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SUBJECT|*
                
                과 신 대   입 회   신 청
    
  과 신 대  C M S  정 기 후 원

과신대 View 3호

(2017.7.)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 과신대 칼럼 -

4차 산업혁명시대의 교회와 과신대


김재상
(과신대 기획이사, 전주생동하는 교회 목사, 전북대 과학학과 강사)

 

  요즘 경제 산업이나 과학기술 뉴스를 보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과 마주 대하게 된다. 몇 년 전부터 교계에서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교회의 미래와 신앙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어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물리학, 생물학, 디지털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융합되는 하이브리드 사회가 도래하리라고 보고 있다. 하이브리드 시대에 교회 사역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가?
  먼저 교회는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을 읽을 수 있는 과학기술 문해력을 높여야 한다. 교회는 성경을 읽는 눈과 함께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한다. 성경과 시대를 함께 읽어갈 때 교회는 시대를 통찰하며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시대 흐름이다. 교회는 과학기술 문해력을 높여 하이브리드 시대를 읽으며 이 시대의 저변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를 첨단과학기술 시대라는 맥락 안에서 풀어가야 한다. 이러한 통찰 가운데 교회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시대의 예언자로 서 있을 수 있다.
  과학기술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보는 한국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 역시 경제적 효율성 입장에서 읽히고 있다. 쟈크 엘룰이 말한 바처럼 효율성을 강조하는 기술발전은 인간의 자유 박탈로 이어지며 인간 정체성과 존재 가치는 자본의 용어로 바뀌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의 하이브리드는 정체성 상실이 아닌 재구성이다. 그러기에 한국교회는 인간 정체성 회복을 부르짖는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자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이브리드 시대에 던지며 인간 의미와 자유를 상기시켜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형상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음미하며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인간관을 그려가야 한다. 
  크리스천 인재 양성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필수이다.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교회 교육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19세기 정신과 20세기 방식으로는 21세기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교회 교육방식과 콘텐츠에 변화가 필요하다. 교회는 인공지능과 디지털기술 등 여러 기술을 검토하며 교회교육현장에 점차적으로 도입시켜나가야 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통찰을 교육 콘텐츠로 전환하는 능력을 갖추어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이 통합되는 STEAM 교육에 종교적 성찰을 융합해가야 한다. 
  그리고 오이코스의 변주가 필요하다. 즉 돌봄과 연대의 공동체 형성이다. 교회는 공동체를 의미와 자유를 박탈당한 이웃으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누구나 모두 자유롭게 과학기술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정치, 경제, 사회 측면에서 과학기술에 접근하는 정도가 다르며 이 차이는 계급화로 진행될 수 있다. 교회는 사회적 약자가 더욱 쉽게 과학기술에 접근하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교회는 사회안전망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실업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여러 교우가 실업 위기 한복판에 서 있게 된다. 한국교회는 작게는 교우를 위해 크게는 한국사회의 안전을 위해 사회안전망 정비를 긴급히 촉구해야 한다.  
  이러한 오이코스의 변주는 과학기술 결과물에 대한 소수의 독식과 과학기술의 자본화에 저항하며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과학기술시민권운동으로 연장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는 한국 과학기술담론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생명, 사랑, 평화, 공생, 긍휼과 같은 기독교 가치를 사회 용어로 바꾸어 과학기술 공론장에서 토의해가며 기독교 가치가 한국 과학기술문화에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이러한 교회 사역을 위해서는 우리 <과.신.대>의 역할이 막중하다. 교회가 이러한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우리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의 내부 역량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콜로키움, 포럼, 북스터디, 기초교육과정 등을 통해 <과.신.대> 역량이 성장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교계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의 교회를 위해 이제 우리가 지닌 인식의 틀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과학은 ‘과학들’이며 신학은 ‘신학들’이다. 과학과 신학 모두 여러 분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더욱 많은 분과들이 참여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이론적인 측면과 함께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대화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처럼 외연이 확장된 대화 가운데 <과.신.대>가 한국교회를 위한 과학기술 공론장 역할을 톡톡히 해나가리라 확신한다.



- 제 3회 과신대 콜로퀴움 -

Original Death?
창조와 죽음에 관한 복음주의 성서학의 최근 동향

 

이번 학기 과신대에서 처음 시도한 콜로퀴움은 나름 새로운 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포럼도 아니고 강연도 아닌 조금은 아카데믹하면서도 조금은 대중성을 띤 자리로 만들어가는 중입니다.

세 번째 콜로퀴움에서는 성서학자를 모셨습니다. 벤쿠버세계관대학원에 학장으로 계신 전성민 교수님입니다. 1부 강연은 주로 복음주의 성서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원 죽음에 대해 다뤄주셨습니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선악과 사건에서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는 그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를 80년대 부터 나온 주석들을 훑으면서 살펴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간은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로 창조 되었는데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는 죄의 결과로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생각일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은 이에 관해서 뭐라고 말할까요 한 마디로 답한다면 인간은 처음부터 불멸의 존재로 창조 되었다는 주장의 근거는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처음으로 생물학적 죽음을 맞이할 존재로 즉 유한한 존재로 창조 되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선악과를 범한 결과로 정녕 죽으리라’고 되어 있는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비밀은 생명나무에 있습니다. 선악과를 범한 죄의 결과는 결국 에덴동산에서 추방되는 것이고 생명나무에 접근이 금지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인간은 처음부터 불멸의 존재가 아니었지만 생명나무 열매를 통해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선악과를 범한 불순종의 결과로 생명나무를 취할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죽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전성민 교수님은 강연 제목과 다르게 이런 성서해석은 최근의 복음주의 동향이 아니라 이미 오래된 견해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이유는 바로 ‘공부를 안 해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지요, 사실 수많은 문제들이 공부를 안해서 생깁니다. 창조과학도 과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고 잘못된 성경 해석도 성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생명나무가 과연 무엇이냐에 대한 해석은 어지러울 수 있겠으나 죽음에 대한 고정관념은 바뀔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동물들의 죽음에 관한 논의였습니다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든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타락 이전에 동물의 죽음이 있었는가에 관해서는 오히려 더 논란이 많다는군요.

물론 과학적으로 보면 타락 이전에 동물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공룡도 인류가 창조되기 전에 이미 멸종했지요.

우리가 꼭 성경만 봐야하는 것은 아니기에 특별계시와 자연계시를 함께 보면 우리는 실재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성서를 제대로 읽기 시작하면 오히려 고정관념이 많이 깨질 수 있습니다.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을 제대로 읽기 시작하면 창조세계에 대해 많은 고정관념이 깨질 수 있습니다.

 
** 글 | 이 글은 우종학 교수님의 페이스북 담벼락 글을 재구성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사진 | 기독일보, 김규진 기자
- 하반기 행사 안내 -

2017년도 어느새 절반이 지나갔습니다. 지난 상반기에는 과신대 특강과 북콘서트, 콜로퀴움 그리고 기초과정 1,2 까지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과학과 신학의 균형잡힌 대화를 목표로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다가오는 하반기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  8월  |  기초과정 1 (2기, 8/21-22 예정)
|  9월  |  4회 콜로퀴움
(미정)
| 10월 |  5회 콜로퀴움 (미정)
| 11월 |  6회 콜로퀴움 (미정), 3회 포럼 (미정)
 

- 과신대 회원 등록 및 후원 안내 -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사역은 회원 여러분의 후원으로 이루어집니다.

 

<과.신.대 회원 등록 안내>

 

과.신.대 회원은 두 가지 등급으로 나뉘어집니다.

 

1. 정회원 : 회비를 납부하고 회원의 의무를 이행한 회원
                가입 단위에 따라 개인회원과 단체회원으로 구분

2. 준회원 : 정회원이었으나 회원으로서 의무를 연속 2년 이상 이행하지 않은 회원

 

- 현재는 입회비(10,000원)만 납부하신 뒤 정기후원 약정을 하지 않은 분들도 ‘준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정기후원 약정을 하신 뒤 후원을 시작하시면 자동으로 ‘정회원’으로 등급이 변경됩니다.

- 만일 입회비 10,000원을 따로 납부 하지 않고 정기후원을 바로 시작하신 분들은 최초 후원회비에서 10,000원이 입회비로 자동 분류됩니다.

 

:: 과신대 입회 신청서 : https://goo.gl/forms/fxTa9QmI3mx5hqw12

 

<한빛누리재단 CMS 정기후원>

 

한빛누리재단을 통한 <과.신.대> CMS 자동이체 후원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CMS 자동이체를 활용하시면 회원 여러분이 후원 내역에 대해 기부금 공제 혜택을 받으실 수 있고 <과.신.대>회원 명단을 전산으로 관리하기 쉬운 편리함이 있습니다. <과.신.대> 를 후원하고자 하는 분들은 앞으로 한빛누리재단을 통해 후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한빛누리재단을 통한 CMS 정기후원 방법 안내 **

 

아래 링크를 통해 접속한 뒤 양식을 작성 해주시면 됩니다.

:: CMS 후원신청 링크 : https://goo.gl/Kkpw05

(후원하는 단체로 ‘과학과신학의대화’를 선택해주세요.)

 

- CMS 출금 시 후원자의 통장에는 <한빛누리공익기금>으로 표기됩니다. 후원은 한빛재단 쪽으로 후원금을 모금하여, 과신대에 사업기금으로 전달되는 형식입니다.

- 정기후원 CMS 자동이체가 등록되신 분들께는 확인 안내 문자가 발송됩니다.

- CMS 약정을 하신 뒤에는 기존의 자동이체 후원을 해지하셔야 중복 출금이 방지됩니다.

- 비정기후원에 대한 문의는 행정간사에게 따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Copyright © 2017, Science and Theology, All rights reserved.

Want to change how you receive these emails?
You can update your preferences or unsubscribe from this list.

'과신대 View > 2017 과신대 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신대 View Vol.6 (2017.11)  (0) 2018.02.07
과신대 View Vol.5 (2017.09)  (0) 2018.02.07
과신대 View Vol.4 (2017.08)  (0) 2018.02.07
과신대 View Vol.3 (2017.07)  (0) 2018.02.07
과신대 View Vol.2 (2017.06)  (0) 2018.02.07
과신대 View Vol.1 (2017.04 창간호)  (0) 2018.02.07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