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우종학, IVP)


서평 | 김영웅  (포스텍 분자 생물학 박사, 현 미국 City of Hope에서 백혈병 연구)


본격적인 이야기는 어느 신문사 과학부를 담당하고 있는 박 기자라는 나한교 (나도 한때 교회 다녀봤어)가 우연찮게 그의 과거 주일학교 선생이자 현재 대학 교수인 한 별 박사의 저서 소개 기사를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되고 인터뷰까지 직접 하게 됨으로써 시작이 된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 세월이 벌려 놓은 서먹한 둘 사이의 간격은 비단 과거 선생과 제자 간격이나 현재 교수와 기자 간격만은 아니었다. 세월은 그 둘을 신앙인과 비신앙인,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으로도 갈라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갈라놓은 원인의 무게중심은 수동적 의미의 세월이란 요소뿐 아니라 능동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과학과 신앙에 얽힌 해묵은 편견'에도 있다고 봐야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이 책의 요지와 잘 부합하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저자가 왜 하필이면 한 교수를 박 기자의 과거 주일학교 선생으로 설정했겠는가. 무엇보다 이 책의 부제는 '과학과 신앙에 얽힌 해묵은 편견 걷어 내기'다. 이는 저자 우종학 교수님이 책 전체에 걸쳐서 일관되게 던지고 있는 메시지와도 같다).


박 기자와 한 교수의 간격은 우리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편견은 기독교의 이름을 가진 무속신앙을 강화시키고, 강화된 무속신앙은 편견을 기정 사실화시키는 강력한 교주 역할을 한다. 악순환의 고리에 의해 그 교주의 힘은 점점 막강해져서 한국 기독교라는 옷까지 입고 교인들에게 그들이 기정 사실화시킨 편견을 복음과 함께 뿌린다. 이런 의미에서 편견은 가라지와도 같다. 주인의 곡식 사랑하는 마음 덕분에 가라지는 곡식이 자라는 동안 뽑히지는 않겠지만, 추수 때가 이르면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져 불사르게 단으로 묶어질 것이다.


박 기자와 한 교수의 재회는 두 사람의 간격을 메우는 물꼬를 튼다. 첫 인터뷰에 이어진 한 교수 강연에의 참석, 또 그 이후 연이은 두 번의 만남을 통해 박 기자의 창조론에 대한 자세는 서서히 바뀐다. 그 동안 자신이 가져왔던, 과학과 신앙이 서로 대립된다는 생각이 실제로는 잘못된 편견일 수도 있겠다는 진지한 의심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부차적으로 다시금 크리스천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도 그의 마음 속에서 싹트게 된다 (이는 잘못된 편견의 수정이 회심의 열매까지도 맺을 수 있는 힘도 가질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즉, 과학과 신앙에 얽힌 편견을 제거하는 작업이 아프리카 오지에서 언어와 문화를 새롭게 배워가며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이나 전도와 선교의 중요한 축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면에서 우린 어쩌면 비기독교인들의 과거 탈기독교 과정의 메커니즘을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박 기자는 대다수의 우리를 대변하는 듯하다. 과학과 신앙의 차이를 무신론과 신론의 차이나 비기독교와 기독교의 차이와 동일시하는 한국 기독교의 암묵적이고 비합리적인 교육 체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창조론 연대기"에서 김쑤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온유와 온유 오빠를 바라보는 시선을 떠올리면 된다. “그들도 피해자야”). 우리 중에 나한교가 아니었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박 기자와 같은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쩌면 박 기자는 용감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속적인 믿음으로 마치 우리들이 기독교의 수호자인양 과학의 합리적인 판단과 가치체계를 깡그리 무시하며, 중립적인 과학의 목소리를 사탄의 속임수와 동일시하며 귀를 틀어막고, 계속 어둠만을 쳐다보면서도 거룩한 척하며 지속하여 교회에 다니고 있진 않는가? 기정 사실화된 잘못된 편견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제대로 된 창조주 하나님을 전하는 복음 전파가 가능하리라 생각하는가? 그 때야말로 당신이 제 2의, 제 3의 교주가 되는 순간 아니겠는가! 이런 부분을 잘 잡아낸 책 제목, "아론의 송아지"에서도 저자, 임택규가 이런 웃지 못할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답답했으면 프롤로그에서부터 "우매함은 악보다 훨씬 위험하다"라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문장으로 책을 시작하냔 말이다!


무크따가 생물학적 진화/창조론만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우주의 탄생까지도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즉, 무크따는 그 둘 모두를 매개로 하여 한 단계 위의 개념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무크따는 부제에 해당하는 과학과 신앙의 편견 깨기에 잘 부합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무크따는 자상하고 지혜로운 스승으로부터 일대일 과외를 받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이 책은 어떤 커다란 학회에 가서 정보를 수집하는 경쟁적인 방법보다, 자기가 잘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친절하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배우는 것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특히 권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게 되면 과학과 신앙을 더 이상 대립적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며, 저자처럼 과학과 신앙을 모두 겸하여 조화를 이루고, 또 서로를 더욱 발전/보완시켜주는 관계로 볼 수 있게 되리라 확신한다. 더불어, 탈기독교를 경험한 나한교들 중엔 이러한 편견으로부터의 해방이 아주 결정적으로 어필하는 케이스도 많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회심도 내심 기대해 본다. 박 기자처럼 말이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