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잡초와 채소 - 과신대 남부 북클럽 ‘창조기사 논쟁’ 세번째 모임 후기 | 강사은 (서울 남부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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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슬초’ 라고도 불리는 ‘쇠무릎’ 이라는 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에 널리 분포되어 있고 길가에서도 많이 자란다고 합니다. 잡초이지요. 줄기가 마치 쇠의 무릎을 닮았다 하여 ‘쇠무릎’이라고 한다는데요. 재미있게도 이 잡초는 관절염, 통풍, 신경통 등의 약재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약재로 사용 가능하다는 것을 농부가 알게 되면 잡초는 재배되게 되고 재배되는 순간 잡초는 채소 또는 약초로 불리게 됩니다.

잡초와 채소의 경계는 이렇듯 경작하는 자에 의해 구분되는 것이고 처음부터 설계되거나 이름지어진 것이라 할 수 없겠습니다. “창조 기사 논쟁” 남부 북클럽 셋째 모임에서 잡초와 채소의 애매한 경계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을 창세기 2장에서 만났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창 2:5)

2.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창 1장 셋째 날에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나무, 즉 식물을 창조하신 후 여섯째 날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순서와 맞지 않는 구절입니다. 2장의 이 순서에 대해서 에이버벡(리처드 E. 에이버벡)은 경작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광야나 잡초, 경작물과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만(p. 83) 북클럽 셋째 날, 콜린스(C. 존 콜린스) 글에 대한 논평에서 비일(토드 S. 비일)은 너무나 자신있게 “창세기 2:5에서 먼저 언급되는 ‘관목들’은 황무지에서 자라는 식물을 가리킨다(즉 이들은 창 3장의 저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잡초들을 가리킨다). 그 다음으로는 ‘경작된 작물들’이 언급되는데, ... 이러한 경작물은 아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p. 226) 라고 주장합니다. ‘개념’이 없었다는 에이버벡의 주장과 달리 일관되게 강한 문자적 해석을 하는 비일의 관점에서 보자면 창 2:5절의 초목과 채소는 셋째날 창조된 것이 아니고 창 3장의 타락 이후 나오게 된 것이라는 것이지요. (씨 형태로 존재하다가 타락 이후에 땅 위로 솟아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비일은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아마 모티브가 된 구절은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창 3:18) 이겠습니다.

6일 창조를 늘 강조하는 비일의 주장에 예외가 발생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타락 이후 지구 상에 새로 나타난 잡초랄까요? 이 잡초들은 모두 경작 불가능한 것들이었을까요? 셋째날 창조된 식물은 모두 경작 가능한 식물들이었을까요?
쇠무릎은 셋째 날 창조되었을까요? 아니면 인간이 타락 이후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쇠무릎의 줄기가 소의 무릎을 닮게 된 이유는 마디에 쇠무릎혹파리가 구멍을 내어 부풀어 오르게 했기 때문이라는데 쇠무릎혹파리는 언제부터 본인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을까요? 콜린스는 이 부분에 대해서 또다른 관점의 해석을 합니다만 에이버벡과 비일의 관점을 비교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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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