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칼럼

정말 지켜야 것이 무엇인가?

김근주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학 교수과신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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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예고하는 주님을 켠으로 데려간 베드로가 주님을 꾸짖었을 ( 8:32), 주님은 베드로를 향해사탄아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8:33) 다시 꾸짖으셨다. 베드로를 향한 주님의 강력한 꾸짖으심은사탄이라는 표현으로 집약된다. 여기서사탄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영적인 어떤 존재같은 것으로 여길 없다. 사탄이 의미하는 것은 베드로의 가치관, 베드로의 세계관이다. 그리스도라면 그런 끔찍한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침내 영광스럽게 임하고 모든 원수들을 박멸하는 승리의 , 영광의 주라야 한다는 가치관, 그것이 베드로의 생각이고, 그것을 향해 주님은 사탄이라 단번에 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사탄 가치관이며, 세계관이라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서의 사탄의 존재를 전혀 확인할 없는 반면, 신약 요한계시록의 경우 사탄과의 싸움이 세상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궁극적 싸움이다. 이를 보면, 사탄의 존재 자체는 구약과 신약의 시대마다 달리 표현되었음을 짐작할 있다. 구약과 신약에 공통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시고 부르시는 삶과 그를 떠나 영광과 승리, 번영을 추구하며 욕망을 극대화하려는 삶의 대조라 있다. 그렇다면, 사탄이라는 영적 존재의 여부를 믿는가 믿는가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가라고 있다. 사탄과 같은 외부의 대적 세력에 대한 믿음 여부는 시대의 인식과 정보, 과학과 문화의 진전과 결부되어 있다.

문화와 과학은 시대마다 바뀐다. 영원한 복음은 시대마다 바뀌는 문화와 과학을 통해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킬 것은, 신구약 성경의 배경이 되던 고대 시대의 우주관, 사회 문화의 형태, 가정의 모습, 결혼 제도,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해 같은 내용이지 않을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우리가 굳게 간직하고 지켜야 복음의 핵심적인 가치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이 사랑하시어 아들을 주신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임이 분명하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7:12), ‘ 이웃을 몸처럼 사랑하라’( 13:8-10; 5:14) 가르침은 점을 명확히 표현한다.

그러나 한때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여 지동설로 대표되는 과학을 거부하고 맞섰으며, 한때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여 노예제도를 지지하며 여성의 참정권을 반대하였다. 성경에서 활용된 시대의 배경을 지켜야 영원한 가치로 착각한 데에서 비롯된 교회의 오류라 있다. 지동설을 입증한 과학의 연구 성과와 노예 제도 폐지, 여성 참정권 확대라는 사회 문화의 진보는 이제까지 교회의 해석이 잘못 되었음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사례는 무수하다. 정말 지켜야 가치가 무엇인지 놓쳐 버렸을 , 교회가 세상의 빛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이 교회의 빛이 되었다고 말해야 같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성경에 근거하여 동성애를 반대하는 일에 앞장선다. 아마도 상황 역시 성경이나 신학으로 해결된다기보다, 동성애에 대한 의학 분야 연구 성과와 사회 문화의 변화를 통해 해결될 가능성이 보인다. 천동설, 가부장제, 노예 제도, 여성 참정권 반대 등과 같은, 교회가 성경에 근거하여 지지한 비진리 목록은 앞으로도 더욱 쌓여만 같다. 지켜야 것이 무엇인지를 놓쳐 버린 교회, 배워야 것이 무엇인지 잃어 버린 교회, 그러면서 과학에 대한 신앙의 우위, 세속 문화에 대한 기독교 문화의 우위와 같은 구호를 내세우는 교회, 그것이 지금 우리가 속한 한국 기독교의 현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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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2 / 2018.05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