]

지난 1990년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시작된 베리타스 포럼이 국내에 첫 선을 보입니다. 오는 5월 23-24일 이틀 동안 진행되며 과신대 대표 우종학 교수도 둘째날 강연자로 함께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사진을 클릭하시면 베리타스포럼-고려대 페이스북으로 이동합니다.)

[북클럽 소식 - Book Club]
[분당/판교 북클럽]

창조과학자들은 ... 다방면으로 성경에 역사적, 과학적 해석 접붙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변증하겠다는 그 의도는 비록 선할지라도, 도그마적으로 목적(세계관)을 앞세워 사실(데이터)을 왜곡하는 등 잘못된 방법에다가 지적 성실성도 없어, 결국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기적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타임지 기사를 왜곡해 인용하고, 항의받으니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니, 틀렸다면 무시하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말인가, 신문방송은 전부 가짜라면서 맹목적으로 조작된 뉴스만 카톡으로 열심히 퍼나르는 무리들과 다른게 무언가.  (더보기)
[서울남부 북클럽]

과학과 종교가 실재를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비슷한 점을 말하며 각각의 이론은 완전하게 증명될 수 없다는 것과 각각에는 어느 정도의 믿음이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론 자체를 증명할 수 없어도 통합하고 설명하는 능력에 근거해 그 이론을 채택하는 것이 지적으로 적법하다는 루이스의 발언은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서 어떤 이론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더보기)
[4월 기획 기사]

창조과학을 부정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인가? 이 질문에 진규선 목사는 “원죄 교리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속 교리가 먼저 있었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바로 원죄 교리”라고 주장한다. “타락 이야기가 전설이나 신화의 옷을 입었지만, 실제 역사 속 벌어진 사건으로 보는 대안은 고려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유치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대안은 왜 원죄 교리가 현대 학문에 비추어서 문제가 되는지 전혀 이해를 못한 채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속 교리라는 목줄에 매여 있다면, 신학적 반성은 불가능하다.”

진규선 목사는 신학이 기존 신학을 정당화 하는 행동을 넘어서 새로운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사가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 전환은 전체론적이라고 주장했다. 개념, 존재론, 논리학을 포함하는 모든 측면이 전체적으로 다 변화한다고 한다. 창조과학에서 벗어나려면 기존 신학으로부터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진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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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소식 - Book Club
[전주 북클럽]

이번 모임에서는 라운드테이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은 분기별로 진행되며, 과학기술관련 이슈와 교회활동과 관련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토크 타임입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과학기술위험에 대한 교회의 공적 활동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과학기술위험을 방지하여 안전도를 높이고자 과학사회학은 어떤 제안을 하고 있는지를 살폈습니다. (더보기)

  <과신대 사람들 >  
 
과신대와 함께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과신대 대의원 정준 목사님입니다.
 

[과신대(이하 과)]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정준(이하 정)] 저는 현재 과신대 독서모임이나 콜로키움, 과신대 교사모임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교회, 더처치의 담임목사입니다. 과신대와 인연을 맺게 된것은 2015년 페북을 통해 우종학 교수님과 페친을 맺으면서부터입니다. 제가 과학고를 나와서 공대를 다니다가 경영학과로 재입학하고, 졸업 후에는 신대원을 졸업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전공 편력이 심한 편인데, 사실 목사가 되어서도 신학과 과학, 과학과 신학의 문제는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들더군요. 그런데 막상 목사가 되니깐 선제적으로 알고, 대응도 해야할 이런 부분에 너무 무지하고 심지어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과신대를 알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또 좋은 지적 도전과 가이드를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더군요. 

[과] 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창세기와 관련해서 불편함을 느끼거나 성도님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 목회 현장에서 보면 사실 드러내놓고 창세기에 관련한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한국의 교인들은 일단 성경에 쓰여져 있는 부분은 일단 의심없이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니까요. 물론 그런 생각은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이겠구요. 그래도 더러는 이런 질문들을 받게 되죠. 창세기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부분들, 이해가 안되거나 믿기지 않는 부분들 말이에요. 

정말 6일만에 온 우주만물들이 만들어졌을까? 아담과 하와가 최초의 사람이라면, 그 아들들은 누구랑 결혼했을까? 진짜 그 때에는 사람이 900년 넘도록 살았을까? 등등... 

최근에 안수집사님 한 분이 이런 문제에 대해 저와 질문과 격론을 벌이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절 보고 창세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창조를 믿지 않고, 창세기에 명백히 기록된 내용을 함부로 해석한다며 성경해석과 설교 코드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며 교회를 안나오시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작과 발단은 6일창조와 무에서 유의 창조에 관한 의견차이였는데(그 분은 오직 성경에 나온 문자 그대로만 믿어야 한다 vs. 저는 창세기의 기록은 당시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필요하다면 당시의 신화적, 상징적 체계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급기야 므두셀레가 969세 산 것을 왜 그대로 믿지 않느냐는 문제로 확대되었죠. 사람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본문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며 너무 문자 자체에 집중하지 마시라 권면드렸습니다. 결국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보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치유 이적과 부활은 어떻게 믿겠느냐며 도저히 제 얘길 듣지 않으시려 하더군요. 이런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마 목회적 성공, 교회의 수적 부흥을 위해서는 창세기는 너무 깊이 안 건드리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와 오해는 그대로 둘 수 없는 부분이 있기에 이것이 딜레마죠.

[과] 과신대에서 '목회자  창조과학에 답하다'는 주제로 7회 콜로퀴움이 열렸었는데  목회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과신대의 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싶습니다.

[정] 개인적으로 이번 콜로키움은 참 좋았습니다. 문제는 교회를 현재 불출석하고 있는 그 집사님이 꼭 오셨으면 했는데, 안 오셨다는 것이 아쉬웠죠. 따지고 보면 그 집사님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에게 창세기와 성경을 어떤 방식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지 처음 가이드를 해주신 분이 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그렇긴 하지만요. 저는 과신대가 목회자들에게 적어도 창세기의 창조사건에 관한 과학과 신학적 소양을 제고하는데 역할을 감당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교회는 목사님의 설교와 가르침이 바뀌어야 양육받는 성도들이 달라지니까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문제 같은데, 목회자가 변해야 성도들이 변하고, 성도들이 변해야 목회자도 변하는 것이겠죠. 다만 저는 목사라서 그런지 목회자들이 더 앞서서 이런 지적 소양을 갖추고, 과학과 신학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과신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이 설 자리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혹자는 종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종교(특별히  기독교)가 과학시대에 요청받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 글쎄요. 저는 종교의 역할(기독교의 역할)이 더 줄어든다고 보진 않습니다. 과학의 발전이 종교의 역할과 수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이죠. 사람들의 설 자리가 축소되기보다는 이전보다 훨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것은 철학적이면서 종교적인 질문이고,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에 대한 답은 과학만으로는 답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로, 인간은 인간의 자리로’, 결국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간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려놓았듯, 과학이 발달할수록 기독교가 과학의 영역까지 침범하거나 과학 위에 서려하지 말고, 과학의 결과물을 수용하면서, 기독교는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가르치신 참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을 해야 가치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등 이런 가이드의 역할은 종교(기독교)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과] 과신대 북클럽이 서울 남부지역 과 분당/판교, 전주, 제주도 등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클럽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가운데 살짝 권유를 하신다면 어떤 부분이 있는지요? 

[정] 지금도 잘 하고 있지 않은가요?  다만 독서모임이 진행되면 아무래도 처음 입문자와 꾸준히 관련 책을 몇 년간 읽어온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독서모임은 점점 더 어려운 책을 택할 수 있는 위험성도... 과신대 제자 양육 시스템을 도입해야할까요? (웃음) 결국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독서모임이 각 지역별로 진행, 확대되고 있다면 이제는 다양한 수준의 다양한 모임들로 확산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신앙생활도 혼자보다는 교회라는 공동체가 필요하듯이 책도 혼자보다는 같이 읽는 것이 훨씬 좋다고 봅니다. 단순한 지식 축적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감에 있어 더불어 함께 걷는 길동무를 얻고 연대해가는 힘이 과신대 독서모임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 백우인,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정준 목사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준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과신대 사람들>은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기대해주세요!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생물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신은철 교수 |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정모 관장 | 서울시립과학관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장현일 | 총무/재무이사
  김남호 | 연구/기획이사
  강사은 | 홍보/미디어이사
  곽은이 | 교육/출판이사
  김재상 | 교육/출판이사
  백우인 | 교육/출판이사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김고운 | 행정간사
  이진호 | 행정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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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9 (2018.02)  (0) 2018.02.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여러분 창조부터 부활까지 모두가 다 사실입니다. 창조가 과학인 것처럼 부활도 역사입니다.” 지난 부활주일, 중랑구의 한 교회에서 설교된 내용이다. 부활주일을 맞아 많은 설교자들은 예수의 부활에 관해 설교하였다. 예수 부활의 의미 보다는 역사적 사실, 과학적 사실로 보여지는 부활에 너무 집중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 교회는 유독 성경에 과학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평이다보수적인 교회에서 출석하면 창조과학에 대해서 배우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창조과학회에 따르면 5월에 예정된 세미나만 총 8회이다.[각주:1] 한국창조과학회에서 주최하는 세미나를 제외하고도 교역자들 개인이 진행하는 창조과학 교육은 셀 수 없이 많다.


- 한국에서 창조과학이 유행하는 이유


창조과학은 미국을 지나 한국으로 들어왔다. 보수적인 기독교 분위기와 함께 창조과학은 한국 기독교에 자리 잡았다. 진규선(뮌헨 한인교회 청소년부) 목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이유로 뽑았다. “첫째, 한국 공교육에 종교 과목이 부재하다. “종교에 대한 교육을 오로지 종교 단체에만 맡기면서 종교에 대한 공정한 시각을 잃었다.” 공교육에서 종교를 객관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둘째, “신학교가 신앙 고백을 요구하고, 무엇보다 교단 정신을 주입하는 곳으로 작동한다교회에서 성도들을 가르치는 목회자들에 대한 교육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신학교에서 학문으로서 신학을 가르치기 보다는 교단 정신을 주입하느라 바쁜 모습은 뼈아픈 현실이다.


진규선 목사에 따르면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아디퉁(2017 8 7 보도) '신앙과 진화, 어울릴 있을까?'라는 사설이 기고되었다. “ 사설에 따르면 미국인의 2/3 혹은 3/4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믿는 반면, 독일인은 20%만이 그러한 하나님의 인간 창조를 믿는다. 한국 기독교인들도 상당한 수준으로 창조과학식 인간 창조를 믿을 것이다. 차이는 독일의 공교육에서 객관적인 종교를 가르치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과학 부정, 신앙을 위협하는가

 

창조과학은 기존 교리를 강하게 지지한다는 장점이 있다.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인간이 죄인인 이유는 생활에서 짓는 죄뿐 아니라 원죄 때문이다. 창조과학은 우리가 원죄를 가진다는 교리를 그럴하게 설명한다반면, 창조과학은 비상식적으로 과학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서 신학적 빈곤을 가져온다. 하나님의 창조를 문자 그대로 사실로 인정하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주장은 창조의 신학적 의미를 퇴색시킨다. 창조 기사가 기록된 신학적 이유를 읽어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창조과학을 부정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인가? 이 질문에 진규선 목사는 원죄 교리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대속 교리가 먼저 있었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바로 원죄 교리라고 주장한다. “타락 이야기가 전설이나 신화의 옷을 입었지만, 실제 역사 속 벌어진 사건으로 보는 대안은 고려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유치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대안은 왜 원죄 교리가 현대 학문에 비추어서 문제가 되는지 전혀 이해를 못한 채 전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속 교리라는 목줄에 매여 있다면, 신학적 반성은 불가능하다.”

진규선 목사는 신학이 기존 신학을 정당화 하는 행동을 넘어서 새로운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사가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 전환은 전체론적이라고 주장했다. 개념, 존재론, 논리학을 포함하는 모든 측면이 전체적으로 다 변화한다고 한다. 창조과학에서 벗어나려면 기존 신학으로부터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진다.

 

창조과학 거부와 예수 연구

 

최근 교계에서는 리스트로 벨 등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리스트로 벨은 예수에 관한 기록이 대부분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을 하기로 유명하다. 또 한편으로는 역사적 예수 연구를 소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신학자 부류도 있다. 역사적 예수 연구는 복음서의 예수 기사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려는 노력으로 시작되었다창조과학을 부정하면 기존 성경 해석 방법을 전복해야 한다. 예수님에 관한 본문들도 예외는 아니다. 진규선 목사는 역사적 예수는 여전히 고전적인 신학적 색채가 남아있는 영역이라고 주장하며 실제로 예수에 관한 역사적 자료는 제로에 가깝다고 했다. 진규선 목사는 신앙과 과학을 분리하자고 한다.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많은 교리 항목으로 체계를 세워 구성한 신앙은 필연적으로 명백한 사실과 마주칠 때마다 고민해야 한다. 그에 비해 신앙이 단순하다면, 오히려 관용적인 사람이 되고 동시에 소위 합리적인 사람으로도 여전히 남을 수 있다

 

창조과학 없는 교회 가능한가

 

창조과학 없는 교회가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은 젊은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교단에서 나온 교재는 거의 대부분 창조과학을 기초로 쓰여있는 경우가 많다. 보수적인 교회일수록 이런 정도는 더 심하다. 기존 교재들은 과거의 시대 정신의 산물이라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목회자와 교회 학교 교사들이 함께 공부할 것을 주문한다. 교회 교육도 일종의 교육이라는 전제 아래서는 교육자들이 먼저 숙지되어야 하며, 가능하면 교재를 직접 만들것도 주문하였다


설교자들은 창세기를 설교하기 부담스러워 하기도 한다. 부교역자들은 보수적인 담임 목회자 눈치를 보게 되고, 담임 목회자 역시 교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를 계산하기 마련이다. 대안은 성경을 그대로 가르치는 교회다. 성경 내용을 그대로 가르치되,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 창조의 순서가 다르다는 것을 알려준 다음, 그 이유는 창세기는 후대에 편집된 문서이기 때문이라는 것등을 알려줄 것을 조언한다. 최종적으로 창세기가 저술되던 당시의 신학적 고민을 설명한다. 현대의 고민을 그 위에 덧 입히는 작업은 설교자들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짐이다.

 

교계도 유사과학에서 벗어나려면  이성을 되찾아야

 

진규선 목사는 신학전공이 아닌 기독교인들에게 말씀을 공부할 것을 당부하고 신앙을 단순화하라고 조언했다. 말씀을 공부하는 태도는 오랜 시간 강조되었지만, 성도들은 그 노력을 게을리 했을지 모른다. 단순하게 성경 내용을 많이 아는 것보다 본문의 신학적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교계는 국제적인 대화에 참여할 것을 주문하였다. 교계의 보수적인 교단들은 유독 국제적인 수준의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학술 연구, 교파간 대화, 종교간 대화에 이를 필요가 있다. 교계는 비이성적 신앙에서 탈피하고, 성경에 기반한 신학과 신앙을 세우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책무가 있다. 오늘날 교계가 방점을 찍어야 할 지점은 모든 종교인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종교를 반성해야 하는 현실이다.

 



작성 | 류인선 (과신대 기자단)


** 인터뷰의 내용은 본지의 주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한국창조과학회, 이달의 세미나(http://www.kacr.or.kr/seminar/schedule.as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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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남부 북클럽 모임 후기 (알리스터 맥그래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책으로 북클럽을 진행 하였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참석인원이 줄어서 8명이서 조촐한 책모임을 했습니다. 


책은 맥그래스가 과학과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던 개인적인 경험들과 그 가운데서 깨달았던 것들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고백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공존하고 대화해왔던 것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적절히 나열하며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라는 신화를 깨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좀더 풍성하고 실재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이 다중적인 이야기라고 합니다. 종교라는 서사와 과학이라는 서사는 서로 상보적으로 실재를 조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지도라는 비유를 통해 실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의 지도가 아닌 다중적인 지도가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실재의 깊이와 상세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실제는 다중적인 층위가 있기 때문에 일부만을 가지고 전체라고 주장하는 환원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과학과 종교가 실재를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비슷한 점을 말하며 각각의 이론은 완전하게 증명될 수 없다는 것과 각각에는 어느 정도의 믿음이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론 자체를 증명할 수 없어도 통합하고 설명하는 능력에 근거해 그 이론을 채택하는 것이 지적으로 적법하다는 루이스의 발언은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서 어떤 이론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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