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수원남부 북클럽]




'커피파'와 '라면파'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IVP, 2014)


강사은


요즘 유행하는 ‘찍먹파’와 ‘부먹파’ 논쟁을 아시는지요?


본래 탕수육은 규정상 부어 먹는 요리라고 되어 있으나 배달문화와 겹치면서 눅눅해짐을 방지하기 위해 따로 포장하게 된 것이 이 논란의 발단이라고 합니다. 배달 과정에서 면이 불게 되는 것이 싫어서 왠만해서는 배달시키지 않는 저에게 둘 모두 일리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탕수육을 둘러싼 이 철학적 논쟁에 못지 않는 ‘커피파’와 ‘라면파’ 이야기가 무크따에도 있습니다. 주전자에 담긴 물이 끓고 있는 것을 보면서 두가지 관점의 설명이 가능한데요.


첫번째는 '과학적 설명으로 열이 가해져서 물 분자가 활발히 활동하기 때문에 물이 끓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엄마가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물을 끓이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문제는 이 두가지 관점의 설명을 굳이 결합시키려고 할 때 생깁니다. 바로 "물의 온도가 100도가 된다는 것은 곧 엄마가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연결시켜서 진리라고 믿어 버리는 것이죠.


여기에서 '커피파'와 '라면파'의 논쟁도 나오겠습니다. 사실은 엄마가 커피가 아니라 라면을 먹고 싶어서 끓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라면파'가 등장하는 것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교파의 차이는 아마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만일 물의 끓는 점이 100도가 아니라 120도인 것으로 과학의 내용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과학적 방법 관점에서 120도로 변경되는 것은 그다지 문제되지 않겠습니다. 과학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하지만, 커피를 먹기 위한 것이냐 라면을 먹기 위한 것이냐에 대한 논쟁은 변할 수 있는 과학적 사실과 강하게 연결시켰던 것으로 인해 그 믿음 체계에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노래 가사에는 소금에 절여진 고등어를 발견한 소녀(소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가사를 보면서 저는 궁금했습니다. '저 고등어는 과연 아침 반찬으로 올라갔을까?' 그 소녀(소년)의 이성적이고 경험적인 바램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를 바랬던 제 마음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면 좋겠습니다.


오늘 수원 남부 북클럽 모임에는 중학생과 초등 5학년 학생이 당당한 일원으로 참가했습니다. 그냥 따라온 것이 아니라 책 내용과 발제 내용을 이해하고 토론하고 질문하는 데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무크따를 이해하는 최소 연령으로 초등학생이 확인된 날이고 북클럽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을 확~ 낮춰준 날이기도 합니다. 우종학 교수님~ 무크따는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명서입니다. ^^


수원 남부 북크럽의 다음 모임은 아래와 같고 장소와 간식까지 준비해 주신 김진세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모임 일정>

일시 : 2019년 1월 19일(셋째주 토요일) 오전 10:30분

장소 : 성공회 제자교회(http://www.agnes.or.kr)

독서분량 : 무크따(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9장~끝.

문의scitheo.office@gmail.com / 070-4320-2123


* 커피파와 라면파에 대한 이야기는 무크따 pp.120~121에 있습니다. ^^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